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2016년 한국

7 경주 국립 박물관 - 2016년 서울 방문기 10월 5일

천천히 chunchunhi 2016. 11. 23. 00:18


7 경주 국립 박물관 - 2016년 서울 방문기 105

 

9 12일 한국에서 지진 관측을 기록 한 이후 최대 지진이 강타한 경주라며

많은 지진 피해를 TV 뉴스에서 보았는데,

막상 늦은 오후 해가 따사로운 빛으로 비춰 주는 경주는 평온하기만 하였다.

벌써 다 복구가 된 것인가? 

아니면 매스컴에서 호들갑을 지나치게 떤 것인가? 

허긴 며칠을 계속해서 쏟아 내는 뉴스에 사용되는 사진들을 보면

이미 본 사진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하기도 하였었기에

TV News를 잘 믿지 못하는 내가 되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가는 길이 그 재난 지역을 다 피해서 가기 때문인지

내 눈에 비친 도로변은 깨끗하였고 정상이었다.

가끔 지나는 논의 풍경은 쓰러진 벼들로 어지러웠고,

하천위의 다리를 지나면서 보이는 하천 주변의 경관에서는

홍수 후의 잔해를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경주 국립박물관에 들어 가 보니

언제 지진이 났는가?  언제 홍수가 지나 갔는가?” 싶을 정도로

정원은 깨끗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모든 전시물들이 다 정상적으로 진열 되어 있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서야 안 일이지만

큰 지진 전인 7 5일에 울산 앞 바다에서 난 규모 5.0의 지진이 있었을 때

혹사나 더 큰 지진이 올 까봐 박물관의 전 직원이 미리 지진 대비 작업을 하였었 단다.

모든 전시물들을 낚시 줄로 묶어 놓기도 하고

토기들 안에는 무거운 모래를 담기도 하고

혹은 실리콘으로 토기 하부를 바닥에 붙여 놓기도 하였었 단다.

유비무환의 덕을 본 박물관직원들의 노고에 뒤 늦은 박수를 보낸다.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허용된 관람시간은 많지 않았기에

박물관의 관람이 마치 무슨 홍보전시관을 둘러 보듯이 잰 걸음이었지만

잘 정리가 된 전시이기에,

그리고 박물관의 크기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수박 겉 핥기 식이었지만 그런대로 한 바퀴 휘 돌아 볼 수가 있었다.

한반도의 삼국시대보다도 더 전 가야시대부터

천년 역사의 신라 유물들을 보기에는 많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성덕대왕 신종이 본 이름이지만 봉덕사의 종 혹은 에밀레 종이라고도 한다.

국보 제29.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완성은 혜공왕 때인 771년에 이루어졌다. 이 종은 봉덕사(奉德寺)에 달았으나 수해로 폐사된 뒤 영묘사(靈廟寺)에 옮겼다가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였다. 1915 8월에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고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이 동종도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이렇게 많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깨지지 않은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에밀레 전설 외에 어떤 다른 전설이….?



 혹시 인도에서 허황옥이 타고 온 배가 아닐까?  좀 너무 작지?


물 항아리였는지, 혹은 신라법주 항아리였었는지는 모르겠지만....다시 따르기가 무척 버거웠겠다.


그 당시 벌써 유행한 지붕 마감재의 문양. 요즈음 보다 훠얼씬 멋지다.




이름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양하고....











아마도 이런 호사로운 삶을 위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모양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욕심의 노예가 되면 비리쯤이야... 계속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 안 걸리면 되니까...ㅎㅎㅎ










































지는 석양빛이 따사로운 빛갈이다.

우리의 석양빛도 이렇게 따사로울 수 있으년 참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