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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히포드럼 - 로마시대 말들의 경주장

천천히 chunchunhi 2012. 6. 1. 09:13

27 히포드럼 - 로마시대 말들의 경주장

 

히포드롬 (Hippodrome)

 

말들의 경주장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히포드럼,

본래 이곳은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는데, 4세기 무렵 기독교 공인을 선포한 로마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영화 <벤허>에서 보았듯이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단다.

 

4만 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는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도 서방의 그리스와 동방의 아라비아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전성기를 이루던 동로마 사람들이기에 서로마 사람들로부터 비잔틴으로 불리면서 천 년 이상 영화를 누리었지만 결국 셀주크 터키 (Seljuk Turks :소아시아와 중동지역을 장악한 모슬렘 세력으로 소련의 볼가 강에서부터 남하한 오늘날의 터키 선조들이다. 우리나라하고는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데 이런 역사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에게 무너지면서 이 지역이 전부 모슬렘의 세력 속으로 떨어지게 되었었다. 그 후, 이를 탈환하기 위하여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계속된 십자군 전쟁으로 이 광장에서 벌어 진 수없이 많은 치열한 접전으로 광장 내 유적이 대부분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수난을 이겨내고 아직까지도 묵묵히, 똑바로 서 있는 세 개의 기념비는 많은 사연들을 다 알고 있겠지?

 

지금 까지도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디킬리타스(Dikilitas)"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원래 기원전 1490년에 메소포타미아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헌사 한  사원에 세워졌었던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양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큰 탑이다.

이 탑이 서기 4세기에 로마황제의 명령으로 지중해를 건너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이 큰 돌덩어리를 그 때 어떻게 움직였을까? 만든 이집트인들도 대단하지만 그걸 옮겨올 생각을 했고 옮겨온 유럽인들도 정말 대단하다. 이건 돌 한 덩어리(단본석 單本石 mono-stone)로 된 것이라 분해해서 가져올 수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이루어 졌던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 때 로마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는 모양과 전차 경기를 보고 있는 왕족들의 모습, 전차 경기의 모습들이 부조된 받침대 위에 올라 아직까지도 꼿꼿이 서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1700년 동안이나.

조금 떨어 진 곳에는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Orme Sutun)",

이것은 그리스 본토 델피에 있었던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 직경 3미터의 황금 그릇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큰 뱀의 기둥(Serpentine)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머리가 잘려 나가고, 몸통만 남아 있어 그게 과연 세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 헷갈리게 서로 꼬고 있는 부서진 청동기둥에 지나지 않았다.

그 뱀 머리는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황금 그릇은?(뱀 대가리 3개 중 하나는 지금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디킬리타스라고 불리우는 오벨리스크와 오르메수툰과 직선을 이루는 거리에 또 다른 하나의 커다란 탑이 있었다.

잔 돌들을 모아 쌓아 올려, 디킬리타스와 거의 같은 높이의 탑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선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설인데···. 언제, 왜 만들어 졌는지는 정확한 기록은 모른다고 한다.

허나 중간, 중간에 떨어져 나간 돌들이 있었는데 이 자리는 십자군전쟁 때 이 탑을 장식하고 있던 청동 판들을 모두 약탈해 간 그 상처라고 한다.

과연 어떤 청동 판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십자군 군사들이 떼어 간 그 동판들이 동전이 되어 중세의 유럽에서 통용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기사들의 갑주로 만들어 졌는지도....

 

사람들은 왜 탑을 쌓을까?

그것도 한 눈에 다 볼 수 없도록 높게……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테인데.

아마도 하늘을 향한 소망이 아닐까?

비록 그 탑에는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의 일상이 조각되어져 있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 살다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이 돌아가는 곳, 본향은 하늘이라는 무의식적인 의식의 발로이리라. 이 탑을 만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한 눈으로 다 볼 수 없는 탑을 쳐다보노라면 자연히 눈이 하늘로 가지 않겠는가?

하늘!

우리가 말하는 하늘이 비록 우리가 볼 수 있는 그 하늘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린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하늘(sky가 아니고 heaven)에 계시다고 하니까.

룩소 사원 앞에 서 있어야 할 탑이 바다 건너 동양의 진주인 이스탄불, 아니 그 옛날의 비잔티움의 히포드럼에 서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쳐다보는 탑 꼭대기 너머에는 이제는 비 개인 파란 하늘이 깊게 펼쳐 있었다.

 

 

사진설명

 

 

"디킬리타스(Dikilitas)"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

 

 

디킬리타스(Dikilitas) 받침대의 조각

 

 

큰 뱀 기둥(Serpentine)

 

4 상처투성이의 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