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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알람브라 궁전 1 - 스페인에 핀 이슬람의 꽃

천천히 chunchunhi 2015. 3. 3. 11:29

83 알람브라 궁전 1 - 스페인에 핀 이슬람의 꽃

 

알람브라궁전의 전경  (토론토 사진작가 김명선씨에게서 빌려 온 사진이다.)

 

"스페인 땅은 안 아까운데 알람브라 궁전을 빼앗긴게 아깝다" 며 눈물을 흘린 이슬람세력의 마지막 왕, 나스르 왕조의 보아브딜이 북아프리카로 퇴거할 때 한 말이다.

 

알람브라(아랍어: الحمراء, 스페인어: Alhambra)는 아랍어 그대로 "붉다"라는 뜻을 지닌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이다.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진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지역에 머물던 아랍 군주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1492년 탈환           후 많은 사람들이 "옥의 티"라고 하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카를로스 5세 때 추가되었지만 현재에는 이슬람 건축 박물관으로 쓰이고있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한국어로는 알함브라 궁전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지만 알함브라는 영문 식으로 그냥 읽는 경우이고, 아랍어가 스페인어로 굳어져서 쓰이고 있는 Alhambra라는 이름은 스페인어에서 "h"가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많은 책들이 그냥 "알함브라"라고 사용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알람브라"로 쓰기로 하며 2~3회에 걸쳐 함께 둘러 보기로 하자.

 

스페인어로 석류는 "그라나다(Granada)"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어로 수류탄을 그리네이드(grenade)라고 하는데 그 안과 밖이 너무나도 석류와 닮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름을 갖인 도시, 그라나다는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고대 도시로 기원 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711년부터 시작된 이슬람교도들의 정착에서부터 시작되어 1238년부터 건축되기 시작한 알람브라 궁전에서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왕궁이 완공된 후 150년 정도가 흐른 1492, 이슬람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에서 이슬람과 카톨릭 세력이 최후의 전투를 치르게 된다. 이사벨여왕과 페르난도왕의 연합군을  이끈 곤잘로 데 코르도바가 이끄는 "레콩키스타(Reconquista)"의 마지막 전쟁에서 이슬람세력이 패색이 짙어지자 알람브라 궁전을 내주고 궁전 아래 계곡 건너편의 작은 산인 사크로몬테 지역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여 사크로몬테 언덕을 피로 물들이며 장렬하게 죽어갔다. 결국 항복한 왕족을 위시여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북아프리카로 돌아 갈 수가 있었다.

이렇게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스페인에서 축출한 1492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스페인대항해 시대의 막을 연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하다.

승자의 전리품이 된 알람브라 궁전은 한때 스페인 왕궁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17세기 이후 스페인 왕조가 몰락하면서 시작된 사회의 불안과 내전등으로 인하여 세인들의 관심에서 사라지며 주변은 집시들의 서식처가 되어 황폐해졌다.

1832, 미국의 작가이자 당시 미국 공사관으로 마드리드에 머물던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3-1859)이 이곳을 여행하며 수집한 전설과 야사들에 기초하여 집필한알람브라의 전설이 인기를 끌면서, 19세기 들어 늘어난 여행자들과 유럽 역사학자들에 의해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가 입증되면서 복원이 이루어졌다.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 및 후기 낭만파 작곡가,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타레가(Francisco de Asís Tárrega y Eixea, 1852 11 21 ~ 1909 12 15)는 그의 제자이자 유부녀인 콘차 부인을 사랑하게 되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그녀는 타레가의 사랑을 거부하였다. 요즈음 같았으면 교수와 여제자의 불륜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겠지만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스페인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다가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하게 되고, 이 궁전의 분수가에서 자신의 사랑을 반추하며 클래식 기타음악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알람브라의 추억"이라는 기타곡을 쓰게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클래식 기타 매니아라면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지도를 자랑한다.

 

결국 스페인을 점령하였던 이슬람의 건축 중 가장 화려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가 미국의 소설가와 스페인의 음악가에 의해 재 발견되어 오늘날까지 스페인을 관광대국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해 진 알람브라는 하루에 6,800명만 입장이 가능하기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곳까지 와서도 못보고 갈수도 있는 스페인의 대표관광지가 되었다.

 

이슬람 건축의 특징은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시작된 이슬람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페르시아에서는 편자(말 발굽)모양의 아치와 도자기 장식, 그리고 벽토를 이용한 몰딩장식을 가져왔고,비쟌티움이라 불리던 동로마의 이스탄불에서부터는 둥근 반구형의 돔 지붕구조를 가져 왔고,아프리카의 이집트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까지 장악하는 동안 이집트 건축에서는 여러 기둥들이 바치고 있는 큰 공간을 차용하여 형상과 조형의 극치를 이룬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종교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것이 10세기 경에 동로마를 휩쓴 성상파괴운동하고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때부터 로마 카토릭과 동방 정교회로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그네들은 풀 모양, 그리고 기하학적인 선과 아랍어를 형상화한 문양만으로 그 큰 사원을 아릅답게 치장할 수가 있었다.

아라베스크(Arabesque)라고 불리는 이 문양이 당나라를 거쳐 한국에까지 전파되어 우리가 말하는 "당초무늬"가 된 것으로, 오늘에도 알람브라 궁전에서 우리의 "매듭양식"을 볼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자 이제 알람브라 궁전으로 들어가 보자.

 

 

입장권을 사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만들어진 장사진.

여행지에서의 귀한 시간이 이곳에서 많이 소모되기도 한다.

 

 

 

알람브라의 야경(토론토 사진작가 김명선씨에게서 빌려 온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