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우먼 파워 동유럽 여행

18 라틴 다리 -사라예보- 동유럽편 보스니아 2011-06-22

천천히 chunchunhi 2012. 1. 30. 10:10

 

 

 

 

 

18  라틴 다리 -사라예보- 동유럽편 보스니아

 

보스니아 또한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입국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을 보니 아직 유럽연합에 속하지를 못한 모양이다.

모슬림이 인구의 태반인 유럽 속의 모슬림 나라가 보스니아다.

대한민국에는 1973년 이에리사가 주축이 된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의 단체전 우승으로 알려진 도시,1984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 정도로 우리에게 알려 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외곽에 새로 지어진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이게 뭘까?

방에 싱글베드 두개가 붙어 있는데, 그 사이로 12인치정도의 높이로 나무 담이 서 있는 것이…..

밤새 옆에 자는 사람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인 모양이지? 허허허

아무리 모슬림의 나라라고 하여도 자식을 낳을테인데….우리야 피곤에 절어서 옆에서 거들치는 것 없이 편안히 잠을 잤지만….

처음 간 곳이 라틴 다리다.

 

라틴 다리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한 장소로서 유명해진 곳이다,

다리 자체는 별 특이한 것이 없으나 이 위에서의 사연이 기가 막힌 것이니까....

마치 개성의 선죽교처럼 말이다.

내용인즉은 이러하다

 

1914 6 28,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조피가18세의 청년이자 대학생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된 사건이다.

 프린치프는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으로 보스니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독립하여 세르비아와 합칠 것을 원하는 남슬라브 운동 조직에 속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군사연습을 보기 위해 당시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자 프린치프와 4명의 혁명가 학생들이 음모를 준비했다.

 

황태자 부부가 탄 차는 일차적으로 카브리노비치가 던진 폭탄을 맞아 테러를 당했으나, 혈기왕성한 황태자는 폭탄을 주워 테러범에게 도로 던져 위기를 면했다.

밤이 되어 차를 타고 가던 중 황태자는 아까 자신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쳤을 것이라며 걱정하였고, 폭발 사고로 부상당한 관리를 방문하기 위해 병원으로 가던 중,  라틴 다리를 건너는 동안 이 틈을 타서 저격범 프린치프가 차 앞으로 뛰어들어 총을 쏴 먼저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하고 다시 총을 쏴 부인 조피를 암살했던 것이다.

 

세르비아가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남슬라브 운동을 은근히 부추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 사건을 구실로 세르비아와 전쟁을 결심했다.

세르비아와 전쟁을 하기 위해서 동맹국 독일의 협조를 요청했고,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를 무조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는 독일이 건네준 백지 수표를 믿고 7 23일 세르비아에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의 최후통첩을 보내며 48시간 이내에 답변을 요구하였다.

결국 세르비아는 이 최후통첩을 거부하고, 오스트리아는 7 28,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러시아는 7 29일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자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러시아와 프랑스에 동시에 최후통첩을 발했다.

 러시아에 대한 최후통첩은 “총동원령을 해제하라. 안 그러면, 전쟁 상태로 간주한다. 12시간 내 답변하라.”였는데, 러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는 “만일 독일이 러시아와 전쟁 상태로 들어가면 프랑스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18시간 내 답변하라.”라고 발했다.

프랑스는 프랑스의 국가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답변했다.

 

그리하여 8 1,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후 각국은 서로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니 실제로 제 1차 세계대전은 7 28일부터 시작되었고,

이 전말의 시작이 사라예보의 라틴다리 사건인 것이다.

 

아직도 간간히 뿌리는 비, 어제 내린 비로 인하여 라틴 다리 밑을 흐르는 물은 뻐얼건 황토물이었다.

이런 황토물도 시간이 흐르고, 비가 그쳐 안정이 되면 산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 물, 시원한 물이 될 수도 있겠지?

어째 흐르는 강물이나 사람사는 인생이나  그 인생이 쌓여 이루는 역사나 다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탁류로 휩쓸리다가는 잔잔한 맑은 물이 되기도 하고….

 

한 때에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또 시간이 지나면 다정하게 지내는 나라들 처럼 개개인의 삶의 변화 또한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그런데 왜 아직 종교에서의 반목만은  그 반목이 다시 변하여 하나로 될 수 없는 것일까?

 

다리에서 벗어나 골목를 몇개 도니 이 곳이 사방 반경 200미터안에 세계의 4대종교, 즉 유대교, 이슬람교, 캐토릭교, 개신교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란다.

한 곳에는 모슬렘 사원이 있고, 그 옆에는 유대인 회당이 있고, 조금 너머에는 성당의 종탑이 있고그 어디엔가 있을 교회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좁은 골목이 굽이 굽이 이어진 구시가지에는 은과 구리로 세공하는 세공 업소가 많았다.

여럿의 갈림길이 한 곳으로 모이는 곳에 넓은 광장이 있고 그 중간에는 분수대가 있었다.

세빌리라고 불리우는 분수 보다는 음수대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 겠다. 흐르는 물은 마음껏 마셔도 괜챤을만큼 깨끗하다니까

그 주위에는 수 많은 비들기들이 던져주는 모이에 따라 날라 올랐다가는 내리고…. 평화스로운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서 왜 그리 살벌한 전쟁이 일어나고, 내전이 생기고 한 것일까?

결국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을까?

평화가 왔을 때에는 그 평화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다 죽은 다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