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크리스챤 월드 성경 안밖의 세상

36 고린도로 가자 3 고린도 유적지

천천히 chunchunhi 2012. 8. 23. 23:04

36 고린도로 가자 3 고린도 유적지 (코린토스 그리스어: Κόρινθος,)

 

운하를 지나서 신 고린도 시내를 거쳐 옛 고린도 유적지로 향하는데 저 앞에 약은 바위투성이의 야산 위에 성채가 보인다. 프로디트라 신전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마음이 설렌다. 나도 남자라 그럴까? ㅎㅎㅎㅎ

그 산 정상에는 육체의 쾌락을, 삶의 쾌락을 부추기는 유혹이, 여자가 있는데(왜 유혹! 하면 거기에는 여자가 꼭 끼는지 한 평생을 살면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ㅋㅋㅋ) 올라갔다 하면 다시 내려 와야만 하는 숙명. 힘들여 올라갔다가 한 순간에 다시 굴러 떨어지는 운명이 우리 인생에게 말해주는 교훈은 무엇일까?그리고 그 정상에는 유혹이 있다고 설정하여 놓은 것은 옛 그리스인들의 지혜일까? 아님 해학일까?

그 곳이 쾌락의 원천이 아니라 영생의 원천이라 할지라도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야만 하는 게 우리 인간의 생존적인 삶이라면 그 삶 속에서 좀 더 높아지려는 욕망, 좀 더 즐기려는 욕망 또한 결국은 한시적인 순간의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 많은 노력을 기우려 시시포스처럼 돌을 굴려 올렸는데도 결국은 다른 힘에 의해 다시 떨어지고 마니 말이다.

아마도 이건 얼마 전 성지 이스라엘에 갔었을 때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의 변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되 뇌이 구절, “이곳이 좋사오니 초막을 세 개 지어.” 하던 베드로의 욕심이나, 나의 욕심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정상을 향한 인간의 욕심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 마음에서 욕심을 버리고 겸허히 내려 올 때, 우리를 제어할 수 있는 힘과 담대히 증거 할 수 있는 권능을 주는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땅의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터인데···.(이 땅을 떠나 살 때에는 아마도 성령의 힘이 필요 없으리라. 흙에서 온 육은 땅에 묻은 채로 하늘에서 영락을 누릴 우리 자체가 영일 터이니 말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이 땅이니 굳이 그 무거운 돌을, 그 무거운 욕심을 산 정상을 향해 굴려 올릴 이유가 무엇이랴!

산세를 보니 내 체력으로는 걸어 올라가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힘들여 올라간들 지친 몸에 여자가 무슨 필요일까? 허허허

뛰어도, 뛰어도 닿지 않는 포도를 보고 저건 신 포도야!” 하며 체념한 이솝의 여우가 되는 편이 편하리라. (옆에는 아내가 눈을 딱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어딜? ㅋㅋㅋ)

이런 공상 속에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목이 없는 많은 대리석상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우리로 하여금 목 없는 사열을 받게 한다.

목이 없는 몸이라.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육신으로 사는 것이 편하기는 편한 모양이다.

2000년을 넘게 서 있으면서도 앉을 생각 없이 여직 서 있어 우리에게 사열을 베푸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실내 전시실로 들어서니 또 많은 조각들이, 부서진 토기 그릇들이 진열 되어 있다.

가장 눈을 끄는 것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진 스핑크스였다.

인간의, 그것도 여자의 얼굴 모습에 사자의 몸을 하고,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반인반수의 괴물.

 

그리스의 신화에서는 신과 동물이 결혼하면 괴물이 태어난다는데..

이 스핑크스는 누구와 누구의 합작품일까?

 

이 스핑크스와의 싸움 때문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지 않았던가.(스핑크스를 이긴 오이디푸스는 그 뒤 여차여차하여 엄마하고 결혼해서 자식들을 낳았으나 사실을 안 후 스스로 장님이 되어 불우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신화를 '아들이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는 본능의 표현'으로 봤다. 그래서 남자 아이의 그의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배타적 사랑의 노이로제를 가리키는 말로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라는 말을 만들어 내게 한 스핑크스가 아직도 건재하게 진열되고 있는 고린도이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

서를 통해서 음행에서 벗어나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라고 권면하도록 음행이 심한 고장이 되었던 것일까? 고린도로 가자!”라는 말.

산 위의 프로디트라 여신, 땅 아래 스핑크스…… 어쩜 잘 맞는 조화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찍는데 전시된 조각과 함께 찍지는 말란다.

조각품만은 찍어도 되는데.

이 또한 무슨 해괴한 법인지 모르겠다.

옆에 사람을 놓고는 찍지 말고, 사람 없이는 찍으라니. 어디 헷갈려서 쯧쯧쯧 그게 다 사람이 만든 우상인데…….

엄청 큰 발굴 터에는 시장도 있고, 바울이 예수님의 도를 설파하던 유대인들의 회당도 있고, 목욕탕(그 당시에도 때 미는 습관 하나는 기가 차게 발달하였나보다. 가는 곳마다 목욕탕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도 있고, 또 원형극장도 있고, 또 그네들이 섬기는 산 아래의 아폴로 신전도 있고..

커다란 돌로 다듬어 진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그 당시에는 저 아래 항구까지 이어졌었다는데 그 동안 지각의 변동과 역사에 묻혀, 지금은 남의 집 아래로 끊기어지고 말았다.

아직 발굴이 다 안 되었다는 데도 이 정도이니 정말 엄청 큰 유적지였다.

이 유적지에 살면서, 사도바울의 편지를 받아 읽으면서도 음행을 하고, 파당을 지어 싸움을 하던 그 믿음의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사랑을 버리지 않았던 사도바울의 그 사랑은 과연 어떤 결실을 맺었었을까? 그 옛날의 믿음의 선조들의 후예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항구에까지 이어졌던 그 대로가 지금은 남의 집 아래로 잠겨 버린 것처럼 단절된 역사의 뒤안길에서 돌멩이에 담겨진 흔적을 공상하며 고린도교회로 가기 위하여 유적지를 나섰다.

 

 

 

 

1 고린도 유적지에 목 없이 세워진 조각상들 (우상 파괴시대의 흔적이다)

 

 

 

 

2 인면수신(人面獸身)의 스핑크스

 

 

 

 

3 이 대로가 항구에까지 이어 졌었다. 저 뒤에 보이는 산이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려 올리던 산이요 그 정상에 1000여명의 무녀들이 남정네를 기다리고 있던 프로디트라 신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