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 여자의 일생05.11.26
하나님은 기근을 통해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훈련하시는 것 같읍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 된 아브라함도 기근으로 인하여 애급으로 다녀 왔고 요셉을 애급으로 보내 신 후에도 또 그 기근을 통해서 부모와 형제를 만나게 하여 주시었고, 후에 크게 출애급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주시었는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룻도 그 이야기의 시작이 기근으로 이루어 후에 예수님의 족보형성 과정을 나타내게 되었읍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주셔서 그 민족을 축복하여 주신다고 하시었는데 구약 성경 곳곳에서 그 가나안 지경이 이렇게 자주 흉년이 들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어 역사의 굴곡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 하여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아니 그 사역을 이해 하려는 발상이 벌써 불손한 발상이기에 거저 이런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하여야겠지요.
사실은 몇 천 년이 지나는 동안에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기근은 몇번이나 되었습니까?
몇 번 안되지요.
기근 보다는 무지무지 더 많은 세월들이 잘 살아 왔지만 그동안에는 별로 이야기 꺼리가 될만한 일들이 없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어는 누구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님을 공경하며 아들 딸 낳으며 잘 살았다는 일들을 소설로 쓰지 않았던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더라도 예를 들면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처럼 기구한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야기들이 많은 장수를 메웠지만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그 많은 사람들이 거저 단순히 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하며 지나치고 말지 않았습니까?
결국 그렇게 이름만 나열되어 지난 사람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며 지낸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쓸만한 이야깃꺼리가 별로 없었다는 말이지요.
룻기는 한마디로 여자의 일생이라고 할 수가 있겠읍니다.
모파상이라는 사람도 “여자의 일생” 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써서 많은 여성들을 울렸는데 룻의 일생은 비극으로 끝나는 일생이 아니라 비극으로 시작하여 영광으로 끝나는 그런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흔히 여자는 세번 변한다고 하지요.
자녀로서의 여자일 때와 부인으로서의 여자일 때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여자일 때로 말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도 만들어 졌고요.
그런데 그 어머니가 때로는 시어머니가 되기도 하는 게 또한 여성입니다.
그러니 엄밀히 따져서는 4번 변한다고 하여야겠지만 세상 모든 여자가 다 아들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3번 변한다고 한 모양입니다.
어머니하고 시어머니하고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아들네 집에 가서 아들이 부억에 들어가 설겆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앙앙 불락하며”저런 바보 같은 자식, 내가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데 부억에 들어가 설겆이를 해? 벌써부터 저러니 앞으로 얼마나 쥐어 살꼬…쯪쯪ㅉ,ㅈ…”
시어머니지요.
딸네 집에를 갔읍니다.
저녁후 사위가 딸은 밥상에 않혀 놓고 부억에 들어가 살갖이를 합니다.
흐믓한 마음으로”역시 우리 사위 잘 골랐어. 이렇게 부인을 위해주니 말이야..”
어머니 마음이겠지요?
똑같은 여인이 아들과 딸 집에서 가지는 그 마음 때문에 어머니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는 모양입니다.
오늘의 이야기 또한 두 며느리와 한 시어머니의 이야기 입니다.
여기 계신 많은 여성분들도 한때는 며느리였고 이제는 시어머니가 되셨지요.
오늘은 룻의 이야기에 비추어 과연 나는 어떤 며느리였고, 또 지금은 어떤 시어머니로 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여자가 될까 생각해 보는 것이 오늘 구역예배의 주제가 될것 같읍니다.
성경에 여자의 이름으로 책을 실은 것이 룻기 말고 하나 더 있지요?
누구? 예 에스더지요.
에스더와 룻기는 그 성격이 많이 틀리지요.
에스더는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해 몸을 바친 여성의 이야기이고 룻기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 오시는 예수님의 족보를 형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성이었읍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쭈욱 읽어 보노라면 여자의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옵니까?
꺼꾸로 시작하면 어머니인 마리아, 우리야의 아내(밧세바), 룻, 라합, 그리고 다말.
이렇게 5명이 특별히 그 족보에서 거론이 되어집니다.
그 당시의 여성에게는 요즈음 말하는 인권이라는 것이 없어서 예수님 시대에서 까지 사람을 셀 때 제외 되었었는 데 왜 성경에서는 구지 이런 여자들의 이름을 그 족보에 넣어서 기록을 하였을 까요?
더군다나 마리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없지만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다 정상적인 현모양처요 평안한 삶을 살은 여성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가 남편이 되어 베레스를 낳고, 라합은 가나안의 기생, 좋게 말해 기생이지 결국은 이방인인 가나안의 창녀였습니다. 밧세바와 다윗의 불륜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룻 또한 이방인이요, 과부였습니다.
하나같이 다 문제가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있는 대로를 기록하고 있으니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서도 이루어 질수 있으니 우리더러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의 과거가 어디 이 여성들 보다 못한 분이 한 분이라도 계세요?
없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도 우리 하기 나름에 따라서 구원의 반열에 설 수도 있고, 또 이웃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사역의 반열에도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여자가 3번 변한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또 하나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여자가 왕의 부인이 되면 왕비가 되고, 거렁뱅이 부인이 되면 거렁뱅이가 되고, 목사님 부인이 되면, 장군의 부인이 되면, 사장님의 부인이 되면 사모님이 되지요.
결국은 남편이 무엇이 되는가에 따라서 여자의 지위가 만들어지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그러니 똑똑한 여러분들, 오늘부터 남편을 잘 섬기세요. 여러분의 위상이 달라 집니다.
오르바처럼 중간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으로 돌아 갈 것이 아니라 한번 섬기기 시작한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잘 섬겨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오른 룻 처럼 여러분 모두가 다 이세상에 살면서 자녀들에게 좋은 어머니로서 또 남편에게는 훌륭한 부인으로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그래서 먼 훗날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 구원의 반열에서 이름이 빛나는 여성 여러분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다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나의 이야기 > 교회, 그리고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6-07-19 세 사람- 나는 어떤 사람일까? (0) | 2012.06.01 |
---|---|
2006-07-12 결실의 조건 (0) | 2012.06.01 |
2005-10-15 자주장사 루디아. 여자 그리고 봉사 (0) | 2012.06.01 |
2005-09-24 다니엘의 불행을 되풀이 않으려면 (0) | 2012.06.01 |
2005-08-16 되려는 사람, 야곱 (0) | 201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