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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얍복강(Jabbok) 1 야곱

천천히 chunchunhi 2013. 4. 20. 01:25

58  얍복강(Jabbok) 1 야곱

 

"몇일 후 몇일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장례식 때마다 불러 우리에게 친숙(?)한 강 요단강을 우린 마치 죽음의 피안에 가기 위해서 건너야만 하는 그런 상징적인 강으로 생각해 왔는데, 막상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으로 갈 때 그 국경을 이루고 있는 강이 요단강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다리를 건너는 것은 우리가 건너는 것 하고는 상황이 엄청 다른, 문자 그대로 서로의 피안으로 건너가는 길만큼이나 어려운 것을 요번 여행을 통하여 보았기에 어쩜 그 찬송가의 가사가 좀 더 몸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넓지도 않은 요단강 위에 쳐진 국경선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이 수없이 많은 지역이 바로 중동의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사이에 있으니까

 

요단강을 건너 한참을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얍복강을 만나게 된다.

허나 아무리 둘러 보아도 강같은 강은 안보이는 데 벌써 건넜단다. 허허.

 

흐르는 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얍복강,

야곱이 밤 새워 환도뼈가 부러 지도록 주의 천사와 씨름하며 축복을 하여 달라고 매달린 끝에,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끝내는 그의 욕심대로 축복을 쟁취한 나루터, 얍복강이 여기 어디일 테인데……..

 

소개서에는 갈릴리와 사해 사이의 요단 건너편의 강으로 길이는 96km, 요르단에서 야르묵강 다음으로 가장 잘 배수되는 지역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였지만, 우리가 건넌 얍복강은 징검다리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실같이 가늘게 흐르는 개울이었다..

요단강과 만나는 지점은 좀 더 넓으려는지.

지금은 강 같지도 않은 얍복강을 건너며 지금은 이스라엘이 된 야곱을 생각하여 보았다.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는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나에게는 야곱이 그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형인 에서로부터 교활하게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고, 또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어머니와 짜고 속여서, 형인 에서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축복을 도적질 한 그 행위가 맞이인 내가 보기에는 도저히 좋와해 줄 수가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중에서 부터 먼저 나오려고 형의 발목을 잡는 그 뻔뻔 스러운 욕심(?) 또한 그런 욕심을 부릴 수 없는 나의 나약함이 좋와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일차적인 욕망은 달성하였지만, 그렇게 옳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축복도 "저 죽으면 그만"인 것을 알아서인지, 아님 죽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하여턴 형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면서 돌베개를 베고 자는 중에 꿈을 꾸고, 그 꾼 꿈이 하도 좋와, 그 꿈 또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욕심에 하나님께 서원을 하며, 자기가 얻은 십분지 일을 바치겠노라 스스로 약속하여 단을 쌓아 벧엘이라 이름 하였건만 그 후에 이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이 또한 공수표아닌가?

이런 뻔뻔스러움이 또한 나의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는 말이다. .(머언 훗날 다시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서야 그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기는 싸았지만십분지 일은 누구에게 주었을꼬.?)

 

그 뿐이면 좋겠는데 거기에 또 더하여 질 것이 몇개 더 있다.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20년의 세월을 보낼 수 있는 지독한(?) 인내와 오기가 그 하나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외삼춘도 속일 수 있는 교활함,(그 또한 외삼춘에게 속기도 하였으니 피장파장인가?)이 둘이요,

그리고 자기가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거저 축복만을 달라고 무대뽀로 매달리는 뻔뻔스러움이 그 셋으로 나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그 마음이 다 다르니 이건 나의 마음뿐이라는 사족을 달아 놓아야 할까보다. 아님 또 오해를 살 수도 있을 테니까.)

 

나에게는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던 야곱인데, 그 얍복강을 건너면서 피뜩 성경에 기록되어진 이야기 하고는 조금 다른 상황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마음에, 그것도 쌍둥이로 태어 났는데 자기가 동생이 되어야 하는 게 억울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형, 에서는 몸도 건강하여서 들에 나가 사냥도 잘하기에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는데, 자기는 성격도 내성적이라 집안에서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요리나 하며 사는 세월이 하도 속 상하니, 형으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사서라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욕심이 왜 없었겠는가

 

집안에서 어머니를 잘 도와 주니, 이삭의 부인( 또 아무개의 부인허허허),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오히려 집 밖으로만 나도는 에서보다는 야곱이 더 이뻣으리라.

아니 이삭의 부인을 떠나서 야곱의 어머니로서 좋게 생각을 하기로 하자.

항상 약한 자식에게로 좀 더 많은 정성과 사랑이 쏠리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니까..

이런 야곱이 기여코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던 것이다.

형에게 죽 한그릇과 떡까지 푸짐하게 한상 차려 주고는 그 형의 명분을 산 것이다.

 

 

 

달리는 버스 창으로 본 얍복강.

이게 어디 강인가? 개울이지....

지금은 건기라 물이 없을 때라나....?

조금 더 내려가면 더 넓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