신문 연재-토론토지역/크리스챤 월드 성경 안밖의 세상 63

9 목자들의 들판 - Shepherd´s Field

9 목자들의 들판 - Shepherd´s Field 유대나라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자그마한 계곡 하나 건너 산등성이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이란 도시가 있다. 예루살렘과는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지척에 있는 도시이지만 요즈음 이 곳으로 가려면 삼엄한 경비초소를 거쳐야만 한다. 8m 높이로 세워 진 콘크리트 장벽 위에는 가시철망이 쳐져 있고, 그 보다 더 높은 곳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감시초소가 있어 마치 적국의 국경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삼엄하다. 이스라엘이 2002년 7월부터 라말라와 베들레헴, 나불루스, 웨스트 뱅크에 높다란 콘크리트 장벽을 660kmsk 되는 엄청난 길이로 둘러쳐 놓아 이 담장이 이스라엘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두어 놓는 감옥 아닌 감옥을 만들어 놓았기에 그..

11 붉은 교회 – 버가모교회 2012-01-18

11 붉은 교회 – 버가모교회 내가 와 서 있는 이곳, 많은 순례 객들이 찾고 있는 붉은 바실리크(붉은 교회)라고도 불리는 버가모 교회 터로서, 교회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또는 사라피스: 태양신)를 위한 신전이었단다. 세라피스 신전은 원래 이집트에서 만들어 진 명계(冥界; 저승세계)의 신이기 때문에 "이집트 신전"이라 불리기도 하며, 신전 건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붉은 궁전(The Red Hall)"이라고도 한다. 나중에 기독교가 공인된 후 요한 계시록의 버가모교회에 바쳐지기 위해 바닥을 높이 개조하여 교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붉은 교회(The Red Basilica)" 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아직도 안내판에는 이집트 신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신전, 아니 교회의 크기는 26m..

10 모세의 발길 따라....시내산의 해돋이 2012-01-11

시내산 정상에서 보는 해돋이 낙타야! 어제 밤에 수고 하였다.....! 시내 사본이 발견 된 성 캐터린 수도원 10 모세의 발길 따라....시내산의 해돋이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 사이에 자그마한 시내 반도가 있다. 대략 남한의 절반이 조금 넘는 크기다. 이 반도 왼편에는 모세가 갈라놓았던 홍해가 있고 이 반도 남단에는 모세가 하나님과 독대하면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알려 진 시내산이 있으며 이 반도 곳곳이 출애굽한 유대 민족 2백만 여명이 40년간 유리방황하던 광야가 있는 곳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십계명을 받은 산이 여기 있는 시내산이 아니라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산이라고도 주장을 하나 정확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은 그 옛날의 일을 오늘의 우리가 맞다 그르다 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스운 일이지..

9 목자들의 들판 - Shepherd´s Field

9 목자들의 들판 - Shepherd´s Field 유대나라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자그마한 계곡 하나 건너 산등성이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이란 도시가 있다. 예루살렘과는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지척에 있는 도시이지만 요즈음 이 곳으로 가려면 삼엄한 경비초소를 거쳐야만 한다. 8m 높이로 세워 진 콘크리트 장벽 위에는 가시철망이 쳐져 있고, 그 보다 더 높은 곳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감시초소가 있어 마치 적국의 국경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삼엄하다. 이스라엘이 2002년 7월부터 라말라와 베들레헴, 나불루스, 웨스트 뱅크에 높다란 콘크리트 장벽을 660kmsk 되는 엄청난 길이로 둘러쳐 놓아 이 담장이 이스라엘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두어 놓는 감옥 아닌 감옥을 만들어 놓았기에 그..

8 베들레헴 예수 탄생교회 구석구석 돌아보고

8 베들레헴 예수 탄생교회 구석구석 돌아보고 (주님 오신 성탄절이 얼마 안 남았다. 소아시아의 7교회에 보내는 편지 배달을 두 회 쉬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으로 가보자.) 동방박사가 와 본 베들레헴! 이 베들레헴에 예수탄생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신앙심이 깊었던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가 339년경에 지은 교회당으로 마룻바닥 밑에는 지금도 그 때 만들어 진 모자이크가 선명하게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지만 이 곳으로 들어 가기 위해서는 몸을 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작은 돌문을 지나야만 한다. 원래는 정문이 크게 만들어 졌었지만 후에 이교도들이 말을 타고 들어와말발굽으로 치욕을 줄까봐 말이 서서 들어 갈 수 없는 크기로 줄여 놓다 보니 사람들 도한 몸을 숙이고서야 들어 갈 수 있게..

7 버가모 유적지 2011-12-07

7 버가모 유적지 서머나를 떠나 2시간 정도 북상하여 버가모 유적지에 도착했다. BC 133년 이후 로마 통치를 받게 되면서 속주 ‘小아시아’의 수도가 되었으나 후에 세력이 커진 에베소로 수도가 옮겨지게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 이곳 역시 이 지역에서 제일 높은 아크로(산꼭대기)에 신전을 지어 놓고 그 주위로 크게 번성하였던, 선사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된 교통의 요지인 곳이다. 여기에서 말하는‘아시아’가 지금의 터키 지역을 가리키는, 그 당시의 지식으로는 동쪽에 있어 “아시아”라 하였으나 후에 진짜 ‘아시아’와 삭갈리는것을 막기 위해 나중에는 “소아시아”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산 정상에 널려져 있는 유적들은 에베소의 유적에야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아직 발굴이 다 안 되어서 그렇지 이곳 또한 엄청 큰 ..

6회 폴리갑 기념교회 - 서머나(SYURNA) 2011-11-30

6회 폴리갑 기념교회 - 서머나(SYURNA) 그 이름이 이즈밀로 바뀐 서머나. 저녁 무렵,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드는 그 도시의 전경은 마치 무슨 공업단지 같은 인상이다. 도시 뒤의 야산을 넘어가는 송전탑들도 줄줄이 보이고···. 옛날부터 에베소 다음가는 부유하고 번창한 항구 도시로서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살았는데, 로마정부와 결탁하여 기독교인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던 곳이다. 그러나 고난과 박해 중에도 기독교인들은 신앙 고수에 더욱 충성하며 로마의 황제 숭배를 끝까지 반대하며 굴하지 않았기에 계시록에 소개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빌라델피아 교회와 더불어 칭찬을 받으며 죽도록 충성하라는 권면을 받았던 것이다. 서머나'라는 이름은 "몰약"이라는 향료에서 유래되었다. 8~ 9 피트의 높이로..

5회 사도 요한 기념교회 터 - 에베소 2011-11-23

(사진 1) 요한 기념교회 터의 유적. (사진 2) 요한의 무덤 (사진 3) 요한의 묘비 (사진 4) 교회 안에 있었던 세례욕조. 이리로 걸어가면서 세례를 받았단다. (5회) 사도 요한 기념교회 터 - 에베소 ‘여기(에베소 유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고, 그 무덤위에 지어졌던 사도요한 기념교회 터가 있다기에 가보니 사도요한의 무덤임을 가리키는 하얀 대리석 비석만이 바닥에 누워 따가운 한낮의 햇볕을 반사해주고 있을 뿐, 관광객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 미소를 짓게 하는 게 있네! 누가 참 예쁜 짓도 했다. 하얀 대리석 묘비 위의 새빨간 야생 양귀비 한 송이가 더욱 새 빠알갛게 나의 눈과 마음을 자극하여 주는 게 아닌가! 다 무너진 벽과 몇 개 안 남은 기둥들이 그 당시의 규모..

4회 에베소 - 마리아의 교회 터와 3차 종교회의

4회 에베소 - 마리아의 교회 터와 3차 종교회의 마리아 기념교회 터의 남은 유적들 "폐허 속에 아직도 남아 옛 모습을 집작케 해 주는 돌기둥들.다 부셔 졌으나 역시 기둥은 오래 가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도난당한 기둥들이 지금은 어디어서 어떤 동량으로 쓰임을 받고 있을까...?“ 교회 앞 벽면에 웬 액자? 읽어 보니 “1967년 교황 바오로가 이곳을 방문하였도다.“ 이때부터 천주교도들에게는 성지화가 된 마리아 기념교회의 남아있는 앞면 벽이다.." 지금은 산으로 가려져 있지만 그 옛날에는 항구에까지 이어졌던 대로를 바라보며 조금 외떨어진 곳에 에베소 종교회의가 열렸던 마라아의 교회 터가 있다. 여기서부터 마리아가 신성시 되어 아직까지도 천주교회에서는 예수님과 같이, 아니 어떤 때에는 예수님보다도 더 숭상하..

3회 에베소 - 셀시우스 도서관과 유곽 2011-11-02

천천히 보이는 “성경 안팎의 세상” 3회 에베소 - 셀시우스 도서관과 유곽 셀시우스 도서관 아주 오래된 광고판이다. 오늘날까지 선명한..... 저 발보다 작은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에베소 유적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꼽으라면 단연 셀시우스 도서관이 될 것이다. 지금은 부서져 앞면의 일부만 남아 있지만 정교한 조각으로 이루어 진 도서관의 조형미는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건물이다. 어떤 사람은 이곳이 사도 바울이 근거로 삼았던 두란노서원의 자리라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하고···. 확실한 기록이 없으니 목청 큰 사람의 주장이 이길법하다마는 그게 무슨 대수리요. 그 당시의 세계에서 제일 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함께 세계 3대 도서관이었던 이 도서관은 로마시대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