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4 발렌슈타인 궁전(Wallenstein Palace ; Valdstejnsky palac)
거리의 악사의 연주를 들으면서, 또 길가에 지어진 집들의 창문으로 난 전시품들도 보면서 긴 계단을내려 와 조금 걸으나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난다.
정원의 정면에는 커다란 야외무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그 천정에는 아름다운 프레스코 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벽에는 영어로 “Senate”라는 베너가 걸려 있는게 아닌가!
아름답게 가꾸어진 정원에 기암괴석으로 장식한 벽, 곳곳에 세워진 동상들을 보며 사진 찍기에 바뻐 가이드의 설며을 듣지를 못해 이곳 이름이 무언지 몰라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한참을 애를 먹었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하여 알게 된 것이 바로 발렌슈타인 궁전이란다.
17세기 황실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알브레히트 벤젤 에우세비우스 폰 발렌슈타인(Albrecht Wenzel Eusebius von Wallenstein, 1583~1634)이 황제에 대한 반감으로 프라하성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위해 지은 궁전이란다.
17세기 초반 종교분쟁으로 보헤미아인들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자 그 즈음 부유한 아내의 죽음으로 재산가가 된 발렌슈타인은 용병을 결성하고 기병대를 모집하여 황제 페르디난트 2세를 지원하였다. 그 대가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손에 넣고 기세가 등등해진 발렌슈타인은 결국 왕위까지 넘보다가 1634년 왕의 용병들에게 살해되었다.
2층 높이의 화려한 본관 홀 천장에는 발렌슈타인이 자신을 군신 마르스에 비유하여 그린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조형미가 돋보이는 방대한 바로크식 정원은 정방형의 연못, 새우리, 인공 종유석으로 꾸민 동굴, 나무들을 직각으로 가지치기하여 조성한 나무 벽 등으로 이루어졌다.
정원 둘레를 따라 서 있는 조각들은 30년 전쟁 때 스웨덴 군대에게 약탈당한 아드리엔 드 프리스(Adrien de Vries)의 원작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1945년까지 발렌슈타인 가문의 소유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체코 정부에 귀속되었고 오늘날엔 주로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쓰인다.
(인터넷 두산 세계대백과사전에서 빌려 온 지식이다.)
기암괴석으로, 마치 동굴 속의 종유석처럼 흐르는 돌로 거대한 벽면 전체를 장식한 그 옆의 새장 속에는 둬마리의 부엉이가 눈을 뜬 채로 졸고 있었다.
지혜를 상징한다는 부엉이가 낯에는 잘 못 본다니, 거저 가만히 있어야 겠지.
보지 못하는 눈을 뜬 채 나뭇가지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부엉이는 그 머리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굴리고 있을까?
작은 연못에는 물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모 많은 금 잉어들이 노닐고, 그 위를 아름다운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내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결국은 과한 욕심으로 제명을 다 하지 못한 주인의 이름으로 오늘에 까지 남아 있기는 하지만….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뒤로 미룬 채 또 다음 볼거리로 움직여야지.
걸어 가는 동안 모짜르트가 연주 하였다는 작은 교회앞을 지날 때 자기 보다도 더 큰 첼로를 메고 그리로 들어가기 위해 길을 건너는 젊은 여인들의 뒷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연주회로 시작해서 뮨헨의 옥토버훼스트로 막을 내리는 유럽의 여름. 역시 온 유럽이 음악의 도시인것 같으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체코가 공산주의 진영이었기에 서구에서는 쉽게 갈 수도 없었고, 또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겠기에 그 당시 교육받은 내게는 체코가 별로 대수롭지 않은 나라에 지나지 않았었다.
공업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기관총을 만들 수 있는 나라요 음악으로는 드볼작이나 스메타나와 같은 작곡자를 배출한 나라라는 정도의 인식 밖에는 없었으니까. (결국 나의 무식의 소치가 드러나는 셈이다.ㅎㅎㅎ)
70년대까지만 해도 녹음된 거의 모든 고전음악들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나 보스톤 오케스트라, 뉴욕 필 등이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베르린 오케스트라로,ㅡ 비엔나 오케스트라로 넘어가더니 요즈음에 와서는 라디오를 통해서 들리는 많은 고전음악들이 프라하 교향악단의 연주요, 부다페스트 교향악단의 연주로 바뀐 것을 보면 이네들의 음악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음악도 이념에서부터 자유로울 때 꽃을 피울 수가 있는 모양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 거리의 집들마다 창문을 치장한 장식들을 보며 한참을 걸어가니 커다란 광장이 니온다.
프라하의 시민광장으로 일명 얀 후스의 종교개혁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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