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칼레메그단 요새 –동유럽편 베오그라드 - 세르비아
세르비아는 아직도 전쟁의 상혼에서 벗어나지를 못한 채로 수도인 베오그라드의 거리에는 부서진 건물이 곳곳에 있고, 벽 마다 총탄자국이나 있었다.
비마져 오니 그 자욱들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아침 후에 간 곳이 칼레메그단 요새다.
칼레메그단 요새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인 칼레메그단 공원은 사바강과 다뉴브강dl 합류하는 곳의 제방 위에 있는 공원으로, 중앙의 칼레메그단 성터는 발칸의 어지러운 전쟁 역사를 증거하듯 주인이 수없이 바뀐 성이었지만 지금은 강을 낀 아름다운 산책로와 동물원, 전쟁기념관, 승리의탑 등이 있어 시민들이 주인이 되어 즐겨찾는 훌륭한 휴식처가 되었다.
비가 오는 공원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빗속에 성위에 서서 비오는 다뉴브강과 사바강을 보는 것 또한 정취라면 정취일 테인데…. 비가 너무 오니 캬메라를 꺼낼 수가 없다. 그래서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던 방수용 똑딱이 캬메라로 찍을 수 밖에 없었다.
매우 견고하게 쌓여진 성채를 둘러 보노라니 성 주위에 전시된 탱크와 대포들 또한 우리처럼 비를 맞고 있었다.
성 밖의 오솔길에는 무슨 그림 전시회가 있는 모양이다.
원본은 아니겠기에 빗 속에 그대로 두었지?
누구의 그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밝은 색감에 벌거벗은 여인들의 모습이 빗속에 처연한 느낌이었다.
그 누드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 또한 꽤나 처연하였으리라…ㅎㅎㅎ
공원을 나와 시내로 움직였다.
일정표에 있는 “미하일로 기마상”을 보러 간단다.
그러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정표에 있는 것은 다 한단다…허허…?
빗 속을 걸어 시내 중심지로 왔다.
미하일로 기마상
터키의 지배가 끝난 1867년 베오그라드로 수도를 옮긴 세르비아 왕국의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왕(Knez Mthajlo Obrenovi)의 기마 동상(騎馬銅像)이 세워진 이래, 베오그라드 시민들이 가장 자랑하는 장소로 손꼽힌다.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다음 유럽의 발칸반도 중앙부에 생겨난 나라이다. 신생국이라기 보다는 유고슬라비아 이전에 있던 왕국의 이름으로 되 살아 난 나라인 것이다.
세르비아Serbia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하얀 도시’라는 뜻이라 한다.
이 하얀 도시가 1993년 3월 피빛으로 물들면서 세계 여론의 적의가 집중되는 수도가 되었었다.
바로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서방의 매스컴은 내전의 책임을 주로 세르비아 민족주의 쪽에 돌렸고, 그래서 허울만 남은 유고연방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무장세력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피에 굶주린 도살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공산주의자에서 민족주의자로 전향한 그들은 제 권력을 위해서였건 세르비아인 공동체의 집단 이익을 위해서였건 무자비한 살육을 직접 지휘하거나 거들고 있었다. 보스니아 무슬림들을 겨냥한, 그리고 크로아티아인들을 겨냥한 세르비아 민병대와 정규군의 ‘인종청소’ 작전은 서방 언론의 날조가 아니라 실제였다.
그러나 전시(戰時)의 잔혹행위가 어느 한 편에 의해서만 저질러질까?.
흔히 말하는 ‘인종청소’의 유혹에는 크로아티아인들도, 그리고 그 정도는 덜할지언정 보스니아 무슬림도 자유로울수 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전쟁의 와중에 민족주의자가 되지 않을 자유로운 영혼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이들의 민족주의는 크로아티아인이나 보스니아인을 겨냥하기보다는 서방 강대국을 겨냥하고 있었다는 것이 바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이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유고 내전의 배후로 지목한 세력은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를 바란 서방의 정치,종교 권력이었다니까…..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에. 그래서 지금은 세르비아 사람들의 수도일 뿐이지만, 베오그라드는20세기 대부분 기간 동안 발칸의 유고슬라브, 특히 남슬라브인 모두의 수도였다.
흔히 ‘두 번째 유고슬라비아’(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존재했던 유고슬라비아왕국을 첫 번째 유고슬라비아로 치고 부르는 말이다)라 부르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창건자 티토는 크로아티아 출신이다.
그가 태어날 때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해 있었다. 티토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웅적인 파르티잔 투쟁을 펼쳐 발칸을 독일군 손에서 해방시킨 뒤 베오그라드에서 35년 동안 유고슬라비아 전체를 다스렸다. 그리고 베오그라드에 묻혔다. 역사는 그를 어느나라 사람이라고 말할까?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나 헝가리? 아니다. 그의 조국은 유고슬라비아일 것이고, 베오그라드는 유고슬라비아인 티토의 수도일 것이다.
196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보 안드리치는 보스니아에서 태어났지만 양친 모두 크로아티아인이었다. 그가 태어날 때 보스니아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했다. 안드리치는 제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리게 될 <드리나강의 다리>를 1940년대 전반기 독일 점령 하의 베오그라드에서 썼다. 전후에 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정치지도자로 활동했으나, 은퇴한 뒤 베오그라드에서 죽었다.
안드리치의 조국은 크로아티아인가? 보스니아인가? 오스트리아나 헝가리인가? 아니다. 그의 조국은 유고슬라비아일 것이다. <드리나강의 다리>에서 시작해 <트라브니크 연대기>와 <아가씨>로 이어지는 그의 3부작 역사소설은 보스니아를 주된 배경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그 소설들이 그리는 역사는 문화와 인종이 교섭하고 뒤섞이는 발칸 전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드리나강의 다리에 대하여서는 조금 후 모스타에서 좀 더 자세히 나올 예정이다.)
이렇듯 세르비아야말로 발칸 역사의 주역이었고 비잔틴문화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그네들의 주장이 허언만은 아닌 것이리라….
'신문 연재-토론토지역 > 우먼 파워 동유럽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 모스타 , 드리나강의 다리 –동유럽편 보스니아 2011-06-29 (0) | 2012.01.30 |
---|---|
18 라틴 다리 -사라예보- 동유럽편 보스니아 2011-06-22 (0) | 2012.01.30 |
16 영웅광장 일명 미레니움(천년) 광장 -동유럽편 헝가리 부다페스트 - 5 2011-06-10 (0) | 2012.01.29 |
15 부다왕궁(Buda Castle) –동유럽편 헝가리 부다페스트 -4 2011-06-01 (0) | 2012.01.29 |
14 어부의 요새(Halaszbastya)- 동유럽편, 헝가리 부다페스트-3 2011-05-21 (0) | 2012.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