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게 나타나는 보고
페트라(반석이라는 뜻)
요르단의 국보 1호!
아니 국보 1호는 아마도 국왕인 모양이다.
눈이 닿는 곳곳마다 보이는 것은 국왕의 사진이니까.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사진이 페트라의 사진이다.
그만큼 페트라는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중동의 유일한 나라가 내세우는 관광자원의 원천인 모양이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명소 10군데 중의 한곳인 페트라! 말로만 들어 오던 그 페트라로 가고 있는 중이다.
황량한 광야, 풀포기조차 보기 힘들도록 황량하기만 한데 그래도 가끔은 양들을 치는 베드윈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그래도 우기가 끝난 직후라 풀들이 많이 나 있는 상태라나….
조금 더 있으면 이 도로 주변에서 파란것은 볼 수가 없단다.
평평하던 광야가 조금씩 산지로 변하는가 하더니 굽이져 어느 골목 내리막 길에서 내리란다.
모세가 광야에서 바위를 쳐 물을 얻은 그 바위가 있는 곳이란다.
바로 므리바의 샘물 즉 모세의 샘이다.
모세가 그리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므리바의 물을 내면서 바위를 두번 쳤고, 또 여기서 나는 물이 바로 자기가 한 것처럼 역정을 내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민수기 20장8-12).
자그마하게 지어진 집 으로 들어가니 기묘하다고 하기에는 좀 뭐한 그러나 잘 생긴(?) 바위가 있고 그 밑으로 물이 흐른다.
모세가 바위를 친 이후로 오늘까지 계속 흐른다고 한다.
허리를 굽혀 그 흐르는 물에 손을 담구어 보았다. 시원한 물이었다.
안내하는 이지영 선교사가 절대로 마시지는 말란다.
그 옛날 그 사람들은 이 물을 시원하게 마시며 갈증을 풀었는데 문명이 발달한 오늘, 수도물에 단련이 되고, 증류수에 약해진 우리의 위장은 이 물을 한 목음만 마셔도 설사에, 복통에 고생을 한단다.
앞으로 갈 길이 머니 벌써부터 설사하고 복통을 일으키면 안되지.
거저 손끝에 감겨오는 그 느낌으로 만족할 수 밖에…..
다시 굽이굽이 산길을 내려 가니 많은 버스들이 서 있는 곳으로 왔다.
페트라의 입구인 모양이다.
Petra, (히브리어로 반석이라는 뜻)
옛 나밧 왕국의 수도였던 호르산(Mount Hor) 북동사면의 고도(古都)이다. 현재의 지명 이름은 와디무사(Wadi Musa)로 불리우는 돌산들 사이에 천연적으로 생긴 계곡 지대에 형성된 도시였다.
아라바의 동편에 있고 사해의 남편 약 80km지점에 위치한 성경에 나오는 셀라(왕하 14:7, 사16:1,42:11)와 동일시된다고 한다.
이 페트라는 먼저 고대 국가 에돔(Edom)의 수도이었으나, 기원 전 300년경 에돔인을 몰아낸 나밧 사람의 수도가 되었다. 대상교역에 의해 수세기간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번영했다. 나밧사람은 선주민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하여 그것을 보다 고도로 발달시켰다.
신전, 주거, 분묘 등 모두 붉은 석회석으로 조각되어 있는 고적은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1812년에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나밧 사람(나바테안 Nabateans)은 신구약 중간시대, 주로 북 아라비아를 지배하고 있던 아라비아인이라고 한다
나바테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그 문화의 절정을 이루어 다양한 상품, 향신료, 철, 직물, 의약품, 등을 무역했는데 특히 값비싼 유향이 주된 품목이었다.(유대의 역사에 보면 헤롯임금시대에 이들에 대한 기록이 무척 많이 나오고 있었다.)
나바테아인은 이 유향을 아라비아 사막의 깊은 곳에서 지중해 연안의 상업 중심지로 운송하기 위해 이 길을 이용했다.
이 곳에 정착한 그들은 돌산을 깎아내고 조각하는 방법으로 독특한 암석문명을 이루며 많은 건물들을 만들었다.
이 '조각 건물'들에는 그 지역을 지나갔던 여러문명의 자취가 그대 로 남아있어서 초기의 단순하고 투박스러운 나바테아인 고유의 건축양식으로 시작 해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건축양식을 거쳐 후기의 세련되고 건축미가 넘치는 희랍, 로마식 건축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건축양식의 변천을 잘 보여주고 있다.
페트라의 위치는 요단강과 사해, 홍해로 이어지는 지진지대다. 따라서 이 지진지대 안의 역사적 고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페트라의 유적들은 돌산 자체를 건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웬 만한 지진에도 견딜 수가 있어 오늘까지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후 가나안 복지를 향하는 여정에서 이 지역을 지나갔다고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에 이곳은 더욱 새로운 감격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페트라에 있는 조각 건물들은 지금까지 약 4천 곳이 확인 조사되었단다. 신전, 왕궁, 공공 건물, 왕족과 일반인들의 무덤, 주거지 등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많은 유적들을 일일히 돌아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자면 1주일 이상 걸린다니 거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중요한 건물 몇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그 나머지는 기록에 의존하여 사진을 보며 감흥을 느끼는 것으로 대신하여야 할 것 같다..
페트라의 유적 중 대표적인 것으로 '보고'라고 부르는 건물을 손꼽 을 수 있다. 전면에 6개의 '고린도'식 석주가 서있는 희랍식 건축 양식의 건물로 서기전 1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정면 제일윗부분에 항아리 형태가 조각되어 있는데, 그 속에 나바테아인들이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속설이 전해 '보고'라는 이름이 생 겼다.
다음, '수도원'이라고 부르는 건물은 페트라의 유적 중 가장 규모 가 크다. 전면의 폭이 50m, 높이가 45m에 이른다. 수도원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 건물 내부 벽면에 십자가 몇 개가 새겨져 있는데서 유래했다.
나바테아인들이 이 건물을 세웠던 원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내부에 십자가를 새긴 것으로 미루어 서기 4세기 이후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 건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페트라 건물들의 내부는 의외로 단조롭다. 돌을 파내 규모가 큰 직사각형 방들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건물의 내부 벽면에는 아무런 장식이나 벽화가 없다.
그러나 암석 자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색깔과 기하학적 또는 물결 무늬들이 방 전체를 휘감고 있어 어떤 궁중 벽화나 장식보다도 현란하고 황홀하다.
페트라의 유적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야외 원형극장이다.
바위산 자체를 깎아서 만든 것으로 나바테아인들의 기발한 독창성과 우직한 추진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33개의 계단식으로 되어있고, 좌우의 너비가 40m에 이르며, 7천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의 로마식 원형극장이다.
이렇게 나바테아인들은 돌을 깎아 웅장한 건물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은 거칠고 투박한 석공의 손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출토되는 질그릇의 문양은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었고, 토기의 두께는 2㎜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해 '계란껍질 토기' (egg-shell pottery)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다.(주위의 기념품 가계에서 돌을 깍아 만든 찻잔의 두께가 실지로 이렇게 얇은 것을 보았다.)
이처럼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던 나바테아인들이 문자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사와 문학, 사상과 종교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고대 문명이 안고있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다.
재미있는 것은, 산 사람들은 이곳에 천막을 짓고 거주했고, 죽은 이들을 위해선 절벽의 모래바위를 손으로 조각하여 신전을 파 동굴을 만들어 공동묘지의 도시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오벨리스크 형태의 무덤, 왕족들의 무덤, 와디 무사의 물을 끌어들인 수로(水路), 페트라의 수호신과 기타 신상들의 조각, 캐러번들이 오고가며 기도하던 성황당, 당시 대상의 행렬 모습이 절벽에 조각되어 있기도 하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마지막 성배(The Last Crusade)'의 끝 부분에서 주인공 헨리 존슨 2세(해리슨 포드 역)가 성배를 찾기 위해 거대한 바위 계곡을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길도 없는 거대한 바위산 협곡을 말을 타고 빠져나가면 광장 맞은 편에 돌산을 깎아 만든 거대한 성전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성전 안에서 미로 같은 동굴을 통과하여 성배를 찾게되는데 이곳의 촬영지가 바로 이 '페트라'였다.
이 나바티안 왕국은 AD 106년 트라얀 로마황제에 의해 점령당한 후, 점차 그 빛을 잃어가다가 13세기 십자군에 의해 잠시 요새화 된 적이 있었으나,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가 재발견 할 때까지 페트라는 서구인들에겐 완전히 잊혀진 도시로 남게 된다.
그가 이 페트라를 발견해 내기까지의 긴 여정과 모험담은 유명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곳을 발견하고 난 후 두 번 다시 보지 못한 채 갑작스런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걸고 발견했던 이 신비의 도시는 웬일인지 한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결국 1929년에 이르러서야 이곳의 발굴작업이 시작되었고 1964년에 끝나게 되었다. 그렇게 발굴된 이 고대 도시는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질 만큼의 불가사의 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많은 역사적인 사실이 증명되었다.
페트라는 천연 요새로서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에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으며, 바위를 그대로 파서 만들었고 내부에는 현대적인 도시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반원형 극장'과 '쥬피터 신전'이 한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기억들로 남게 될 페트라. 그 신비한 경험으로 떠나보자.
워낙 장소가 넓어서인지 입장료에도 구분이 있다. 하루 용, 2일 용 7일 용 등등으로.
우리야 하루치 입장료를 내고 들어 서니 마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저 밑에까지 약 3KM정도를 내려 가야 하는 데 그 반정도를 말을 타고 내려갔다 다시 올라 온단다.
이제 60이 넘은 우리들이야 해리슨 포드처럼 질풍같이 말을 몰아 그 협곡을 달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리 품을 줄이기에는 안성맞춤인 조랑말에 올라 탔다. 마부에게 고삐를 잡히우고….
제법 영어를 잘 하는 마부가 쉴새없이 말을 걸어 온다.
나는 조용히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내려가고 싶은 데…. 결국은 팁을 조금 더 받으려는 이유에서이기도 하지만… 녀석이 사람을 좀 알아 봐야 하는 데…허허허
오래 전 해변에서 말을 타다 혼이 난 적이 있는 우리 부인은 어떻게 내려가고 있을까? 말 한마리에 둘이 탈 수는 없으니 원…..
한참을 내려가서부터는 걸어 내려가야 한다.
'시크'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 틈 속으로 나있는 좁은 길을 따라 양 옆으로 치솟은 기암 절벽, 그 절벽을 이용해서 비가 올 때 마다 그 빗물을 모으기 위해 파놓은 수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늘이 안보이는가 하다가는 좁게 보이고, 빠알간 암석 사이에 뿌리 내린 생명력 강한 몇그루의 나무가 햇빛을 받아 진한 초록으로 반짝이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나.
하나님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이런 장관을 연출할 수가 있겠는가….
모두들 야! 야! 탄성을 연발하며 한참을 내려가다 한 구비를 도니 다시 탄성이 터진다.
바로 사진에서만 보아 오던 그 "보고"라고 별명이 붙은 "카즈네"가 위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조금 늦어, 사진에서 보는 대로 햇빛 찬연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바위 그늘에 나타난 그 모습은 정말 "저게 돌일까?" 하는 의구심이 나게 한다.
모두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는 조금 더 내려가서 원형극장에 가 보았다. 지금은 복원 중이어서 그 안으로 들어 가지는 못한단다. 허나 무대 가까이에 서서 석양을 등지고 앉은 관중석을 바라보며, 우리는 얼굴에 햇빛으로 조명을 받으며 다 함께 둘러 서서 찬송가를 불렀다.
"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손에 든 찬송가가 없어 그 끝까지를 완전히 힘차게 부르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는 너무나 의존에 익숙하여졌나보다. 챙피하게스리…….
이젠 늙어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걸로 핑계를 댈 수 있을까? 부끄럽다. 허기야 하나님 앞에 그 누가 부끄럽지 않으리요마는…..
사도 바울이 개심 후 갔었다는 아라비아의 도시로 추정되는 곳이기도한 페트라….
여행 중 볼거리는 자연의 신비한 아름다움이던가 아니면, 인간의 정교한 예술성이 이루어낸 문화유산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페트라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합작해 낸 작품이기에 일반 여행지와는 차별화를 이루는 것 같다.
그 자연은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작품이니 말이다…..
아직 보고 느껴야 할 것은 많은데 오늘 밤 야영지에 해지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이젠 또 발걸음을 돌려야 한단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게 될까? 조금 더 눈에 담아 두어야지….
아쉬운 마음으로 오르는 언덕길은 더 힘이 든것 같다.
좀 더 못본 미련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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