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뮌헨(München) - 독일
신성로마제국이 사라진 후 유럽의 정치판도가 복잡하게 얽혀가던 중 시작된 1차세계대전 동안 프랑스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뮌헨은 종전 후 정치적 변란이 잦았다. 1918년 11월, 혁명의 전야에 루트비히 3세 가문은 도시에서 탈출하였고, 쿠어트 아이스너, 초대 공화국 총리가 1919년 2월에 암살되자, 바이에른 공산당이 창단되어 집권하게 되었다. 이를 기화로 뮌헨에 거주한 적이 있던 블라디미르 레닌은 세를 불리려 획책하였으나 1919년 5월 3일에 자유군단에 의해 실패하였다. 다시 공화국이 된 이후, 뮌헨은 나치즘의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극단적 정치가들의 소굴이 되는 아수라장이었다.
1923년,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는 뮌헨에 집결하여 맥주홀 폭동을 일으켜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복하여 정권을 잡으려 했으나 이 폭동에서 진압당한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은 히틀러가 체포되며 잠시 힘을 잃었다. 당시 나치당은 뮌헨 밖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 배상금 등 경제악화와 사회 혼란 속에 여차여차하여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후 일어난 2차세계대전 동안, 뮌헨은 히틀러 통치 시대에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였기 때문에 더욱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었지만
1945년 미군의 점령 이후, 오히려 다른 서독의 폐허가 된 도시들에 비해 꼼꼼히 옛 도로를 살려 재건되어 1957년에는 인구가 100만명을 넘게 되어 베를린, 함부르크에 이어 독일 제3의 도시이자 독일 최대의 주인 바이에른 주의 주도가 되어, 금융업 · 상공업 · 교통의 중심지로서 남부 독일의 대표 도시가 되었다..
1972년, 하계 올림픽이 뮌헨에서 개최되었으나 당시 이스라엘 선수가 팔레스타인의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에 암살되는 사태가 발생하며 잇따른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세계적으로 테러가 자행되는 시발점을 만들기도 하였다
“프라하의 봄”으로 시작된 유럽 음악 축제가 돌고 돌아 10월이 되면 맥주잔을 부딪치며 “옥토버 훼스트”로 끝나는 도시 또한 뮌헨이다.
1810년,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1세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축제를 연 것이 바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의 시초였으나 요즈음에는 브라질의 리우 삼바 축제,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히며,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2주간 뮌헨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축제가 되었다. 해마다 축제 기간이 되면 3,000명에서 10,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텐트가 세워져 분위기를 꾸미며, 전 세계에서 약 700만 명이 방문하여 600만 리터가 넘는 맥주를 소비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상상하여 보시라!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 BMW의 본사가 있는 서유럽과 동유럽을 연결해 주는 최대의 거점 도시인만큼 언제나 여행객들로 넘친다.
시내 중심으로 들어서면 1488년에 건축된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 München)’의 녹색 탑이 눈에 들어온다. 일명 쌍둥이 탑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교회는 신 시청사와 더불어 뮌헨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1525년에 르네상스 양식의 양파모양의 돔을 올려 특이한 고딕양식의 탑이 되어 오늘날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바위 돔 교회’를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데, 돔의 모양도 조금 다르고, 돔 자체가 황금빛이 아니라 동록으로 초록색 지붕을 이고 있다.
두 개의 탑은 실제 높이가 100m, 99m로 조금 다르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 진 유럽의 대부분 성당에는 대칭을 이루는 두개의 탑이 있는데 가만히 보면 오른쪽 것이 항상 조금 더 높고 크게 만들어 졌다. 왼쪽의 작은 것은 여성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조금 큰 것은 남성을 상징한다고도 하고, 왼쪽의 작은 것은 마리아를 상징하고, 오른쪽의 큰 것은 예수님을 상징한다고도 하는데….
하나의 전해오는 설(說)인지 아니면 어딘가에 있는 기록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교회를 보고 나와 조금 더 걸으면 시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는 마리엔 광장에 들어서 웅장한 건물인 ‘신 시청사(Neues Rathcaus München)’를 볼 수 있다.
처음 볼 때에는 “왜 신 시청사라고 할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무척 오랜 역사를 가진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1867~1909년에 걸쳐 지어진 85m 높이의 네오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용케도 1,2차 대전의 전화를 피해 시청사 건물 중앙에 있는 독일 최대의 인형 시계 ‘글로겐슈필(Glockenspiel)’이 요즈음도 매일 오전 11시와 정오 12시가 되면 10분 정도 작동하며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5~10월에는 오후 3시와 오후 5시에 추가로 작동한다고 한다.
사람만 한 인형이 춤을 추는데 시계의 1층은 카니발 댄스를, 2층은 빌헬름 5세의 결혼식을 표현하고 있기에 뮌헨을 여행한다면 꼭 보아야 할 것으로 꼽힌다
그런데, 우리 일행들은 이를 6시로 알고 아직 시간이 안되어서 먼저 유명한 옥토버 훼스트의 출발지라는 맥주집으로 가기로 하였으니…. 오호 통제라!
시청에서 과히 머쟎은 곳에 있는 HB라는 상표를 단 맥주집.
들어서니 그 크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렇게 넓은 집도 자리가 꽈악 차 우리처럼 미리 예약을 안 하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넓은 홀을 꽉 채운 사람들, 그리고 빙 둘러 지어진 빌딩의 가운데 정원에 내 놓은 테이블까지, 사람들, 사람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많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독일의 유명한 흑맥주 한잔씩을 놓고는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노라니 이제는 시계가, 아니 인형이 춤을 출 시간이란다.
그런데…. 6시가 되었어도 춤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시간이나 늦게 온 것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맥주집에 맥주나 조금 더 마시며 더 앉아 있다 나올것을….
그 곳에서도 움파파 음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프라우엔 교회의 외부
내부는 현대적인 심플한 디자인이다.
음악의 도시 답게 마리엔 프라츠 광장에서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
연주 솜씨들이 보통은 넘는 것 같은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구 시청 건물에 제작된 글로겐슈펠 인형시계. 프라하의 천문시계와는 또 다른 느낌인데 결국 그 율동을 못 보았다.
구 시청사와 뒤에 보이는 프라우엔 교회(빌려온 사진)
옥토버 훼스티가 열리는 맥주집의 천정
정원 안까지 가득 찬 애주가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으며, 얼마나 많은 맥주를 마시었을까...?
옥토버 훼스티 때 세워지는 텐트(빌려온 사진)
이 정도는 나를 수가 있어야….
또 다른 음악, “움 파파”가 거리마다 흐른다.
거리 곳곳을 누비는 한 잔 마신 젊음들.
거리 곳곳에도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김성종] [6:49 PM] https://m.youtube.com/watch?v=bNihP21gBGs&feature=youtu.be
[김성종] [6:49 PM] https://m.youtube.com/watch?v=_LVaf4jx6PE&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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