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얀 후스 종교개혁광장(프라하 중앙 광장)
우리는 “종교개혁” 하면 먼저 독일의 마틴 루터를 연상한다.
지금도 모든 개신교회에서 매년 10월 31일이면 종교개혁 주일로 지켜지면서 마틴 루터와 그의 95개조 반박문을 이야기 하고는 한다.
그의 95개조 반박문을 읽어 볼 때 내게 특별하게 와 닿는 감흥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내가 깊이 있게 공부를 하지 못하여서이겠지만, 그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의 만인 성자 교회의 문 앞에 ‘95개 논제’를 내 걸음으로써 기존 교회와의 본격적인 논쟁에 들어가게 되며, 이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기록에는 교회의 문 앞에 논제를 내걸었다는 말도 없다. 더욱이 반박문은 루터가 손으로 쓴 뒤 인쇄되어 사람들에게 읽혔으며, 책으로 펴낸 뒤에도 교회의 문 또는 그 근처에 게시되었다는 말은 나타나 있지를 않다고 한다. (발터 크래머, 괴츠 트랜클러 (2002년 9월 10일). 《상식의 오류 사전 I》, 박영구, 박정미 옮김, 초판 10쇄, 서울: 도서출판 경당, 80~82쪽쪽. ISBN 89-86377-17-6))
그러던 차에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들린 체코의 프라하에서 새로운 동상을 만나게 되면서 “역사의 매듭은 때와 장소와 정치적인 여건이 잘 이루어 질 때에야 맺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프라하 시의 중앙에 조성 된 얀 후스의 종교개혁 광장(일명 프라하 중앙광장이라고도 불린다.) 에 서있는 동상, 얀 후스.
얀 후스(Jan Hus, 1372년? ~ 1415년 7월 6일)는 마틴 루터보다 111년 먼저 태어난 체코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예정구원설을 기반으로 성서를 그리스도교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인정할 것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보였으며, 교황 등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로부터 파문당했으며,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후스의 처형 뒤 후스의 신학사상과 뜻을 이어받은 강력한 개신교 공동체인 보헤미안 공동체가 형성되어 후일 마틴 루터뿐만이 아니라 많은 종교 개혁자들에게 영향을 끼치어 오다, 1618년부터 시작 된 그 참혹한 30년 종교전쟁의 주인공들이 되었던 것이다.
후대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동상을 세웠으나 화형 당할 때 그의 얼굴이 그려진 모든 그림들이 다 태워졌기에 동상의 얼굴은 상상의 얼굴이라고 한다.
비록 얼굴은 상상으로 복원 된 그 동상을 받치고 있는 대에는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새겨져 후세에게 그의 사상을 전수하여 주고 있었다.
모를 글이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향하라”
아마도 요한복음8장 32절의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이 얼마나 올바른 말인가.
그러나 또 얼마나 지키기 힘든 말인가 말이다.
우리야 거저 한번 읽어 보면 그만이라지만 이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엄청나니 말이다.
오래 전에 방영된 “프라하의 연인”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된 프라하요, 또한 얀 후스의 동상이다.
그 드라마에서는 얀 후스의 동상 밑 밭침이 연인들 사이의 약속을 아니면 소원의 부적을 붙여 놓는 곳으로 나와 쪽지들이 꽈악 차 있었는데….
그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깨끗하게 치워진 채 얀 후스의 유명한 말이 체코어로 음각되어 있었다.
얀 후스(Jan Hus, 1372년? ~ 1415년 7월 6일)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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