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교회, 그리고 나

2005-09-24 다니엘의 불행을 되풀이 않으려면

천천히 chunchunhi 2012. 6. 1. 08:00

 

다니엘의 불행을 되풀이 않으려면05.09.26

(2005 9 24 구역 예배에서 나눈 이야기 들입니다.)

요번 달의 구역 예배는 다니엘에 대한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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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목사님께서 수요예배에 젊은이들을 상대로 다니엘서 강해 설교를 하고 계시기에 제가 구역에서 드릴 말씀에는 한계가 있는 같습니다. 젊은 이들을 상대로 꿈을 가지고 목적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힘있게 말씀을 전하시는데 말씀에 사족을 다는 같아 조금 안스럽기도 하고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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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저희 구역에는 훌륭하게 성장한, 장성한 자녀들을 두신 분들이 많기에 자녀들에게 어떻게 모범을 보일것인가를 이야기 하기 보다는 어떻게 모범을 보였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간증처럼 되어지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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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지나간 역사를 더듬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의 삶에서 역사 하시었는가를 생각해 보고 기적과 상식적인 앎과 믿음의 공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같아 오늘은 이런 각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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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서를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없으세요
?
다니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었이지요
?
풀무불?, 사자굴? 친구들
?
다니엘이 행복한 삶을 사람입니까? 행복하다면
?
아니면 불행한 삶을 사람입니까? 불행하다면
?

다니엘 편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는것처럼  양보하지 않는 신앙, 뜻을 정하는 신앙, 용기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의 역사가 이해가 되고 믿어 지세요
?

흔히들 다니엘서 하면 4 선지서 중의 마지막 선지서로 구약 중의 계시록이라고 이야기들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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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몽이 있고, 계시의 설명이 있어 앞으로 되어 일들을 이야기 하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들을 통해서,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 것인가를 미리 보고, 그것에 마추어서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는 예언서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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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이라는 것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각색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난해한 예언서가 아닌가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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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난해한 문제들은 신학적인 능력을 가지신 목사님을 통해서 정확하게 전달을 받는 것이 좋으니까, 목사님의 몫으로 남겨 두고 오늘은 가볍게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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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인 배경을 보면 우리 역사에서 고려시대, 이조 시대, 중국에 왕자들을 불모로 보내어야만 했던 암울한 시대같기도 하고, 이조 말엽, 일제의 식민지로 땅을 빼았기고, 이름도 성도 갈아야만 했던 시절이 연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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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역사를 통해서 시절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요
,
우리 중에는 시대를 직접 체험하신 분들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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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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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모진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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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부에서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보기 위하여 더욱 잔인하게 고문하고, 혹독하게 다루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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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를 다룬 영화, “ 높은 곳을 향하여 보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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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을 피워 놓고 위를 걸어가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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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면 네가 발이 데지 않을 것이라고 조롱하면서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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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고문을 하던 순사가 다니엘서를 읽은 순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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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풀무불에서 멀쩡하게 살아 나왔는데, 주기철 목사님의 발은 멀쩡하지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순교를 하시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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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후에 일본 순사가 남은 목사님들에게 하는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주기철 목사가 믿는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이요?” 하며 비아냥대던 대사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저도 그때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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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니엘과 주기철 목사님을 단순 비교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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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고문을 당하였는데 결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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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식으로, 상식으로 머리 속에 남아 있기에 풀무불에서 살아 나왔다는 말이 믿기가 힘든, 상식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그래서 믿음으로만 가능한 하나님의 이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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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주기철 목사님이 다니엘 처럼 살아나서 조선 총독부의 고위 직에 있게 되었다면 주기철 서가 쓰여졌겠지요
?
이렇게 이런 경우들을 뫃아 놓다 보면 성경이 무척 두꺼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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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적들, 왕의 꿈을 해몽하는 것은 그런 꿈을 가능성이 있는 같은 이야기지만, 있을 있다고 생각키워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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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우리도 그런 꿈들을 경우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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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굴에 던지워서도 멀쩡히 살아나왔다는 또한 그럴 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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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사자라는 동물은,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하고 달라서,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옆에 있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 동물들의 습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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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사자들이 저녁을 먹은 후라 밤이 안전할 있었다는 억지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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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한 농입니다마는 사자가 다니엘이 너무 늙어서 입맛을 버릴까봐 안먹었다고도 하더군요. 다니엘의 나이가 80 넘었을 때라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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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분히 우리의 상식과 지식과 경험에 의존한 이해에 지나지 않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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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도 결국은 죽었읍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죽었고, 스테반집사도 죽었고, 베드로도 죽었고 요한도 죽었고, 우리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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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을 지키면서 믿음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라는 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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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가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

우리가 오늘은 풍요로운 나라에서 믿음의 자유를 가지고 편안히 교회에 다니며 믿음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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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우리보고 신사참배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우리보고 성과 이름을 갈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또한 어느 누구도 우리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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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다니엘을 읽으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것은 우리의 지식이나 상식으로 이해 안되는 일들이 기록되었기에 그건 거저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그런 예언서가 쓰여지게 이유를 먼저 알고 그런 역사가 우리들에게 다시 되풀이 되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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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포로가 되어 적국에 끌려 가야만 했습니까
?
나라가 약해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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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고 결국에 가서는 망하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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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르고 방탕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국민들을 사랑하지 않고 폭정을 결과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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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본들을 자식들에게 보이면서 세월을 살아 왔으니 그나라가 점점 악해지고, 약해질 밖에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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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가 일본에게 완전히 침탈을 당해서 이름을 갈고 신사를 참배해야 하는 수모를 당하였습니까? 같은 이유 때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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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강해 져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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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워 져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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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것 보다도 앞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참된 삶의 자세를 몸소 실천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 주어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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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녀들은 우리들의 훈계를 들으면서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행동을 보면서 자라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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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 지혜를 구하여, 지혜와 부귀와 영화를 한꺼번에 누린 솔로몬도 결국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 보니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던것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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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 부인들이 가지고 우상을 뒷마당에서부터 허용하다 보니, 급기야에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게 되지 않았읍니까
?
말년에 후회를 하며 잠언을 자식들에게 가르치려 하였지만 결국은 자식들은 훈계로 교육되어지지 못한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아버지의 모슴을 답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에  전도서를 쓰며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만이 바른 길이요 외의 모든 일은 헛되고 헛되니 해아래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한탄하지 않았습니까
?
솔로몬 사후   나라가 두쪽으로 나누어 졌다가는 결국 모두가 포로로 잡혀가는 운명에 처하고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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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다는 또한 인생의 경험을 노년에 이르르서 하는 내용하고, 20대에 혈기방장해야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헛되다하고에는 차이가 있읍니다. 또한 조심해서 가르쳐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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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가 자식들에게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며 다니엘처럼 목적이 있는 , 굴하지 않는 신앙의 용기를 가지기를 바라는 보다는, 다니엘이란 이름은 받은 우리 자녀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고 욕심의 노예가 되고 우상을 숭배하는 불신앙인이되어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나라와 의를 바로 세우는 가정이 되어, 가정에서 모범을 보이고, 교회에서 참된 신앙을 배우며, 사회에서 올바른 정의를 실천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우리가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할것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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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양보하지 않는 신앙, 뜻을 정하는 신앙, 용기있는 신앙을 오늘부터라도 우리가 몸소 실천을 하여서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의 역사가 우리 가정을 통해서,우리 구역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우리 사회를 통해서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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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기적으로 믿는 믿음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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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믿음이 있을 때에야 성령님게서  우리와 함게 하시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하실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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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함께 믿음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