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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고린도로 가자 2 고린도 운하

천천히 chunchunhi 2012. 8. 23. 22:55

35 고린도로 가자 2 고린도 운하

 

고린도로 가자!”

이 말뜻의 속내를 눈치 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곧 알게 되신다 ㅋㅋㅋㅋㅋ)

 

이라는 뜻을 가진 고린도.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 온 3대 기둥 양식 중에 가장 화려한 코린트식 석주의 본고장 고린도.

스파르타식의 훈련만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서 기합을 주던 고등학교 때의 체육선생님은 그 스파르타가 이곳 고린도와 이웃한 도시인 것을 알고 계셨을까?

스파르타 카스의 본고장이 바로 이곳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고린도와 이웃한 도시국가였음을 나도 이제야 알았으니까.

이런 고린도가 그 옛날부터 그리스 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 남단에 있어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는 묘한 지형으로, 상업으로 물질적인 변영을 누린 도시요, 도시가 번영하다 보니 여러 인종들이 많이 모여 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동서 문화의 생활습성과 또 여러 신들을 믿던 그네들의 종교가 서로 뒤엉켜 혼잡을 이루었던 큰 도시였단다.

 

고린도의 종교 중에 여사제 프로디트라는 우상이 있어 600피트나 되는 산상(山上)에 무녀가 무려 1,000명이나 있어 뱃사람들을, 또 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불러 드려 온갖 음탕한 짓들을 다 자행하였기에 고린도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음탕한 풍습에 젖어 고린도사람이라 하면 음행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단다.

그래서 고린도로 가자!”하는 말은 좀 세속적인 말로 몸 풀러 가자 !”하는 말의 은어처럼 사용되었었다.

이제는 고린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만 한다.수직으로 깍아 지른 벽이 결국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반도가 아닌 섬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마치 두부를 반듯하게 자른 듯이 바위를 잘라 만든 고린도 운하.

내가 서있는 다리에서부터 해면까지의 깊이가 자그마치 86m나 되게 수직으로 깍아 내린 바위들, 해면으로부터 수심 깊이가 10m나 되고 해면의 폭이 22m, 위로 올라오면서 점점 더 넓게 파여져서 큰 크루즈도 다닐수가 있다는 세계 3대 운하중의 하나인 이 고린도 운하의 길이가 자그마치 6.8km라는데 너무나 곧게 파여서인지 그 끝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6.8Km면 우리 이수로 시오리가 넘는 길인데

 

이 운하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비가 절약되는지 모른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이런 경제 효과를 몰랐을까?

아니지. 그들도 알았었기 때문에 여기에 운하를 파서 고린도 지협과 이오니안 해와 에게 해를 연결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고대 고린도의 창설자인 참주(僭主) 페리안더(Periander)에 의해 최초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워낙이 굳은 지반에다가 과업의 장대함으로 그 시대에는 실현하지 못하였다.

그 사이 많은 지도자들, 즉 알렉산더대왕, 칼리귤라 등이 운하 계획을 가졌으나 실현하지 못하였었다가, AD67년 네로황제 때비로소 실제 작업에 들어가 6,000명의 유태인 노예를 동원하여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나 이 또한 갈리아인들의 침입에 의해 중단되었다. (로마제국은 당시의 유대나라를 없애고 그 지역을 시리아-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며 많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이곳 저곳으로 분산시키었던 것이다. 고린도 전 후서를 읽어보면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된 교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유대인들과 또 그 곳에 거주하던 이방인들이 함께 예수를 믿게 되다 보니 그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나 보다.)

 

그 후 오랜 세월 방치 되었다가 마침내 19세기(1883~93)에 가서야 프랑스 엔지니어회사에서 이 운하를 성공시킴으로서 결국 2600년 만에 처음의 계획이 이루어진 것이다. 반도를 잘라내어 섬으로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 졌다는 말이다.

허허. 장구한 세월에 장관이로고.

~~~ 밑에 지나는 배 위에 탄 쪼그마하게 보이는 사람이 더 작게 보이는 손을 흔들며 올려다본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지.

 

 

 

 

고린도 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