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크리스챤 월드 성경 안밖의 세상

20 슬픔의 길,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1

천천히 chunchunhi 2012. 4. 28. 00:48

20 슬픔의 길,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는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라는 뜻이다.

이 길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해 걸으시던 약 800 m 의 길, 그리고 골고다에서의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써 14세기 프란시스컨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확정된 길이다. (그동안 예루살렘 성은 수없이 무너지고 재건축되어 역사가들은 실제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걸으신 길은 지금의 길 지하 7m 정도에 있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가 가서 보고 만질 수 있는 통곡의 벽 바닥 정도가 아닐까 싶다.)

 

로마 병정들이 희롱하며 장난질 친 자국을 남긴 돌을 보면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가다가 보니 그 지점 지점마다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참을 줄을 서 있다가 들어가 둘러보며 잠시 설명을 듣곤 또 다음 사람을 위해서 빨리 나와야 하고, 또 혼잡한 골목길을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부리나케 걸어가다가는 줄을 서고, 들어가고, 나오고.

마지막 지점으로 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가 서 있었다는 골고다 언덕이었었다는 곳도 보고, 거기서 조금 덜어 진 곳에 있는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싼 자리라는 돌도 만져보고 예수님의 시신을 뉘었던 무덤이라는 자리도 보았건만 이 모두가 다 한 교회 안에 있어 좀 의아하게 만든다.

글세.... 여기가 정말로 그 골고다 언덕이요, 이 돌이 예수님의 시신을 뉘었었던 돌일까?

십자가가 서있던 갈보리 산, 그 언덕은 어디로 갔을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막은 돌을 어찌 치울까?" 걱정하며 향유를 들고 온 그 무덤은 어디로 갔을까?

이 모두가 다 한 교회 안에 있다고 하니 그 거리가 이것 밖에는 안 되었나?

교회가 좀 크기는 크다마는.

결국 후세의 사람들이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한 너무나도 많은 손질이 오히려 그 본질을 흐리게 하여 놓았나보다.

 

여태껏 걸어 온 길은 좁은 골목길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줄줄이 이어졌고, 그 주변에 늘어 선 장사꾼들의 호객 소리로 골목 안은 소란하였다.

거기다가 떠나오기 전부터 누누이 들어 온 소매치기 조심!”

 

돈 들여, 시간 들여, 이 먼 땅 예루살렘까지 온 목적이 무엔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체취를 느끼며 고난에 동참해 보려는 것이 아니었나? 오랜 기억을 위해서는 사진도 찍어야지.

이렇게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이 많다보니 그 슬픔의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도 이 길이 고난의 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고난의 길을 걸어 다니는 동안 나를 잡아 끌어내어 대신 십자가를 지라!”는 험상궂은 로마병정도 만나보지 못하였고,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거하리라"는 자애로운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나의 욕심이, 나의 죄 된 마음이 아직 영의 눈을 뜨기에는 더 많은 참회의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

아마도 주님에게 육신의 양식을 조금 더 잘 대접을 하여야겠다는 일념으로 마음이 분망한 마르다처럼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느끼겠다는 나의 분망한 마음이기에 또 주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장소 장소마다에 지어 놓은 기념교회들,

그 많은 밀려드는 순례객들 틈에 끼어 그걸 보랴, 사진 찍으랴, 소매치기 조심하랴···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가 어디지?

너무나 많은 교회들을 너무나 짧은 시간에 돌았기에 좀 돌았나 보다.

그런 와중에 어찌 주님의 체취를 느낄 수가 있으리오!

주님께서 하신 말씀, "두 주인을 한꺼번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 어찌 그리 명언인지.

 

1지점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빌라도 법정이다.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정 (Praetorium, 27:11 ~ 14)으로부터 시작되며 예수께서 사형이 확정된 곳이다. 헤롯 대왕이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를 위해 지은 안토니아 성채 내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 당시의 로마 총독부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나, 당시 총독 빌라도는 유월절 기간 동안에 자주 일어났던 반로마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선고교회 (Church of Condemnation)가 서 있다

 

2지점은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도시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로 향하셨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를 조롱하였다. 빌라도는 십자가를 메고 나오시는 예수를 보고 "보라 이 사람이로다" (Ecce Homo, 19:5) 라고 했다.

 

 

 

 

 

사진 1 1, 빌라도의 법정

오해하면 안 될 것이, 이곳이 빌라도의 법정이었던 자리였을 것이라는 곳에 후세에 다시 지은 건물들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예루살렘 성은 수차례에 걸쳐 재건축되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진 2 빌라도 법정 벽에 새겨진 조각

행여 예수와 관계된 것이라고 무조건 껍뻑하여 신성(?)하게 생각지 마시라. 다 그럴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삿속?으로 후대에 만들어 붙여놓은 것이다. 허나 그나마 라도 보며 그 때의 아픔을 느껴 볼 수가 있다면 순례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