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 516

77 소아시아 7교회를 떠나며

77 소아시아 7 교회를 떠나며 우리들이 지금까지 소아시아의 7 교회 터에서 본 교회들의 폐허는 초대 교회들이 사용하였던 교회들이 아니라, 주로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온 후인, AD 313년 이 후에 지어진 교회들이었습니다. 교회사에서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7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에 따라 초기 교회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을 7기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기. 에베소교회 AD34 ~AD100 사도교회 시대 2기. 서머나교회 AD100 ~AD313 핍박과 순교의 시대, 후 사도 시대 3기. 버가모교회 AD313 ~AD538 타협의 시대 4기. 두아디라교회 AD538~16C말 종교 암흑시대 5기. 사데교회 AD16C말~18C중 종교개혁과 분열의 교회 6기. 빌라델비아교회 AD18C중~19C말 ..

76 라오디게아(Laodikeia) 유적과 교회 터

76 라오디게아(Laodikeia) 유적과 교회 터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소 아시아 7 초대 교회 중 제일 마지막으로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받은 교회이어서 인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라오디게아 유적지 깊숙한 곳에 십자가가 새겨진 깨어진 돌 비석 하나가 거저 무너진 돌 무더기 사이에 서있는 곳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부터 동남쪽으로 약 160km 내륙으로 더 들어와 있어서인지, 지중해 유람선에서 내려서도 단지 에베소만 보고 다음 정착지로 갈 뿐, 이 곳까지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는 원래 기원전 2천 년경, 그리스 본토에서 아나톨리아로 이주한 이오니아인들에 의해 세워져 디오스폴리스(Diospolis) 혹은 로아스(Rhoas)라고 불렸으나, 알렉산더 대왕 사후 ..

75 빌라델비아(Philadelphia) 교회 터

75 빌라델비아(Philadelphia) 교회 터 소 아시아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함께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받은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는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약속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습이 되어, 많은 곳에서 많은 교회들이 즐겨 사용하는 교회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데에서 남동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 “빌라델비아”란 도시는 BC 150년경 버가모 왕 아탈로스 2세 빌라델비오스(Attalus II Philadelpus BC220~138)가 헬리니즘의 문화를 전할 목적으로 건설한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 역시 드로아에서 버가모, 사데를 거쳐 동쪽으로 이어지는 로마의 주요 통로로 상업에 매우 이상적인 위치에 있어 가죽제품, 직조업이 주요 산업이었지만,..

74 사데(Sardis) 교회 터

74 사데(Sardis) 교회 터 “남은 자” 또는 “남은 물건”이라는 의미를 지닌 “사데”는 “두아디라”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진 곳에 배산임수(背山臨水)한 요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팍톨루스(Pactolus)라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투몰루스(Tumolus)라는 산이 자리하고 있는 강과 산 사이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데가 지금은 폐허위에 세워진 작은 촌에 불과하지만, 그 역사는 길어, BC 1200년경에 소아시아 서쪽 해안의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한 난공불락의 요새로써 고대 리디아(Lydia)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였습니다. B.C. 6세기, 크로이소스(Κροῖσος, Croesos B.C.595~B.C.547) 왕 치세 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서구인들에게 부를 상징하는 왕으로 널리 ..

73 두아디라(Thyateira) 교회 터

73 두아디라(Thyateira) 교회 터 붉은 교회를 떠나 약 1시간이 좀 못되어 도심에 있는 한 폐허에 내렸습니다. 성경에서는 “두로”라고 불리우며, 그 당시 로마가 전략적으로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하게 되었으며, 이때 이미 상인조합조직 (길드/Guild)을 가지고 있었던 도시였지만, 오늘날에는 “아키사르(Akhisar)”라고 부르는 작은 도시로 전락한 채 옛 시대의 잔재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중에, 두아디라 교회였던 요한 기념 교회의 석축 기둥과 담장이 남아있는 곳에 내리니, 무너진 벽과 땅에 뒹구는 돌 덩어리들이 부서진 상태로 도심에 그냥 방치되어 쓸쓸히 옛 영화를 나타내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볼 것은 없..

72 버가모 붉은 교회(The Red Basilica)

72 버가모 붉은 교회(The Red Basilica) 버가모의 아크로폴리스, 즉 유적지를 떠나 산 밑에 있는 붉은 교회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이 계시록 2:13~16로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71 버가모(Pergamon, 페르가몬) 유적지

71 버가모(Pergamon, 페르가몬) 유적지 선사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된 곳으로,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 중에, 수하 장군이었던 리시마쿠스(Lysimachus)는 이 지역이 천연 요새임을 깨닫고 도시 중앙에 있는 390m 높이의 산 꼭대기에 성을 쌓는 등 이곳을 군사 기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리시마쿠스는 BC 281년, 코로페다움 전투에서 그의 수하의 배신으로 인해 패하여 전사한 후 필레타리우스(Philetarius)에 의해 페르가몬 왕국이 탄생했습니다. 페르가몬 왕국은 아나톨리아 지역이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편입되기 전에는 소아시아7 교회 중 에베소, 서머나를 제외한 나머지 5개 교회가 있던 지역을 포함한 터키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 중 상당 부분을 관할했던 왕국이었습니다. 이렇게 발흥..

70 서머나(Smyma) 폴리캅 기념교회

70 서머나(Smyma) 폴리캅 기념교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는데, 2000년 동안, 동양과 서양 역사의 회오리바람 속에 있었던 소아시아의 도시들인들 어찌 멀쩡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사용이 가능한 야외극장과 또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오는 많은 고적들이 고적답게 복원되어가고 있는 에베소를 떠나 도시의 이름마저 이즈미르(Izmir)로 바뀐 옛 서머나로 가는 동안 가이드는 “서머나에는 옛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중에 아직까지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폴리캅 기념 교회가 있기에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며 창 밖으로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라고 합니다. 한 낮이 지나 많이 기운 햇빛을 받으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낚시꾼들이 많으면 경기가 안 좋은 것..

69 에베소 교회가 받은 편지

68 에베소 교회가 받은 편지 대 도시, 에베소에 있던 교회에게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신 말씀은 바로 에베소를 떠나는 우리에게 주시는, 2000년 전에 쓰여 이제야 배달된 편지를 읽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3년 가까이(행 20:31) 머물면서 눈물 어린 목회를 했던 에베소 교회는 다른 초대 교회들보다 조금 더 순수했던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아시아 7 교회로 보내는 편지 중 첫번째인 요한계시록 2장에서는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모든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있으며,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과 거짓 사도를 드러낸 것과 주의 이름을 위해 참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잘 알고,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을 칭찬하고 있으면서도 “너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했습니다. 무엇이 처음..

68 에베소 7 사도 요한 기념 교회

68 에베소 7 사도 요한 기념 교회 유적지를 나와 버스로 이동한 곳은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요한 기념 교회 터였습니다. 이 역시 지금은 다 부서진 채로 몇 개 안 남은 벽과 기둥들이 그 당시의 위용을 말해 줄 뿐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른 12사도 가운데 최연소이자 “예수 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로 기록된 사도 요한의 삶은 예수의 공생애 초기부터 초대 교회의 발전과 박해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을 쓴 후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요 21:22)” 라 하시던 주님의 말씀대로, 오랜 삶 후 자연사한 최후의 제자였지만 그의 일생은 실로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부유한 선주, 세베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요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