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터키의 결혼 풍습
빌라델비아 교회 터를 떠나서 뜨뜨미지근한 라오디게아로 가는 길에서다.
몇 몇 집 지붕 위에서 빈 유리병들이 지는 석양을 담아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아~~! 저 유리병!
터키로 떠나기 전에 찾아보던 자료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그 장면이 눈앞에 전개된 것이다. 아마도 시집가야 할 처녀들이 많은 동네인 모양이다.
지금은 55개 종족이 모여 사는 나라가 되어 각 종족마다 다 특이한 결혼풍습이 잇겠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터키의 결혼 풍습이 있다.
터키에는 “말에 탄 신부의 길은 오직 사촌 오빠만이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친족 결혼이 전통처럼 내려온다. 아마도 부모가 짝 지어 준 신랑 집으로 가는 신부를 연모하던 사촌 오빠가 그 앞을 막으면 사촌오빠의 부인이 되는 것이 그 지방 전통이었던 모양이다.
이는 부족들 간의 오랜 전란을 통해서 스스로가 자신의 종족을 보전하려는 종족보전의 본능이기도 하면서 또 친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재산의 분산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근친혼이 많이 이루어 졌었던 것이리라. 신부가 신랑의 가족 구성원과 친숙한 관계를 맺기 쉽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우생학적인 문제도 있고 하여 현재는 국가 차원에서 ‘근친혼을 하지 말라’는 계몽운동이 일고 있으나 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아직도 직계 친족 사이에서 혼인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그러면 친족들끼리 서로가 누구 네가 과년한 딸이 있고 누구 네가 장성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서로가 알 터인데 왜 굳이 병을 지붕 위에 올려놓아 “시집갈 딸이 있소!” 하고 광고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자기의 딸에게 좀 더 좋은 배필을 구해 주려는 부모의 바램이기 때문이리라.
병의 크기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커진다고 하는데….얼마만한 병에서부터 시작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 얼마나 커 질 수 있는 것일까?
이 병을 보고 동네 총각이던지, 멀리 사는 친족이던지, 아니면 지나가던 나그네든지 누구나 마음에 있으면 돌을 던져 그 병을 맞추어 떨어뜨리던지 깨뜨리면 여자 집에서는 그 남자를 집안으로 초대하여 들어오게 한다.
이제는 왜 나이에 따라 병의 크기가 커지는지를 알 수가 있겠지. (작을수록 맞추기가 힘들지 않겠는가? ㅎㅎㅎ)
그러면 그 집의 처녀가 남자를 구멍으로 훔쳐 본 후 커피를 타 내오는데….
커피 위에 거품을 잔뜩 내어 들고 오면, 여기 식으로 커피라테처럼 들고 오면 안됐지만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이고, 블랙커피를 맑게 내오면 그 남자가 신랑감으로 마음에 든다는 표시이란다.
이렇게 여자 마음에 들게 되었다는 것을 안 남자의 아버지는 여자의 집으로 와서 “딸을 주십시오”라며 정중히 청혼을 하면 여자의 아버지가 푸른색 인주를 묻혀 서류에 도장을 찍고 둘이 서로 손을 팔씨름 하는 식으로 앉아 악수를 하듯 맞잡은 후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그 위에 흰 천을 덮은 후 알라(이슬람의 유일신) 앞에 서약하는 것으로 성사가 된다.
결혼식은 신부의 아버지가 순결을 뜻하는 빨간 리본을 신부의 허리에 매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종교 의식으로 치르는 결혼식에는 ‘이맘’이나 ‘호자’라고 불리는 종교인 두 명과 신부 가족의 대표가 참석한다. 이맘이 코란 경전을 읽은 다음, 신부 측 대표에게 딸을 신랑에게 줄 것인지 세 번 묻고 대답을 듣는다. 그 후 신랑에게 신부를 받아들이겠냐고 또다시 세 번 묻는다. 신랑이 대답하면 종교적으로 혼인이 성립된 것. 그러면 하객들은 부부를 축하하면서 돈과 장신구 등을 선물한다. 신부는 흰 무명을 어깨에 두르는데, 한 사람씩 다가가 축하의 말을 건네고 천에 지폐를 꿰어 준다.
모든 하객들은 우리나라처럼 돈 봉투를 가지고 온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식장에서 많은 하객 앞에서 봉투를 일일이 열어 누구 얼마, 누구 얼마를 밝힌다는 점이다.
우리의 정서로는 쪽팔리는 사람도 있겠고, 으스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네들의 정서는 누가 왔었다는 데에 더 큰 기쁨을 두는 모양이다.
그러고는 밤이 새도록 춤을 추며 축하하고, 놀고,….
결혼식 후 신랑과 신랑 친구들이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간간이 하늘을 향해 축하의 총을 쏜다. 시골에서는 결혼식을 하나의 축제로 여겨 3일 내내 마을 사람들이 음식도 나눠 먹고 춤을 추기도 한다. 터키인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모든 이가 함께 즐기며 신랑, 신부를 축복해주는 것을 결혼식의 참된 의미라고 생각한다.
터키, 55개의 종족이 모여 사는 나라….
어쩜 캐나다보다도 더 복합적인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종족을 넘어서 공통적인 것은 딸의 장래를 위해서 누구나가 다 제일 좋은 상대를 고른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지붕 위에 병을 세워 놓으면서까지 “시집 안간 딸이 있소!” 하고 광고를 내는 것은 당연히 신청해 오는 많은 총각들 중에서 가장 좋은 남자를 고르기 위한 방편이겠지.
근데 그 ‘가장 좋은’ 이란 기준이 누구에게 맞추어지는 기준일까?
당연히 부모가 고르면서 “다 딸을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정녕 이 곳에는 세대 차이가 없었을까? 터키 판 로미오와 줄리엣도 있을 법 한데…. 그 ‘좋다’의 기준이 부모와 자식 간에 같아지기가 힘든 것이 세대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데…. 비록 그 자식들이 나이가 들어 부모가 된 다음에야 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터키에는 ‘말에 탄 신부의 길은 오직 사촌 오빠만이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뜩 딸들을 결혼시키는 이야기로 디아스포라의 애환을 그린 영화 <Fiddler on the Roof :지붕위의 바이올린>의 사위 고르던 장면이 생각 키운다.
돈 많은 푸줏간 노인? 아님 돈 없는 양복쟁이 사위? 둘을 놓고 부부간에 벌리는 신경전, 그 꿈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나는 어떠하였나?’ 머~언 훗날 우리 딸에게 물어 보아야지.
‘딸이 남편감으로 데려 온 사위 후보를 보고 내가 OK 하기를 잘했는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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