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신(神)들의 격전지, 갈멜산
완만히 경사진 산비탈에는 올리브 나무가 무성하고, 목초지에서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참으로 목가적인 풍광이다.
"저 소들이 제물로 바쳐졌던 소들의 후예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비탈길을 올라가니 수도원이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문을 안 연단다. 토요일, 안식일이라고 어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렸는데, 오늘 일요일은 주일이라고 수도원이 문을 안 열고…. 좀 헷갈린다. 그래, 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게 인간의 법이니까.
낭떠러지 진 수도원 옆 평평한 단 같은 곳, 여기가 바로 열왕기 상 18장에 기록 되어진 그 옛날, 엘리야가 혼자서 외롭게 싸우던 그 정상의 자리란다.
1대 850 (바알의 사제는 450명인데 850은 너무 심한 뻥튀기가 아니냐고요?
그 850명은 바알의 사제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 그래서 엘리야가 맞선 이방신의 사제는 모두 850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수학적인 숫자로 볼 때에는 도무지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로 결정을 하여도 이건 너무나도 자명한 결정일 것이고···. 그래서 엘리야는 숨어 다녔었나보다.
아합의 부인이 된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의 사제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 후니 말이다. (또 아무개의 마누라 타령이네, 허허허)
그 숨어 다니던 엘리야를 하나님이 부르셨다.
제가 아무리 “머리카락 보일라 꽁꽁 숨어라” 한들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찾으시는 데 별 재간이 있겠는가!
그래도 인간적인 두려움과 조심성으로 친분이 있는 오바댜를 통해서 아합을 만나는 일을 주선하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알의 사제들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
“누가 진짜 신인가?” 를 가리자고….
가리는 방법은 각을 뜬 소를 제물로 바쳐 태우는 방법에 서로가 합의를 하였다.
숫자가 많은 바알 사제들에게 먼저 그들의 신을 불러 보라고 한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외쳐 불러 보고, 자해까지 하여보기도 하였으나 그 단 위에 각을 떠 올려놓은 소는 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단 서로 믿을 수 있는 신을 가리는 싸움을 하기로 한 이상 이제 그 수적 열세에 두려워해야 할 엘리야가 아니지.
그래서 그네들을 비웃고 조롱하기도 하였다.(왕상 18:27)
저녁 소제 때가 될 때까지 응답이 없자 이젠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다.
불로 태워야 할 각진 송아지에 물을 부으라고 명한다.
태워야 할 각진 송아지에 물을 부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하고 불은 서로 상극인데….
얼마나 많이 부었던지 그 물이 도랑 져 흘렀다고 한다.
그리곤 하나님께 간구를 하였다.(왕상 18:36)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 즉 불을 보듯 뻔한 게 아니겠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불이 그 도랑에 찬 물까지 다 말려 버리셨다니까….
이 결과를 본 군중들이 바알의 사제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포함해서 850명을 저 아래 보이는 텔 엘 콰시스, 즉 제사장들의 언덕이라는 곳으로 끌고 가 다 죽여 버렸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그러니 아합의 부인인 이세벨이 길길이 뛸 수밖에….
그래서 싸움에 이긴 엘리야가 오히려 19장 2절에 와서는 현상 붙은 사나이로 전락하여 숨어 다니게 되었다.
엘리야의 하나님에게 환호하며 바알의 사제들을 죽이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왜 또 태도를 돌변하여 바알을 믿어야만 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요, 어느 곳에서 불어올지 모르는 것이 바람이고 보면, 밟으면 밟혀야 하는 민초야 그 바람에게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나보다.
두려움에 광야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 탄식하며, 하나님께 죽기를 바라는 엘리야의 인성!
도대체 인간의 믿음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얼마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체험해야만 하는 것일까?
또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얼마 만큼일까?
결국 호렙산, 우리가 올라갔다 온, 그 시내산을 다녀오고 나서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 엘리야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결국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영광된 인성을 마치게 되었다.(왕하 2:11)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이름 위에 세워진 그 교회에 누군지 이름 모를 신까지 끌고 들어와 믿음의 자유를 외치고, 진리의 길은 하나뿐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믿음의 형제들(?)!
전도를 하여야 하나? 아님 내가 전도를 받아야 하나?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은 엘리야가 절실히 필요한 요즈음인 것 같다.
1 갈멜산 자락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
2 엘리야가 850명의 사제들과 대결하던 언덕
3 텔 엘 콰시스 850명의 사제들이 죽임을 당한 곳.
4 갈멜산 수도원에 서 있는 엘리야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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