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파티마(Fatima) 포르트갈
포르트갈 수도 리스본에서 북쪽 141㎞ 지점에 위치한 파티마는 약 70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타운이지만, "파티마 성역"으로 불리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성지다.
1917년 5월 13일, 3명의 어린 목동 루시아(1907-2005)와 사촌 히야친타(1910-1920), 프란치스코(1908-1919) 남매가 평소의 습관대로 묵주 기도를 마치고 주위의 작은 돌들로 집짓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섬광이 비추어서 그네들은 천둥이 치는 줄 알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중에 현재의 파티마 대성당이 있는 자리에 이르렀을 때 참나무 위에서 태양보다 더 눈부신 여인이 하얀 묵주를 걸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단다.
여인은 목동들에게 기도를 많이 할 것과 앞으로 5개월 동안 계속해서 매월 13일, 같은 시간에 와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 후 6월 13일과 7월 13일에 성모의 발현이 있으면서 이 일들이 소문이 나게 되자 성모 발현에 의심을 하는 관리들에게 세 아이들이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바람에 8월 달의 발현은 이루어 지지 못하였다. 대신 성모는 8월 10일에 다른 곳인 "발린호스"에서 발현하였다고 한다. 그 후 9월에 약속대로 발현이 있자 마지막 발현일인 10월 13일에는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 와 70,000이 운집한 가운데 발현하여 자신은 '로자리오의 성모(Virgin of the Rosary)'라고 말 한 후 "태양의 춤"이라는 기적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 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아무 어려움 없이 태양을 바라 볼 수 있었단다.
그 후 1919년에 이 자리에 작은 경당이 세워 져 참배객들이 늘어나던 중, 1930년 레이리아의 주교가 "신성한 신의 섭리"라며 이 사실의 신빙성을 인정하면서 ‘파티마의 로자리오 성모’에 대한 숭배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후 바티칸의 교황들이 이곳을 방문하며 성지로 확정 지정되었다.
1928년부터 30만명이 운집할 수 있는 광장과 성모발현 기념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어 1953년에 봉헌되었다.
그 후 루시아는 수녀가 되어 스페인의 "도로시 수녀원"에 있을 때 다시 성모의 발현을 보았다고 한다. 1925년 12월 10일, 1926년 2월 15일. 그리고 1929년 6월 13일과 14일에 발현하여 루시아에게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 예언 중에는 자신의 부탁대로 묵주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의 신비를 묵상하며 티 없이 깨끗한 마리아의 성심에 대한 신심, 그리고 고백 성사와 영성체등을 부탁하며 그리하면 러시아가 회개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키며 교회를 박해할 것이고 교황이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등등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이 예언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은 채 많은 뒷 이야기가 무성하다.)
"파티마(Fatima)"라는 주제로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 졌다.
이야기의 전개는 영화이지만 지금도 파티마는 실제로 1917년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파티마의 기적을 믿는 수많은 성도들이 찾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지 순례지이다. 인구의 94%가 가톨릭 신자라고 하는 이 나라에서 파티마는 매일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특히 성모 마리아 발현 날짜인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매년 거대한 횃불 행진이 벌어지고 있어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대 성당 앞에는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대한 광장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교황 바오로 6세의 방문을 기념하는 종교회관이 지어졌다
광장으로 들어서는 사제관 남쪽에는 1951년 8월 12일에 세워졌다가 1989년 11월 9일에 허물어 진 베를린장벽을 헐면서 떼어 낸 콘크리트 조각이 전시 되어 있다. 독일에 사는 포르트갈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 진 이 작은 기념관은 공산주의의 멸망을 예언한 파티마 성모의 예언을 기리는 의미라고 한다.
광장과 성당을 둘러보는 동안 신심이 깊은 신자들이 광장 입구에서부터 성모 발현 지까지 돌바닥을 무릎으로 걸으며 서서히 이동하는 광경은 예루살렘의 돌바닥 길을 십자가를 지시고 쓰러지면서 걸어가신 그 길이 연상 키우도록 강열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파티마 성모발현 기념 대성당.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이다.
무릎 걸음으로 걸으며 고행하는 신자들.
많은 신자들이 켜 놓은 촛불들. 엄청 많은 사연의 기도 제목들이 있나보다.
초의 크기와 굵기도 서로가 다르듯이…
파티마 성당의 내부
어째 한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잘 못 보았나….?
(프란치스코는 일찍 병으로 죽게 되 2명의 동상만 세워 졌단다.)
교황 방문기념관 앞의 조각과 십자가.
아직까지 이렇게 Simple 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십자가의 모형을 보지 못하였다.
동.서 베르린장벽의 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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