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서유럽 대가리

71 하이델베르그 2 대학과 독일 약국 박물관

천천히 chunchunhi 2020. 2. 28. 06:50

71 하이델베르그 2  대학과 독일 약국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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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거저 낭만적인 장소로만 알고 있었다.

2006년 처음 이 곳을 방문하였을 때엔 우리를 태운 버스가 언덕 위 성 가까이까지 올라 갔었기 때문에 성으로 직접 들어가 둘러 보노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와 보니 성 아래 대학 마을에서부터 성으로 오르는 후니쿨라가 설치되어 있어 타러 가는 동안 학사주점이라는 별명이 붙은 황태자가 술 상에 올라가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던 장면을 촬영한 술집도 지날 수가 있었지만 아직 영업시간이 안되어 잠긴 문만 보며 후니쿨라를 타러 갔다.

여행 후에 집에 와서 다시 찾아본 하이델베르그 대학!

거저 낭만적인 대학만이 아니었다.

1385 10 23일에 교황 우르바노 6세로부터 대학을 설립할 특권을 얻은 후 1386, 팔츠 선제후였던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서 설립되어,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962~1806) 시대에 세 번째로, 독일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대학이 되었다.

이후 백 여년에 걸쳐 4개의 학부(신학, 법학, 의학, 철학)로 구성되었다가1890년에 자연과학부가 5번째 학과로 처음으로 독립하여 추가되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후에 미국의 인문대학들이 전반적으로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는데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그 당시 새롭게 설립되었던 존스 홉킨스대학 (Johns Hopkins University)의 롤모델이 되었단다.

1933년에 제3제국이 출현하자 그 당시 다른 독일 대학교들처럼 나치를 지지하며 상당수의 직원들과 학생들을 정치적이고 인종적인 이유로 해고시켰다.

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이민을 가야 했고 유대인과 공산주의 교수들 중 독일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추방하기도 하며, 교수와 학생들은 대학광장에서 분서(焚書)를 하며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소위 나치당을 지지하는 대학으로 악명 높아졌다. 뉴 유니버시티(the New University)의 정문 위에 새겨져 있던 글귀는살아있는 정신에게에서독일 정신에게로 바뀌었던 광란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광범위한 비나치화(denazification) 과정을 겪으며 정상화 되어가는 동안 1969년부터 학교는 16개의 특성화된 학부로 나뉘어지며 규모가 커졌지만 이 시기에는 또다시 독일 좌파 학생들의 주요 시위 장소가 되는 정치성향도 강한 대학이 되었었다.

그러나 2003년에 다시 새롭게 개편되어 지금의 12 학부로 나뉜 뒤 타임즈, U.S. News & World Report등에 인용된 권위있는 통계자료들이 2010-2018 사이에 발표한 세계 대학랭킹에 따르면 세계 30위권 정도의 대학순위를 보이고 있으며, 유럽 내 7, 독일 내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권위있는 대학으로 독일의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들이 이 도시를 거쳤단다.

이 대학교의 지질-고생물학 연구소에는 1907 년 이곳에서 55만 년 전의 원생 인류의 아래턱뼈가 발견되어 '하이델베르그인의 하악골'로 명명되어 전시되어 있는데, 학자들은 이 화석을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하며 진화론자들의 진화이론의 한 가닥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한다.

대학은 현재 15,000명 이상의 교직원과 31,00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중이며 그중 약 6,000명이 외국인 학생이다.  아마도 2012년부터 독일 정부는 모든 대학교의 등록금을 철폐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독일 약학 박물관

하이델베르그 고성 안 중앙 정원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웅장한 조각품들로 장식된, 그러나 폐가처럼 보이는 오토하인리히 관(Ottheinrichsbau)이 보인다.

1764년 낙뢰로 부서진 후 의도적으로 복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 1층에 1937, 자선재단의 형태로 설립된 독일 약학 박물관이 있다.

관광객들은 17 – 19 세기 의학을 대표하는 1,000가지의 원료 의약품과 더불어 당시의 약사의 사무실, 실험실, 약전, 조제실이나 약품의 역사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전시된 이 박물관을 통해 당시의 독일 의학 수준을 드려다볼수있다.

전시된 약초 표본들과 다양한 기구들을 설명하고 있기도 한데 한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공중에 매달아 놓은 악어 표본이다.

저 악어는 왜 여기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약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얼핏 스페인 여행중에 세비아 대성당(Catedral de Sevilla) 입구에서 천정에 매달려 있던 대형 악어가 연상 키웠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혹시 이슬람들이 스페인을 점령하였을 당시 모스크로 바꾸면서 중동에서 사용하던 약재들 중의 하나를 상징적으로 매단 것은 아니었을까?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아직 답을 못 찾았다.

, 약학 박물관을 돌며 약 기운을 받았으니 이제 포도주를 마시러 들어가 볼까?



도시에 넓게 펼쳐져 있는 대학 건물들은 의외로 매우 수수한 외양이다.


폐가처럼 보이는 오토하인리히 관(Ottheinrichsbau)

1764년 낙뢰로 부서진 후 의도적으로 복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1937, 자선재단의 형태로 설립된 독일 약학 박물관이 이 안에 있다.



여러 곳에 악어 표본을 매달아 놓았다. 왜 일까?


스페인 세비아 대성당(Catedral de Sevilla) 입구에서 천정에 매달려 있는 대형 악어. 이들에게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김성종] [7:32 PM]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euvcIGDzi4A


[김성종] [7:32 PM]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UCWp9Iiz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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