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 516

57 사랑장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57 사랑장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2차 전도여행을 준비하던 중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게 됩니다. (사도행전 15장 38~39) 이유는 단지 1차 전도 여행 중에 일찍 돌아간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와 이를 안된다고 우기는 바울 사이의 사소한 의견의 차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마가를 데리고 가자, 말자, 하는 것이, 이 두사람이 서로 갈라 설만큼 큰 싸움의 이유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바울에게는 하늘같은 은혜를 베푼 바나바인데 말입니다. 바울이 비록 회심을 하였다고는 하나, 그를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였다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려 하여도 어느 누구 하나 믿어주는 사람..

56 고린도 교회

56 고린도 교회 아덴에서의 전도사역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바울은 결국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을 만나 1년 6개월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며 안식일마다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설립할 수가 있었습니다. (행18:1-11) 교회가 어느정도 정착되며 성장하게 되자 사도 바울을 시기하던 유대인들로부터 고소를 당하였으나 아가야의 총독, 갈리오가 재판장이 되기를 원치 않자 유대인들의 폭거가 시작되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들려 그들을 남겨두고 안디옥으로 돌아가며 2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 떠난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 3년동안 머물면서 고린도에서부터 들려오는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처음 편지가 “고린도 ..

55 고린도는 어떤 도시였나?

55 고린도는 어떤 도시였나? 뿔이라는 뜻을 가진 고린도. “스파르타커스”의 본고장 또한 바로 이곳,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고린도와 이웃한 도시국가, “스파르타(Sparta)”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인구3만 명의 작은 시골이지만, 고대 고린도를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국가 중의 하나로 만든 참주(僭主) 페리안더(Periander)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상업이 번성하여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도시로 번영하다 보니 여러 인종들이 많이 모여 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동서 문화의 생활 습성과 또 여러 신들을 믿던 그네들의 종교가 서로 뒤엉켜 혼잡을 이루었던, 인구 60만명의 큰 도시가 되였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 후서”를 써서 고린도 교회로 보내던 로마 시대에는, 번창한 항구..

54 고린도 운하(Corinth Canal)와 유적지

54 고린도 운하(Corinth Canal)와 유적지 유럽 대륙의 남단, 지중해의 동북부로 삐죽 나온 땅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77km 떨어진 곳에는 사람의 몸으로 치면 꼭 맹장 같은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붙어 있습니다. 이 반도를 대륙에 붙여주고 있는 고린도 지협이 반도 서쪽의 이오니아 해와 동쪽의 에게 해를 가로막고 있어, 실크로드를 타고 동양에서 비쟌티움(현재의 이스탄불)까지 온 신기한 문물들을 로마로 운송해야 하는 뱃사람들과 이재에 밝은 상인들에게는 약 700km의 뱃길을 돌아가야 하는 시간과 또 풍랑의 위험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에는 그리 크지 않은 배는 겐그레아 항구에서 땅 위로 올려, 올꼬스 네온 (배를 견인하는 마차)를 이용하여 배를 지협..

53 아레오파고스(Areopagus)에 선 바울

53 아레오파고스(Areopagus)에 선 바울 파르테논을 둘러본 후 조금 내려오다가 만나는 좀 넓은 공터, 그 옛날 신들이 모여 변론하던 곳, 한참 뒤에는 바울이 변론하던 재판정, 아레오파고스에 들렸습니다. 지금은 거저 동판 하나가 큰 바위에 붙어있는 바위 언덕 위의 작은 공터에 불과하지만 그 옛날에는 바울의 생과 사가 결정지어질 수도 있었던 그런 자리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이곳은 오늘날로 치면 대법원쯤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딸 알키페를 납치하려는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를 살해하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포세이돈은 신들의 법정에 고발을 하고, 이에 신들은 아레스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아레오파고스(Areopagos)에 모였다고 합니다. 아레스는..

52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2 부속 건축물들

52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2 부속 건축물들 에렉테이온( Ἐρέχθειον) 페리클레스가 세운 건설 계획 중 마지막 것으로, 독특한 구조로 지어진 이 신전은 아테나와 포세이돈, 그리고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인 에렉테우스를 함께 모시던 신전입니다. 특히 신전의 남쪽 벽면에 기둥 대신 서 있는 여섯 여인 석상의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알려졌지요. 지금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상은 모두 모조품이며, 진품 중 다섯 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마지막 하나는 영국 박물관에 있습니다. 올림포스의 두 신, 아테나와 포세이돈은 이 곳 아테네를 두고 아테네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이 이 도시의 수호신이 되기로 서로 내기를 하였습니다.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은 우물을 주었는데, 그만 바닷물이 ..

51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Acropolis of Athens) 1 파르테논

51 아크로폴리스 아테네 (Acropolis of Athens) 1 파르테논 도시국가,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었던 아크로폴리스. 그리스어 단어 ἄκρον (아크론, "아주 높은, 최상의")과 πόλις (폴리스, "도시")에서 온 아크로폴리스에는 뒤에 도시 이름을 붙여 그 지역을 나타내었었으나, 성채이자 건축학적, 미학적 그리고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대 건축물들의 유적지가 있는 아테네가 가장 유명하여, 이제는 “아크로폴리스”하면 으레 유네스코(UNESCO)의 로고로 사용된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아크로폴리스의 전체 면적은 170 ×350m로, 1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습니다마는 건축이나 고고학에, 그리고 신화에 관심이 있는..

50 신들의 도시 아테네

50 신들의 도시 아테네 신약성경을 보면 4 복음서에 이어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은 본래 “누가복음”과 함께 두 권으로 된 하나의 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누가복음”이라고 하면 이 두 권을 모두 가리켰으나 AD 2세기에 이 두 권을 분리하여 독립된 책으로 구성하면서 후반부의 책을 그 내용에 따라 “사도행전 (The Acts of Apostles)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바울의 동료였던 누가가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AD 61~62년 사이에 이 책을 기록했다고 전승되며, 이에 대한 이론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입니다. 사도행전의 전반부는 오순절 성령 강림부터 사도들에 의한 교회(敎會, Church)의 태동 및 초기 발전사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며 남기신 약속에 ..

49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디였을까?

49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디였을까? 중동 국가이면서도 인접한 요르단과 마찬가지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이스라엘! 그래서 한 때에는 모세가 하나님께서 캐나다(Canada)로 가라는 말을 잘못 듣고 가나안으로 갔다는 부흥사들의 우스개 멘트도 유행하였었습니다마는, 2004년 5월 4일, 이스라엘 사상 최대 규모의 유전이 발견됐다고 현지 언론이 흥분하며 발표하였습니다. 현대 문명과 산업에서의 젖과 꿀은 바로 석유와 가스라고 할 수 있으니 늦게나마 틀린 예언은 아닌 셈이 되었지요. 한창 중동 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 당시에는 이스라엘인 스스로도 “모세가 석유가 흐르는 땅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했고, 이스라엘의 유명한 풍자 작가인 에프라임 키숀(Ephraim..

48 짠물 앞에 끊어진 단물의 수로

48 짠물 앞에 끊어진 단물의 수로 가이사랴 항구에서 조금 북상하여 올라가면 해변을 따라 끝이 안 보이도록 지어진 수로가 있습니다. 그 옛날, 로마가 이 지역을 관할하며 번영을 구가하던 시절에는 헬몬 산에서부터 이곳까지 물을 대어 주노라 마를 틈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말라 부서진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수로! 그 길이와 위용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집니다. 어떻게 그 옛날에 이렇게 대단한 수로를 단지 경사만을 이용하여 그 먼 곳에서부터 여기까지 물을 보내오게 할 수가 있었을까요? (허긴…. 후 일, 유럽을 다니다 보면 이 정도는 그리 놀랄 만한 규모도 아니었습니다.) 이 물을 마시면서 삶을 영위하였고, 이 물을 이용하여 목욕문화 속에 향락을 누려 깊이 빠지다 보니 결국은 제국의 멸망에 이르게 한 수로. 그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