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서유럽 대가리

66 필라투스 산 (Pilatus Mt)

천천히 chunchunhi 2020. 1. 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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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필라투스 산 (Pilatus Mt)

 

 

 

필라투스!

 

한국의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주일마다 함께 되 뇌이는 사도신경 중의 한 구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천주교에서는 본시오 빌라도라고 하는 그 본디오 빌라도의 라틴식 표기가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이고, 오늘 오르는 산의 이름 또한 그 이름에서 유래된 필라투스 산(Pilatus Mt) 인 것이다.

 

하고 많은 이름들 중에 이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얼까?

 

루체른 근교의 3대 명산 중의 하나로 용의 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높이 2,123m , 높지는 않아도 가파르고 웅장한 산의 전설을 알고 오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겠지?

 

늘 하던 식으로 배경부터 이야기하기로 하자. 나는 꼰대니까!

 

 

 

로마제국은 BC 3세기경부터 해외에 있는 로마제국이 정복한 식민지를 속주라 부르며 총독을 파견해 통치를 시작했다. 총독은 관할 속주의 백성들과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 사령관 예하 군인들에 대해 절대 권력을 가지며 왕처럼 군림할 수가 있었지만 유독, 유다 지방만은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던 곳이었다.

 

오랜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다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으면서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돌돌 뭉친, 반골 기질이 강한 민족을 다스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마침 정치적 야망이 있던 헤롯이라는 이두매 사람에게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메, 갈릴리, 베레아를 통치하게 위임하였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유대땅에 찾아와 만난, 소위 말하는 헤롯 대왕이다.

 

그러다 헤롯이 죽은 후 왕위다툼 끝에 3 아들들이 아버지 헤롯이 통치하던 지역을 셋으로 나누어 통치하며 분봉왕이라 부르던 시절, 유대 임금이 된 아켈라오 헤롯의 폭정으로 AD 5년에 반란이 일어나자 로마에서는 AD 6년에 1대 총독으로 코포니우스를 보내어 유대지방을 관할하던 중 AD 26년에 5번째 총독으로 본디오 빌라도가 이 지방 총독으로 온 것이다.

 

 

 

예수 당시 사건을 기록한 성경의 사복음서 여러 곳에서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며 예수를 놓아주려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유대인들의 극심한 함성에 못 이겨 최후의 사형언도를 내린 후 손을 씻으며, “나는 죄 없노라!”하였지만 결국 그 죄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불운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빌라도의 여생은 평탄치 못하였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명으로 로마로 소환되어 사형당한 필라투스의 시신을 로마의 테베레 강가에 묻은 후부터 강이 해마다 범람하자 유해를 수습하여 다시 묻은 곳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이 산자락의 호숫가였다.  그러자 산은 수시로 천둥 번개가 치는 공포의 산으로 바뀌었단다. 이 근처에 살던 당시의 사람들은 빌라도의 악령 탓이라고 믿으며 이 산을 필라투스 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 당시에도 이 산에는 산 이름이 있었을 터인데, 전해오는 이름을 알 수가 없다.   필라투스란 것 외에는

 

16세기에 이르러 루테른의 성직자들이 방문한 뒤 호수를 메웠단다.

 

이때 까지도 용에 대한 목격담이 자주 나타나자 1509년 루체른 시는 공식적으로 용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하였단다. (2011 3 14일 천국 지상의 중간계 라는 표제로 한국일보에 발표된 글 중에서 발췌 https://youlaw.tistory.com/292)

 

참 스위스 스럽지 않은 정권과 다수결의 횡포인 것 같다. 그래서 산 정상의 한 봉우리에는 지금도 용의 동굴이 있다. 어떻게 생긴 용을 보았을까?

 

 

 

이런 전설이 전해오는 필라투스 산을 오르는 방법은 산악인들을 제외한 여행객들에게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파른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오르는 방법이다.

 

선로가 놓여 진지 100년이 더 된 톱니바퀴열차를 타고 무려 48도의 아찔하게 가파른 경사의 암벽을 기어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우리가 선택한 조금 더 쉽고 편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방법이다.

 

산이 워낙 가팔라서 3번 케이블카를 타게 되는데, 처음 2번은 파노라마 곤돌라에 탑승해 초원지대에서 방목하는 소들의 워낭소리를 들으며 또 산을 걸어서 올라가는 트래킹하는 사람들도 보며 여유롭게 올라간다.

 

처음 갈아타는 곳에는 어린이나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산악놀이기구들도 여럿이 있어 쉬며 즐길 수도 있으나 우리같이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거저 눈으로 훑고 지나가게 마련이다.

 

산 정상에는 전망대와 레스토랑, 기념품가게들이 있으며 밖으로 나와 조금 걸어 가면 암벽사이로 구멍이 뚫려 있는 용의 동굴까지 갈 수가 있다.

 

 

 

내가 이 곳을 다녀온 것이 2006년이니, 이젠 벌써 옛날이 되었나보다.

 

서유럽 대가리를 쓰다 보니 요번 여행에서는 이 곳이 빠졌기에 오래 전 기록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 글을 썼지만, 요즈음에는 산 정상에 호텔, 필라투스-쿨름이 있어 호젓한 밤에 별을 보며 지낼 수도 있고, 또 새로운 공중 케이블카 드래곤 라이드(Dragon Ride)가 있어 필라투스(Pilatus) 정상까지 거의 날아가는 듯 갈 수 있단다.  다시 한번 가 보아야할 이유가 생기었다.

 

 "죄를 찾을 수 없다"며 예수를 놓아주려 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있지만 결국 유대인들의 극심한 함성에 손을 씻으며 사형언도를 내린 그 이유가 결국 그를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처형한 빌라도가 되어 영혼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비극의 산, 필라투스가 되었다 요즈음에도 양심을 거역하며 바르지 못한 판결을 하여, 죄 없는 사람들에게 죄를 씌우는 권력자들과 이에 부응하는 판사님들의 영혼은 앞으로 어디로 갈까?

알프호른 (alphorn). 은은한 소리가 구름사이로 퍼지는 순간에 느끼던 전율은 아직도 생생하다.
알프스 산골짜기에 나지막이 울리는 전통 악기 알프호른(alphorn). 중세 때 ‘교회 종’ 대신 사용했을 정도로 소리가 은은하고 깊이가 있다. 용의 굴에서 나오면서 찍은 사진이다.

 

 

건너편 바위에 뚫려 있는 용의 동굴. 어떻게 생긴 용이 여기에 살았을까? 
정상에는 이렇게 이름을 남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낙서판마저 만들어 놓았다.  심비(心碑)가 아닌 목판에 쓰여진 글이 얼마나 갈까? 그래도 열심들이다.ㅎㅎㅎ

 

용의 굴에 있을 때 잠시 구름 사이로 자태를 보여주는 루체른 호수와 산하마을.
케이블카를 바꾸어 타는 곳에 마련된 놀이기구들.
세계에서 제일 가파르게 오르는 산악철도(빌려온 사진이다.)   
맑은 날의 정상 모습(빌려온 사진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동안에도 변하는 날씨.  아무래도 아직 용이 살아 있는 모양이다.  알프호른 만드는 방법도 보시면 좋을것 같아 올려 드립니다.https://youtu.be/X4oig6N7v7o
[김성종] [9:48 PM] https://m.youtube.com/watch?v=ZU7RJg9cd0o&feature=youtu.be[김성종] [9:48 PM] https://m.youtube.com/watch?v=h5WvcytVhRM&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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