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브룬 궁전과 정원
비엔나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 후리웨이를 달리기 시작 할 즈음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잠에 떨어진 모양이다.
가이드도 이를 눈치 채고는 그냥 자란다.
그렇다고 잘 수야 있는가? 차창으로 전개되는 풍경이 농촌의 풍경이라도 이건 유럽의 풍경인데…..
그리고 지금 자면 또 밤에는 어쩌라고……
국경 없는 국경을 넘어서면서부터 주위가 포도밭으로 변하였다.
약 4시간을 달려 비엔나의 외곽지역에 도착하였는데, 버스가 털컹! 하더니 요지부동이다.
고장이 났단다.
허허!!
첫날인데 이러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잇었지만 그래도 시내 다 들어와서이기에 다행이라는 안도 또한 교차하는 감정이었다.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저녁을 먹으러 가는 식당에 거지반 다 왔는데, 약 10분 걸으면 될꺼라며 우선 걸어서 움직이쟌다.
뭐 별 수 있는가, 걸어야지.
한참을 걸었어도 영 나올 기미가 아니다.
가이드가 어디에다 전화를 하더니 버스를 타고 가쟌다.
그래서 비엔나에서도 버스를 타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지.
버스로 한 4정거장을 가서 내리니 우리가 예약한 식당이란다.
오늘 저녁에 “요한스트라우스 왈츠 체험”이라는 옵션을 신청한 사람들은 빨리 저녁을 먹는 대로 택시로 움직이고 남은 사람들은 버스가 데리러 온댄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외곽에 있는 아담한 식당에서 준비된 저녁은 햄과 돼지고기와 소시지, 그리고 사워크라우트였다.
식사하는 동안에 옆 방에서는 아마도 결혼식 피로연을 하는 모양인지 악사가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며 우리의 귀까지 즐겁게 하여 주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바이올린과 아코디온으로 한국 가요를 연주하며 두명의 악사가 들어 왔다.
모두들 놀라 의아해 하며 큰 박수로 맞으니 더욱 흥이나서 한국가요들을 연주한다.
내가 알고 있는 “만남”에서부터 내가 모르는 요즈음의 최신 곡까지 쉬임없이 연주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고….
마치 영화 속에서 보아 오던 한 장면이 실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비엔나가 음악의 도시는 음악의 도시인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무척 많이 오기는 오는 모양이다.
기분 같아서는 모두들 더 있고 싶은데 우리를 태워 줄 버스가 왔단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나오니 신형 벤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고장난 버스 있는 곳으로 가서 짐을 옮겨 싣고는 숙소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 숙소는 왜 그리 먼지….
비엔나 시내를 통과해서 다시 한참을 가 비행장 앞의 호텔에서 내려 놓는다.
호텔 옆의 높은 고층 건물 벽면이 전부가 대형 전광판으로 삼성 로고를 광고하고 있었다.
한국의 국력과 경제력의 신장이 유럽에서도 점점 커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허기사 오면서 얼마나 많은 삼성, 현대, LG의 광고를 보았던가!
그리고 길에 나다니는 많은 현대 자동차들…..
이제 한국은 한국 속만의 한국은 아닌 모양이다.
오늘도 많이 보고, 또 먼 길을 달려 왔다.
이제 내일은 비엔나가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까?
비엔나 어린이 합창단의 청아한 소리가 귓전를 울려 오고,
오랫동안 음반으로만 즐겨 듣던 비엔니 필의 음악들을 되 뇌이며 잠을 청했다.
햇빛 찬란한 상쾌한 아침이다.
호텔에서 아침은 베이컨으로 포식을 하고…ㅎㅎㅎ
제일 먼저 내린 곳이 쇤 브룬 궁전이다.
쇤브룬 궁전과 정원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남서쪽 교외에 있는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으로,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많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고,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나폴레옹군의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 때 유럽을 호령했던 왕가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샘(Schonner Brunnen)’에서 유래한 쇤부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빼어난 모습을 보려는 이들로 입구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가 황제의 수렵용 소궁전이 있던 자리에 1696부터 1700년 사이에 쇤부른 궁전을 처음 지었다. 이어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인 1744년부터 1749년 사이에 니콜라우스 파카시(Nicolaus Pacassi)의 설계에 따라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개축 규모가 워낙 커서 애초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알력관계에 있던 이웃나라 프랑스에 국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있었던 터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견줄 만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탄생하게 된것이다.
궁전은 부드러운 황색의 외벽이 인상적인 거대한 3층 건물로 방이 1441개나 된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에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실내장식을 해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다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45개의 방을 통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했던 과거를 엿볼 수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거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 남아메리카산 장미나무 뿌리로 꾸민 방 등 어느 곳이든 일반인의 눈에 호사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사방이 온통 거울로 둘러싸인 ‘거울의 방’은 여섯 살 된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또래였던 마리 앙투와네트에게 어린 모차르트가 청혼을 했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궁전 뒤로는 1.7㎢ 달하는 광대한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진다.
화단과 분수, 정교한 조각상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은 궁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원 끝 언덕에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운 일종의 개선문인 글로리에테(Gloriette)가 있다. 아치형의 주랑과 정교한 조각이 일품인 신전풍의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궁전과 정원의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정원에는 이외에도 1752년에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 아치형의 독특한 모양을 한 온실, 1690~1918년까지의 마차가 전시된 궁정마차박물관 등이 있다.
이렇게 볼 거리가 많은데…. 우리는 오래 있을 수가 없단다.
그리고 그 아까운 시간을 오스트리아가 멕시코까지 지배 하였었다는 역사를 증명한다며 듣는대로 잃어버리는 왕가의 족보를 한참이나 설명을 한다.
본관을 나와서는 정원을 보여주며 30분동안 자유시간이란다.
어쩌면 좋와!
저 위의 개선문모양으로 웅장한 글로리에테까지 가는데에만도 30분은 걸리겠는데…..
왜? 냐고 불평을 해 보았자 될 일도 아니고….하는 수 없지.
아름다운 정원을 걸어 우람하게 조각 되어진 분수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는 없었다.
화려한 집 안의 장식들은 거저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본 베르사이유 궁전의 내부를 연상하는 것으로 달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설명에 그 곳과 견주기 위해서 지어 졌다니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빨리 훑고 나온 쉔브룬 궁전, 겉으로만 보아도 엄청 화려한 궁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었을까?
우리, 아니 나와는 격이 다른 사람들이었겠지? ㅋㅋㅋ
버스를 타고 조금 가더니 내리란다. 공원으로 들어 간다
바로 요한스트라우스의 시민 공원이다.
'신문 연재-토론토지역 > 동 유럽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엔나 3 슈테판 성당 (0) | 2010.08.17 |
---|---|
비엔나 2 요한스트라우스 시민공원 (0) | 2010.08.17 |
프라하 5 발렌슈타인 궁전 (0) | 2010.07.17 |
프라하 1 동 유럽 여행을 시작하면서 (0) | 2010.07.17 |
프라하 8 카를 4세 다리 (0) | 2010.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