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베들레헴(Bethlehem) - 장벽의 안팎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으로 불리는데 토를 달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거룩한 성도(聖都)가 되기 위해서는 그 많은 시련과 고통과 파괴를 딛고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과정이 필요하였었나 봅니다.
그 거룩한 성 안에 아직도 참 많이 남아 있는 흔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있어야 했던 사건들 또한 존재하였었어야 할 터이기에, 그 역사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예루살렘을 잠시 떠나 그 흔적의 주인공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활동하던 도시들을 먼저 다녀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이 순서이겠기에….
예루살렘에서 골짜기를 몇 건너 조금 떨어진 곳(약 10Km)에 베들레헴이란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룻기의 나오는 보아스의 고향이자 보아스의 증손자이며,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인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한 곳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베들레헴은 오늘날, 유다 땅의 조그마한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성지 중의 한 곳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다윗의 탄생지이자,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하지요,
AD 135년, 유대사람들이 다 쫓겨난 유다 지방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섞여 살며 오랜 세월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15~1916년 사이,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Henry Macmahon)은 독일 편에 서있던 오스만 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아랍인에게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을 약속한 서한을 10여 차례 보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이야기가 생겨나게 되었지요.
그런데 1917년 영국 외상 아서 벨푸어(Arthur James Balfour)는 당시 유럽에서 거부가 되어 경제계를 지배하던 베이론 로스차일드(Baron Rothschild)에게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약속(벨푸어 선언)을 하며 유대자본을 전쟁자금으로 끌어 드렸습니다.
결국 영국이 한 지역을 놓고 두 이질적인 민족들에게 같은 약속을 한 셈이지요.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고향 땅으로 많이들 역 이민을 하였습니다. 특히 2차 대전 중 유럽에서 많이들 돌아왔지요.
2차 대전이 종전된 후 1947년 11월 29일에 유엔총회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 지역 분할 계획을 추진하여 1948년 5월 18일에 이스라엘이 국가로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살던 땅을 새로 이민 온 유대인들과 나누는 일이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겠지요.
1948년, 영국군이 철수한 바로 다음날, 근처의 아랍 군대는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새로운 국경선을 만들었지요. 이것이 제1차 중동 전쟁으로 요르단이 베들레헴을 점령하였습니다.
그 후 4차레에 걸친 중동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시나이 반도 (1967년 ~ 1982년 사이), 남 레바논(1982년 ~ 2000년 사이), 가자 지구와 골란 고원을 점령하며 영토를 많이 넓힌 후, 오직 일부만을 되 돌려주었습니다.
1987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운동으로 민중봉기가 계속 일어나자 1995년,오슬로 평화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베들레헴 도시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넘겨주고, 그 해 12월 21일 군대를 철수하였습니다.
전기와 수도 공급은 이스라엘에 의존하기에 여유롭지가 못하고, 대부분의 식자재 또한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로부터 오기에 모든 물자들의 공급이 원활하지를 못하던 차에 2000년~2005년 사이 발생한 제2차 봉기 때 베들레헴의 관광산업과 대부분 인프라가 크게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2002년 7월부터 라말라와 베들레헴을 포함하여 서안지구, 즉 West Bank를 8m나 되는 높다란 콘크리트 장벽으로 둘러싸,그 길이가 현재는 약 800km나 되는 육지 속의 섬을 만들어 그 안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두어 놓는 감옥 아닌 감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담장 안의 주민이 담장 밖으로 나오려면 반드시 검문소를 통과하여야 하는데, 그 통과하는 절차가 엄청 까다로워 1시간이고 2 시간이고 걸리게 만들어 놨다고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검문소를 통과하여야 삶을 영위할 수가 있기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줄지어서 예루살렘으로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단 오고 갈 수는 있게 되었기에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들은 국경을 통과하는 듯한 검문검색을 받으면서도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을 방문하고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는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보안장벽”이라고 부르고, 팔레스타인은 “분리장벽”이라고 부르는 이 장벽이 요즈음에는 “Banksy Graffiti”라고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제일 긴 화폭이 되어 수많은 그림들로 메워져 있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2019년 12월 22일 ‘얼굴 없는’ 영국의 미술가 뱅크시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 베들레헴에서 오늘날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작품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CNN과 CNBC 등에 따르면 ”뱅크시는 이스라엘 서안 지구 분리장벽 아래에서 예수가 탄생하는 모습을 묘사한 신작 ‘베들레헴의 상처'(Scar of Bethlehem)를 발표했다. 벽에는 길잡이별 모양의 포탄 자국이 나 있고, 영어와 프랑스어로 ‘사랑’ ‘평화’라는 단어가 적혔다.”
이런 도시,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은 집을 의미하는 ‘Beth’ 혹은 ‘Beit’와 고기, 빵을 의미하는 ‘Lehem’이 합쳐진 말로서, 그대로 풀이하면 “빵집”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일어나 보니 하룻밤 새 높이 세워진 콘크리트 담장 위에는 가시철망이 쳐져 있고, 그 보다 더 높은 곳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감시초소가 있어 마치 적국의 국경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경비가 삼엄한 빵집이 되었나 봅니다.
.
'신문 연재-토론토지역 > 흔적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 베들레헴 - 예수 탄생 기념 교회 (0) | 2020.11.06 |
---|---|
23 목자들의 들판 - Shepherd´s Field (0) | 2020.10.30 |
21 예루살렘 - 거룩한 성의 애가 3 통곡의 벽(Wailing Wall) (0) | 2020.10.17 |
20 예루살렘 - 거룩한 성의 애가(哀歌) 2 (0) | 2020.10.09 |
19 예루살렘 - 거룩한 성의 애가(哀歌) 1 (0) | 2020.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