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스위스를 통하여 서부 유럽으로 연결되는 주요 무역로의 교차점이라는 전략적인 위치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도시, 인스브르크(Innsbruck). 유럽 곳곳으로 흩어지는 철도 교차점이자 시장 중심지인 산간도시, 인스브르크가 식품가공업과 금속세공업, 그리고 직물,신발, 맥주, 음악기기 제조업 등이 발달하였다지만 산간에 있는 도시가 작아서 둘러 보는데 한시간도 안 걸려 결국은 지나는 길에 잠시 쉬며, 중세의 건물들을 보는 것으로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일정을 짠다. 겨울에 스키를 타러 온다면 또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이곳에서 동계 올림픽 대회가 1964년과 1976년에 두번씩 개최되어 세계에 잘 알려진 후 중앙 유럽에서 인기있는 관광지이자 겨울 스포츠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 곳이 오랫동안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가 않다.
1806년, 나폴레옹이 해체를 선언한 신성 로마 제국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권력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갈라 진 후, 서 로마가 멸망을 당하면서 교황청의 세력들이 약해짐과 동시에 제후들의 힘이 커져가던 변혁의 시기에 동 로마마저 멸망을 당하자 제후들이 교황청에 권력행사를 하면서 생겨난 신성로마제국을 알자면 너무나도 골치가 아프니 한가지만 알아 두고 그냥 넘어가자.
로마 제국의 국가 문장에는 한 마리의 검독수리였던 것이 신성로마제국으로 넘어 온 후 합스브르그 왕가가 권력을 잡으면서부터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가 문장으로 사용되었기에 지금도 유럽의 곳곳에서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 조각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황금지붕(Goldenes Dachl)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가는 산악 통로 지대였던 이 지방을 티롤(Tirol)이라 부르며
로마 제국 시절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다루어 왔으나 오랜 세월 동안 주인이 수차례 바뀌어 오던 중 1278년 합스부르그가의 속령이 되었다.
1485년 티롤 계의 프레데릭 3세(Frederick III: 1415~1494, 재위 1440~1494)가 알브레히트 2세로부터 왕권을 인수하여 오스트리아를 지배하게 되면서 비엔나에 있던 수도를 인스부르크로 옮겨온 이후,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를 겸하게 되었는데 이 때 호프부르그 궁전(Hofburg)을 지었다. 프레데릭 3세 사후 아들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459~1519, 재위 1493~1519)가 마리아 비앙카와 결혼식을 올리고 살았던 곳이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그가 궁전 치고는 많이 초라한 궁전 모습이었기에 막시밀리안 1세는 5층 발코니의 지붕을 청동으로 만든 기왓장에 도금한 금기와 2,657개로 지붕을 올려서 화려함을 과시한 것이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황금지붕(Goldenes Dachl)이다.
그래서 인스브르크에서 일반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호프부르그 궁이 아니라 궁에 붙어있는 발코니의 황금 지붕이 되었다.
현재 2층에는 막시밀리안 박물관(Maximilianeum)이 자리하고 있다.
레오폴드 1세(Leopold I: 1640~1705, 재위 1658~1705)는 1696년 터키군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비엔나의 쉔브론 궁전을 복원했는데, 1696년부터 1702년까지 6년 동안 복원한 쉔브론 궁전은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가장 부러워하던 파리 베르사유 궁전처럼 대대적으로 개축해서 합스부르크가의 여름궁전으로 삼고, 인스부르크의 호프부르그 궁전은 겨울 궁전으로 삼았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와 안나 기념탑
마리아 테레지야(Maria Theresia 1717년 5월 13일 ~ 1780년 11월 29일)는 합스부르그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그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보헤미아, 만토바, 밀라노, 갈리치아와 로도메리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파르마 등을 통치하며 후에 토스카나 대공비, 신성 로마황후의 지위를 얻었을 만큼 대단한 여성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란츠와의 사이에서 총 16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자녀들 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하여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리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 파르마의 공비 마리아 아말리아 등이 있다. 이러니 결국은 거의 모든 유럽의 왕족들과 혈연을 맺은 셈이 된다.
그래서인지 개선문에서 구시가지를 향해 북쪽으로 뻗은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는 인스브르크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길 양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오래된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중앙에 13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하얀색 탑이 안나 기념탑이다. 이 탑은 1703년 7월 26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외스터라이군이 트롤 지방을 침략한 바이에른 군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자 세워진 기념탑인데, 7월 26일이 성.안나의 축일과 같은 날이었기 때문에 성.안나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아래에는 마리아의 어머니였던 성.안나 상과 트롤 지방의 수호성인인 카시아누, 비길리우스, 게오르기우스(2006년부터 성요셉상으로 교체됨)의 상이 세워져 있다.
북미의 모든 유명한 쇼핑 센터에서 볼 수 있는 스와로브스키는 명실상부, 인스부르크를 대표하는 회사다. 실제로 본사는 인스부르크에서 조금 떨어진 와튼즈(Watten)에 있지만, 인스부르크에 있는 스와로브스키 전시장은 3층에 걸쳐 전시해 놓은 영롱한 크리스탈 조각들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며 방문한 여행객들이 넋을 잃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한다.
물론 판매도 한다. 물론 적지않은 여성들이 사기도 하고….
1976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 스와로브스키는 기념품으로 크리스탈 생쥐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크리스탈 생쥐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스와로브스키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하였던 것이다.
현재 스와로브스키의 공장은 체코로 이전되었고, 그 공장 자리에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가 조성되어 있다.
왕은 이 발코니에서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또 대중들에게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발코니 앞 광장에 지어 진 허블링 하우스.(Heblinghaus). 허블링 백작이 자기 부인을 위해 지어 주었다고 전해지는 화려한 로코코양식의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던 그 옛날에 주렁주렁 폭 넓은 치마를 입은 부인은 몇 층에 살았었을까? 좀 가련한 생각이 드는 화려한 건물이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그가 궁전 치고는 많이 초라한 궁전 모습이었기에 막시밀리안 1세는 5층 발코니의 지붕을 청동으로 만든 기왓장에 도금한 금기와 2,657개로 지붕을 올려서 화려함을 과시한 것이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황금지붕(Goldenes Dachl)이다.
인스브르크 개선문. 이름은 개선문이지만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해서가 아니라 1765년 마리아 테레지아와 남편 프란츠 1세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 레오폴드가 스페인 공주와 결혼한 것을 축하해서 세운 기념문이다.
성 안나 기념탑
그 옛날 문맹자들이 많았기에 길 거리의 간판들은 주로 조각으로 무슨 영업을 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스와로브스키 전시장에 전시된 화려한 크리스탈 장식.
1976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을 위하여 지은 스키 점프 대.
[김성종] [8:36 PM] https://m.youtube.com/watch?v=0H47jeZjfiM&feature=youtu.be
[김성종] [8:36 PM] https://m.youtube.com/watch?v=aTbDk7th0C8&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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