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기 3 느보산
어제라고만 말하기에는 땅에서, 또 하늘위에서 보낸 시간들이 너무 길었기에 오늘 아침에는 새벽기도를 면해 주시겠단다. 육신이 조금은 편해 진 셈인가?
아침을 먹은 후 느보산으로 향하였다.
영어로는 Mount Nebo, 아라비아어의 naba'a(높다)이거나, 아카드어의 Nabu(지혜의 신)에 관련이 있는 말로 알려진 성산이다.
모세가 올라가 산정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그곳에서 하늘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산(신32:49, 34:1). 이것은 사해 북동단의 동(東) 9km, 아바림 산맥 연봉(連峰)의 하나로, 특히 주봉(主峰)의 하나인데, 제벨 엔 네바(Jebel en-Neba 표고 802m)로 표기되기도 한다.
산으로 가는 동안 안내자인 이지영 선교사가 퀴즈를 하나 낸다.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고 하였는데 이렇게 건강한 모세가 왜 가나안에 못들어가고 죽었을까요?
여기 저기서 대답이 나왔다.
지팡이를 두번 두드렸기 때문이라고..
또는 물을 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안 나타 내고 자기가 한 것처럼 말 했다고….
그래 다들 성경에 있는 대답이니 그 어느 하나 틀린 것은 없으리라. 거기에 더해 이지영 선교사는 하나를 더 붙인다. 느보산에서 모세가 본 것은 우리 인간이 살아갈 가나안만을 본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영화로움을 보았기에 그 땅에 가는 것 보다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택한것 같다고…. 그리고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을 신격화 해서 우상처럼 모실까봐 무덤 조차 남기지를 않았다고……
그래 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어째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가나안 정탐꾼 12명을 각 지파에서 뽑아 40일 동안 정탐하게 한 후 돌아와 보고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사람만이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30절) 하였으나 남은 10명의 보고에 온 회중이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니 (14장 1절)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답이 20절로부터 23절에 이르도록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네 말대로 사하기는 하지만, 내가 그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라고….(23절)
하나님과 독대까지 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소불위의 능력을 부여 받은 모세가 소위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그 다수결의 결정에 따라서 뒤로 돌아 가기로 결정을 내렸음은 그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닐까? 불평하는 군중들과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 대로 그 또한 건너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40년의 교육과, 40년의 수양과 또 앞으로 올 40년의 연단이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수 백성의 요구를 들은 바로 그 순간의 선택 때문에 말이다.
그 때부터 시작된 광야의 40년 생활.
그 불신의 사람들이 다 죽기까지 필요했던 그 시간을 광야에서 헤메게 하도록 하나님의 진노가 컸었던것 같다. 그 광야를 직접 본 후의 느낌도 앞으로 적어 나가겠지만 여기서는 이왕 나온 김에 그 약속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써 보고 싶어진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이라는 전제를 달아 놓고 말이다.
우리야가 죽은 암만에서 멀지 않은 산 느보산.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어떤 남자를 사랑하던, 어떤 여자를 사랑하던 그건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가끔 부모가 반대를 해서 엉뚱한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서 젊은 나이 때의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하게 되지.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서로가 죽기 까지 정절을 지키며 사랑하겠다는 약속이 아닌가?
그런데 그 사랑을 하는 것은 자유 의지라면서 결혼을 한 남자와 결혼을 한 여자가 서로 결혼밖에서 사랑을 한다. 그것이 요즈음 한국의 연속극들의 주제로서 안방극장을 석권하고, 거기서 대리만족을 얻는 많은 사람들을 양산하다 보니 스스로가 주인공인양 착각속에 그 것을 모방하게 까지 발전하여, 요즈음 한국의 성 풍속도는 세계에서 제일 문란하다고까지 말하게 되었고(얼마 전 미국 신문에서도 대서특필이 되었었지.)
가정이 깨지는 수가 상상을 초월하며, 그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잘 성장하지 못한 자녀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었다. 그 자유의사가 약속을 어겼을 때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로 말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하여 우리야를 암만에서 죽게 만든 일들이, 또 이를 보며 자란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하여 죽이려는 일들이 그 옛날부터 있어 왔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요즈음은 그 도가 좀 지나친것 같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 또한 하나의 약속이다. 나와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는 말이다.
내가 믿는 다고 네가 믿어야 된다는 법이 없고, 네가 믿는다고 내가 믿어야 된다는 법 또한 없다.
종교의 자유라는 게 있다니까 말이다. 허나 일단 한번 약속을 하였으면 그 약속 속에 거하여야 질서가 이루어 지는 것은 남여의 사랑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나님을 믿노라면서도 종교의 자유라며 바알도 믿어보고, 아세라도 믿어 보고,부처도 믿어보고, 마호멧도 믿어보고, 성황당의 돌뿌리도 믿어 보고 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질투하는 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무엇을 믿던 그건 그 믿는 사람의 자유지만 일단 믿기 시작하면 그 약속된 신을 믿어야 하는 게 믿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믿음의 약속으로 이루어 진 공동체가 이 민주주의라는 다수의 횡포에 따라서 공동체의 약속이 변질되어질 수 있는 일일까?
그 약속이 깨어질 때 오는 혼란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너무나도 많이 보아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민주주의는 중우의 정치라고 까지 말하여 졌다.
허나 그래도 아직까진 그 보편 타당성을 대체할 어떤 수단이 없기에 지속되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밤새워 통곡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그 다수가 그네들이 죽기까지 필요한 광야의 40년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모세 역시 그 다수결에 따라 뒤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내렸기에(결국은 다수를 의식한 모세의 결정이었다.) 그 또 한 그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리라.
하나님의 약속이 누구에게는 해당되고, 누구에게는 해당 안되는 그런 약속이 아닐테니까.
만약 그 때, 비록 백성들이 밤새워 울부짖었다 하더라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앞세워 진격하였더라면 어찌 되었을 까? 그 40년이 절약되지 않았을까? 아마 모세도 요단을 건너갈 수가 있었을 터이고…..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그 언제인가 김성일장로가 쓴 "건너게 하소서"란 희곡을 읽으며 눈물 흘리던 생각이 떠오르며, 그 때와 다른 감회를 갖인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때에는 모세가 참 안되었다고, 안쓰러워 하였었는데…..
그리고 은근히 걱정 키운다.
다른 종교와도 대화를 하여야 한다며, 또 진리에 이르는 길은 하나만이 아니라며 중을 불러다 예배를 보고, 이슬람을 불러 강론을 듣는 요즈음의 교계와 교단의 지도자들이 또 우리를 앞으로 오랜 세월 방황하게끔 만드는 것이나 아닌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 하셨는데……
이 때 즈음 해서 느보산 정상에 버스가 멎었다. 사진에서 보던 모세 기념교회가 보인다.
교회 건물 뒷 편, 모세가 서서 사방을 보았다는 그 지점에 가 서서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 옛날, 여기 서서 자기가 들어 갈 수 없는 땅을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에는 어떤 회한이 일었을까?
"그때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을 들을 껄… "하는 후회였을까?
아님 이지영선교사가 말 한 대로 하늘나라를 보고 그 곳이 더 좋와 주저 없이 그리로 들어 갔을까?
자기를 따른다고 하면서 지내 온 지난 40년간 그토록 애를 먹이던 그 군중들이 이젠 역겹도록 보기 싫어 질 때도 되기는 되었을 테니까.
이제는 시력이 약해 져서 망원경까지 동원해서 멀리 멀리 바라 보았지만 뽀얀 아지랑이가 스믈거릴 뿐 발 아래 보여야 할 여리고 성이나 사해가 그 지경만을 희뿌옇게 드러 낼 뿐 이었다. 그래서 자위를 하였지.
모세는 큰 바다, 지중해까지 자세히 보았기에 가나안에 못 들어 갔지만 오늘 그 모든 지경이 뿌옇게 보여 잘 못 본 우리는 분명히 더 잘 볼수 있도록 그 가나안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꺼라고 말이다. 허허허
모세를 기념해서 지은 교회.
여기에 교회가 언제 지어 졌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주후 39년 아레리아가 만든 순례여행지에 처음 언급되었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6세기 후반 재건되었으나 언제인가 다 부서진 그 위에 새로 지은 교회란다.
교회 안에는 그 옛날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정교하게 만들어 진, 그러나 부서져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기둥들이 여기 저기 전시 되었고 최근에 와서야 발굴 되기 시작하였다는 그 옛날 비쟌틴 시절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바닥들이 여기 저기 그 흔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역시 옛날 사람들의 장인정신은 요즈음의 발달된 재료와 장비로도 따라 갈 수가 없도록 훌륭하였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하여 준다. 비록 지금은 부서진 조각이지만 그 조각을 통해서 말이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에돔땅에 이르러 백성들이 또 원망하매 불뱀을 보내어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신 대목이 나온다.(민 21:6)
그러자 그 죽음이 두려운 백성들이 또 그 태도를 돌변하여 모세에게 달려와 구원을 청하고, 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그래서 응답받은 것이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그것을 처다 보는 사람들이 다 낳게 하여 주신 일들이 기록되어 져 있다.(민 21:9)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 구원을 얻는다는 예표라고도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하여턴 이것을 기념하여 모세 기념교회의 뒷마당에는 모세가 들었던 구리 뱀 모양의 탑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검붉게 서 있어 오늘날의 뱀이라는 유혹에 물려 괴로워 하는, 그리고 원망 속에 기복만을 바라는 우리 인간들의 나약한 심성을 되새기며 소망의 기도를 할 수 있게 하여 주었다.
이제 또 다음 목적지, 모압을 거쳐 에돔 땅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그 옛날 모세가 이끌고 다니던 2,000,000명이나 되던 출애급하던 사람들이 헤메던 땅으로 말이다.
낯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때에 따라 만나로, 메추라기로 먹여주시며 수없이 많은 기적을 그네들 눈 앞에서 보여 주시었건만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을 하고,불평하고,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 하여 방황하던 그 광야로 말이다.
그 때에도 이런 말을 하며 군중들을 부추기던 사람들이 있었나보지?
믿는 것은 자유라고.
하나님만이 구원을 주시는 분은 아니라고.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럿이라고.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지식과 능력과 건강이라고……..
순간이 지나면 그건 벌써 되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는 시간들,그 시간의 선상에서 한번 밖에는 살 수 없는 삶!
결정하여야 할 것도 많고, 보아야 할 것도 많은 데 시간은 많지가 않으니 또 움직여야지.
가자, 그 광야로!
2000년 교황의 방문으로 이 곳이 성지로 인증을 받았다는 기념비
왜 이 돌이 여기에 있는지는 사진을 찍으러 다니노라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데...
나중에 물어 보아도 모두들 기억을 못 하고...ㅎㅎㅎ 아마도 무덤을 막을 때 쓰던 돌이 아니었을지.... 혼자 상상해 본다.
모세가 서서 가나안 땅의 경지를 보았다는 곳에 만들어진 이정표.
아무리 잘 보려 하여도 뿌연 아지랑이에 잘 볼 수가 없었다. 허긴 영안뿐만이 아니라 육신의 눈 마저 많이 혼탁해진 인간이니 무얼 그리 잘 볼 수가 있겠는가!
모세 기념교회 내부
기념교회 내부. 아직도 계속 발굴 되어 지고 있다. 그 옛날에 교회 바닥을 이렇게 정교하고 화려하게 모자이크를 하였었다니....
아마도 세례를 받던 곳이었나보다.
교회 뒤에 야외에 세워진 놋 뱀. 저 형상이 요즈음에도 의료기기나 약품관련 회사들의 로고에 많이 인용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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