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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대 항해 시대를 연 포르트갈 - 리스본

천천히 chunchunhi 2014. 11. 20. 12:13

73 대 항해 시대를 연 포르트갈 - 리스본

 

천동설이 정설이 되어 사회를 지배하던 유럽의 중세, 1450년대에 중동에서는 오스만 터키가 그 세력을 확장하여 동방으로부터 향신료등 귀한 물품을 육로로 수송하는 카라반에게 고액의 통행세를 매기기 시작하였다. 허나 한번 맛을 들인 동방의 향신료, 특히 인도로부터 오는 후추의 인기는 점차로 도시국가에서 발전하여 나라의 체계를 세워가며 부와 권력을 키우던 유럽의 영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물건이 된 것이다.

필요는 한데 가격은 자꾸 오르고, 또 조달이 원활하지도 않고….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딸리는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땅의 끝, 이베리아 반도에서 바라보이는 망망대해 저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어 오던 중세였지만 그 와중에도 지동설을 제창하며 지구는 둥글다고 설파하는 많은 과학자, 철학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전해 오기는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이를 입증하지 못한 채 중세에 이르러 어느 정도 과학적인 뒷받침을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천동설을 고수하는 종교계의 힘은 이를 믿고 설파하는 많은 사람들을 화형에 처하기도 하는 암흑시기였던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배를 만드는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그 미지의 세계에로 도전하려는 탐험가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탐험가들에게 도전정신은 있었으나 그 탐험을 뒷받침할 재력이 없어 결국은 새로 태동하는 왕권국가에 지원을 호소하게 되었고, 새로 태동한 왕권국가는 그네들대로 새로운 재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권력을 신장시키기 위하여서는 좀 더 영토를 넓혀야 하는 욕심이 생기게 되니, 서로의 필요가 서로에게 충족시켜 줄 수 있게 되어 시작된 것이 대항해시대인 것이다.

이 때 나타난 탐험가들 중 미 대륙을 발견하였다고 알려 진 이태리의 제노아 출신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가장 유명하지만 실은 이 전에 벌써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희망봉을 발견한 후 1497~99, 1502~03, 1524년까지 3차례에 걸쳐 인도로 항해하며 인도항로를 만들어 낸 포르투갈의 항해자이며 탐험가인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 12 24)가 있고, 바스코 다 가마 보다도 먼저 희망봉을 발견하고도 바스코 다 가마에게 인도 항로 발견의 공적을 빼앗긴 원한에 유령선 "플라잉 더치먼"이 되었다고도 하는 포르트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 1450년경 - 1500 5 29), 남아메리카의 최남단의 마젤란해협을 발견하며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페르디난트 마젤란등이 포르트갈 출신의 탐험가들이다.

그러니 결국 대항해시대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나서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대양으로 나선 포르트갈의 탐험가들로부터 시작되어 제노아 출신의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면서 스페인과 포르트갈이 서로 식민지를 더 넓히려는 경쟁으로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 것이다.

캐토릭을 국교로 하던 이 두 나라가 "하늘의 땅"을 주면서 ".북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은 결과는 유럽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어 오늘날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입이 떠억 벌어지게 호화찬란한 유적들을 남겨 놓게 되었던 것이요, 이의 시발점이 바로 포르트갈의 수도 리스본이다.

 

태양신을 섬기던 이집트나, 달의 신을 섬기던 페르시아나, 유일신을 섬기던 유대와 아랍의 이슬람제국, 그리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신마저 섬기던 신화의 나라 그리스와 그 헬레니즘문화를 동방에까지 전파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 그 뒤를 이어 독수리 문장으로 세계를 제패하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호언하던 로마제국, 그리고 세계를 동과 서로 나누어 다스리기로 조약을 맺었던 스페인과 포르트갈이 모두 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흥망성쇠를 기록한 나라들이다.

그 중에서도 세상의 서쪽 땅 끝이라는 이베리아 반도는 땅 끝답게 그리스에서 부터 시작된 문화와 로마의 힘을 입어 세계로 번져나가던 기독교의 문화가 무어족의 지배를 받는 동안 유대민족의 배다른 서자 지파가 중동에서부터 이루어 낸 모슬렘문화와 합쳐지면서 이루어내는 오묘한 조화가 도처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며 그 옛날의 긴박했던 정치와 경제와 화려하였던 문화를 이야기 해주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스페인이 된 에스파냐와 포르트갈은 같은 이베리아반도 안에 있지만 언어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다른 나라다.

로마의 통치하에 있던 이베리아반도는 서기 410년 로마가 서고트족에 멸망당 한 후 서기 711년까지 서고트족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타리크를 대장으로하여 지브럴터를 통해 침공해온 무어족에 의해 1492년까지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포르트갈은 서기 1000년경부터 무어족들에 반기를 들며 조금씩 영토회복을 하던 중, 카스티야-레온 연합왕국의 영토였던 "포르트칼레백작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포르트칼레의 백작이었던 엔리케스는 스스로를 공작으로 격상시키며 카스티야-레온 연합왕국과 독립은 위한 전쟁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1143년에는 그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교황과 카스티야-레온의 왕인 알폰소7세와 아라곤의 왕인 페트로넬리가 정식으로 승인하여 국가가 된 포르트갈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영화의 시발점이 바로 오늘의 수도 리스본인 것이다.

 

포르트갈의 리스본에 있는 대항해 기념탑

 

대항해 기념 광장에 있는 신대륙발견 지도

 

 

위의 지도 안에 일본을 발견한 해 1541이 적혀 있다. 한국의 모양도 보이고

덴쁘라, 고로께, 빵 등은 일본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진 포르트갈 말들이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발견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리스본의 해변에 있는 제로니모스 수도원 안에 있는 바스코 다 가마의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