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순례기 6 소아시아 7교회 터 - 에베소.
셀시우스 도서관의 남은 자태
셀시우스 도서관의 아취를 장식한 조각들
승리의 신 니케 요즈음은 영어로 나이크
야외극장의 위용
오늘도 청명한 아침이다.
버스가 출발 하기 전 삼삼오오 모여서 아침 경건의 시간에 이어진 Generation of Adventure 에서 준비하여 준 바인더와 이쁜 손가방들 그리고 최세훈씨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자기는 절대 중이 아니라며 면도질 한 머리를 쑥스럽게 매만지는 최세훈 전도사, 아니 이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였지… 최선생이 참 귀엽단다.
다 큰 어른한데 귀엽다는 단어가 걸맞지는 않지만 아들보다도 나이가 어리니 거저 노인네들의 치기 어린 즐거움으로 이해해 주시겠지….ㅎㅎㅎ
한시간 정도 달려 온 버스가 선 곳은 누가의 묘가 있는 자리라고 한다.
누가복음을 써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행적을 말해 주고, 사도행전을 써서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를 말해준 의사이자 선교사였던 누가, 그 누가가 누워있는 곳이란 말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T.J. Wood가 다른 곳을 발굴하 던 중 우연히 발견한 누가의 무덤이다.
이 자리에 세워졌던 기념 건물은 다 부서진 채 몇개의 주춧돌만 남은 폐허였다.
인생 무상이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일까?
야산 기슭에 철조망에 둘러 싸여 있는 폐허, 무너진 돌덩어리들…..
그래도 그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오늘도 예수님의 행적을, 성령의 역사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하여 주고 있는데……
한글로 설명서가 세워져 있어서, 한국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온다는 것을 대언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는 못하였다.
“앞으로 볼 모든 곳이 다 이렇게 무너진 곳일텐데…. 다 이러려나….?”하는 아쉬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다음 장소인 에베소 유적지로 갔다.
가이드 케말이 사온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래, 여기서부터는 뭐 볼거리가 있나보다.
쎌시우스 도서관과 대형 야외극장이 있다고 했으니까….”하는 기대로 따라 들어간 고대 에베소 유적지.
발 닿는 곳마다 경이로움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보는 것마다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그 많고 웅장하고 정교한 유적들. 어찌 말로,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요.
이곳에도 예외없이 로마시대의 목욕탕과 공중변소, 자그마한 우상들을 숭배하던 신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공중변소에 들어가니 긴 대리석 판에 구멍을 잘도 뚤러 놓았다.
여럿이 밑을 까고 둘러 앉아 무슨 이야기들을 하였을까?
주식 값이 너무 떨어져서 걱정이라고…?
기름 값이 너무 올라 살기 힘들어 졌다고…?
아님 SunshineGirl을 보면서 어제 사온 계집종의 자태를 뽑내었을까?
바지를 입은 채로 바로 그 자리에 앉은 우리 일행들의 모습도 참 재미 있다.
시워~언 한 표정을 짓는 사람에서부터 힘쓰는 표정을 짓는 사람까지….
그래도 대리석 변기인데….ㅋㅋㅋㅋ
길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차양처럼 지붕이 가리워 진 곳에 또 별도의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 보니 이곳은 지금 발굴하고 있는 그 시대의 부촌인 모양이다.
그 당시에 지어진 고급 주택들. 빌라동네인 모양이다.
마치 요즈음의 강남 호화주택지역처럼…..
벽에, 바닥에 수놓은 모자이크 그림들, 냉수와 온수를 함께 나오게 한 상수도 시절물들의 잔해……,
그 당시에 얼마나 잘들 부유하게 살았던지 요즈음 사는 것에 하나도 손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나은것 같다.
“내가 그 때 태어 났어야 하는 것을….” 하는 푸념에 돌아온 답이 걸작이다.
“그때에 태어 났으면 노예가 되어서 무거운 돌이나 날랐겠지 뭐, 이런 집에서 호령하며 살 수 있었을라고….” 함께 웃었지.
엄청 종놈의 부인이 되고 싶은가보다. 누구는…..ㅋㅋㅋㅋ
또 옆의 한사람은 그래도 조금 나아서
“그 때 태어 났으면 그 가진 재간으로 집 짓는 것을 감독하며 시공이나 하였겠지…” 또 함께 웃었다
결국 누구도 내가 그때 태어나서 왕과같이 군림하리라고 알아 주는 사람이 없으니 “아! 속상하다.”. ㅎㅎㅎ
종으로 살던, 주인으로 살던 결국은 마음가짐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옛날에도 분명 이런 호화로운 집의 주인이면서도 손님처럼, 종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록 종의 몸으로 살더라도 내집처럼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내 집이란 내가 마음 편하게 거하는 바로 그곳이 아니겠는가!
쎌시우스 도서관은 멀리 서 보며 잠시 설명을 하더니 그냥 더 내려 간다.
가이드 케말의 말로는 이곳이 사도바울이 전도하던 두란노 서원 자라라는데….
어째 내가 읽은 내용하고는 조금 다른것 같다.
이 또한 증명될 수 없는 하나의 가설이니 서로가 아는 대로 알고 말할 수 밖에…..
이따가 다시 오려나…. 하는 생각에 그냥 따라 내려간 곳이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형 야외극장이다.
그 옛날 사도 바울이 아데미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끌려와서 송사를 당하던 그 극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둘러보고 있는 중에 어느 그룹 가이드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노래를 하며 그 음향시설이 잘 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내 귀에도 잘 들리도록 음향시설이 놀랍게도 좋왔다.
그 노래가 끝나고, 우리라고 가만 있을 손가.
둘러 서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찬송가를 부르기 시작 하였다.
터키 땅에서, 그것도 유서가 깊고 사연이 많은 에베소 야외극장에서….
얼마나 잘 들리는가를 보기위해 캬메라를 멘채 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반 정도 올라 왔을 때에는 벌써 후렴으로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돌아서서 듣는 그 하모니!.
전신에 흐르는 전율은 도저히 함께 부를 수가 없도록 눈물을 만들어내었다.
그래, 나는 울보니까.
울기 바뻐서 사진도 제대로 몇장 찍지 못한 채 그 감동을 느끼며 한참을 서 있었다. 주위에 있던 서양 관람자들도 함께 흐밍으로 따라 불러 준 “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그리고 아낌없이 보내주는 큰 박수에 야외극장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떠나갈것 같았다.(아직 안 떠나 갔으니까 다음기회에 꼭 한번들 가 보시라.)
그만큼 소리 전달이 잘 되도록 지어진 야외극장이었다.
그러니 그 옛날, 그 조그마한 사도 바울을 무대에 세워 놓고 송사를 하며 그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기를 두시간 동안이나 하였을 그 장면을 상상하여 보라.
행 19:34-35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그 담대하고 논리 정연한 바울도 결국은 그 소요가 그치매 떠나고 말지 않았던가.
행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참으로 좋은, 그리고 기억할만한 경험이었다.
조금 더 내려 오니 바닥에 깔린 자그마한 돌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돌에다 물을 부으니 선명하게 나타나는 발자국과 또 여자의 모습, 그리고 동전의 모습.
케말의 이야기가 세계 최초의 Sign 판이란다.
광고하는 내용은?
“당신을 사랑해 주기 위하여 도서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읍니다.” 라나…..
유곽의 광고였다.
지라시(일본 말의 잔재다. 우리 말로는 광고 전단이 맞겠지? 그러나 여기서는 지라시라고 하는 게 뉴앙스가 좀 나을것 같다.ㅎㅎ)로 뿌린게 아니라 대리석 돌 판에 새겨진 광고, 그래서 2000년이 넘도록 생생히 그 내용을 전해주는 광고이니 그 본전은 뽑고도 남았겠지?
재미 있는 것은 유곽이 바로 도서관 앞에 있다는 점이다.
그 때에도 남편들은 부인네들에게 “좀 나갔다가 올께!” 라며 큰소리 칠 수 있는게 아니라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을 해야만 하였나보지?
또 도서관에 간다면 모두 아무소리를 안하고 말이다.
마치 우리 자녀들이 놀러 나가는 줄 알면서도 도서관에 간다면 아뭇소리 못히는 요즈음의 부모들처럼 ….ㅋㅋㅋㅋ
좀 똑똑한 부인네들은 아마도 함께 따라 도서관으로 왔었을지도 모르지.
그리곤 옆에 앉아 요리책을 보던지, 소녀경을 읽던지…. 그도 아님 성경을 읽던지….
이런 부인의 남정네는 구지 도서관에 간다는 핑계를 댈 필요가 없을런지도 모르겠다. 살아 보지 못해서 모르기는 하겠지만…….
한가지 재미 있는 것은 그 발의 크기로 성년과 미성년을 구분하였다는 거다.
발 크기가 그것보다 크면 들어 올 수가 있고, 그것보다 작으면 집에가서 밥 좀 더 먹으라고 말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착상인가.
내 발은 분명 그것보다 크기에 들어 갈 수가 있는데 지금은 허물어진 입구를 �을 수가 없으니 이 또한 낭패가 아닌가….!
광고 판의 아낙은 아직도 이쁜 아낙인채로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산으로 가려져 있지만 그 옛날에는 항구에까지 이어졌던 대로를 바라보며 조금 외 떨어진 마라아의 교회로 갔다.
바로 에베소 종교회의가 열렸던 그 자리로……
여기서부터 마리아가 신성시 되어 아직까지도 천주교회에서는 예수님과 같이, 아니 어떤 때에는 예수님 보다도 더 숭상하는 신으로의 기초가 결정된 곳이건만 지금은 무너지다 남은 벽하나와 몇개의 기둥이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개의 중요한 종교회의가 있다.
제1차는325년 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 터키의 이스탄불) 근교의 고대 그리스의 작은 식민도시 니케아(Nicaea)에서 열린 최초의 전세계적 종교회의로서 그 당시의 교회 내의 분열과 분쟁을 끝내고자 소집했다.
이 종교회의에서는 예수님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나신 하나님, 곧 하나님과 동일한 속성을 지닌 참하나님”이라는 니케아 신조를 제정했다.
이밖에도 부활절의 시기, 이단자에 대한 세례, 서품(敍品)의 장애, 속죄 및 사제제도 등을 제정, 결의했다.
제2차는A.D. 381년 데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소집된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로서 삼위일체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라에서 소집된 제3차 종교회의는431년 6월 7일 오순절에 에베소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신)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한 회의로서 말썽도 많았고, 뒷말도 많았던 회의였다.
(간략한 내용은 이 글의 마지막으로 옮겨 놓는게 좋겠다.
흥미 없는 사람에게는 사족일 테니까….)
기독교의 핵심이 이렇게 회의를 소집했던 사람에 의해서, 또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성향에 의해서 결정이 되다보니 뒷말이 없을 수가 없었겠지.
마치 요즈음에 일어나고 있는 동성연애자들을 인정하며 동성끼리의 결혼도 인정하자는 각 교단에서의 종교회의도 언제인가는 먼 후일에 “동성연애를 합법화하고, 동성끼리의 결혼을 인정한 어디어디의 종교회의” 라고 명명되어지는 하나의 종교회의로 기록이 되어지겠지?
오로지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서 그 사랑이 마리아에게까지 확대 시키는 회의가 된 에베소의 이 종교회의는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통해서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를 쓴 후에도 몇백년이나 지나서 이루어 진 회의이다.
그러나 그 말씀이 아직까지도 살아 역사하며 우리의 마음을 때리는 것을 보면, 이런 것을 미리 내다 보며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며 책망을 하였던 것이 아닐까?
사랑이란 회의의 결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러러 나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그리고 그 우리의 마음이란 주위의 환경에 따라 너무나도 잘 변하는 것인데….
변할 수도 없고, 바뀔 수도 없는 믿음의 본질이 이렇게 바뀌게 되는 것에는 아직까지도 다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대체할 만한 방법과 인식이 우리 인간에게는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직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그 옛날부터 우리가 만들어 온 하나의 신, 즉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중의 하나로 만들어,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믿을 수 있는 신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한가지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일 것이다,
그 길을 잘 모르는 나는 누군가가 미리 닦아 놓은 그 길을 걸어야 할 테인데,
그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 길이 어디로 인도하는지를 모르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한번 들어 선 그 길은 오로지 한길, one Way, 결코 되 돌아 올 수가 없는 인생길이니 말이다.
아쉬웁게도 셀시우스 도서관으로 다시 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좀 가까이에서 찍어야 될 석상들이 몇개 있었는데…..
아쉬웁지만 함께 움직여야 하니 함께 움직여야지.
유적지를 나와 버스로 이동한 곳은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성 요한교회터였다.
이 역시 지금은 다 부서진 채로 몇개 안남은 벽과 기둥들이 그 당시의 위용을 말해 줄 뿐 폐허, 그 자체였다.
사도요한의 무덤임을 가르키는 하얀 대리석 비석만이 땅에 누워 따가운 한낯의 햇빛을 반사해주고 있을 뿐 관광객도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우리 일행 중의 한명이 꺽어다 올려 놓은 새빠알간 야생 양귀비 한 송이가 힌 대리석 묘비위에서 더욱 새 빠알같게 우리의 눈과 마음을 자극하는 것 외에는…..
허기사 그 웅대한 에베소에 모두 정신이 팔려 있겠지.
우리야 순례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니까 이자리에 와 보게 되었지만….
교회 마당에서 저 아래로 보이는 곳이 삐쭉 솟은 기둥이 하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세계 7대불가사의 중에 하나였던 아데미 신전터란다.
풍요의 여신이라는 아데미.
“에베소의 아데미”라고 불리우던 이곳의 신을 모시기 위하여 얼마나 크고 화려하게 지었으면 그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가 되었을까?
이 신전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큰 것으로, 거대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웠단다.
그리스인의 구전에 의하면, “지금까지 태양이 운행하는 중에 아데미 신전보다 더 훌륭한 것을 보지 못했노라”고 하는 격찬의 말이 있단다.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으로 유명하다.
아데미 여신의 머리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성이 있고, 몸에는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을 상징하는 사자, 호랑이, 사슴 등의 다양한 짐승들의 부조로 새겨져 있다.
매년 5월 아데미 여신의 축제날이 되면 유방과 같은 수의 24명의 흰 옷을 입은 여자 사제들이 앞에 서고, 뒤에는 자신의 고환을 아데미 여신에게 바친 남자 사제들이 여신의 호위병처럼 뒤 따랐다고 한다.
그 아데미 여신상이 지금은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기에 내가 요번에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는 못하였지만 나에게는 아무래도 유방이 24개라는 것이 좀 석연하지가 못하다.
물론 그네들이 만든 신이니까 무슨 일인들 불가능하기야 했겠는가마는 나는 아무래도 그것이 24개의 유방이라기보다는 그 축제 때 제물로 바쳐진 24마리의 소에서 떼어낸 고환을 목에 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건 나만의 추측이 아니라 여러 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의 추측이기도 하다.
실물을 못 보았기에 좀 더 선명하게 찍혀진 사진들을 유심히 보았지만 그 24개나 되는 유방에 젖꼭지가 하나도 없다.
젖꼭지가 없는 젖이 무엇에 소용이 될 수가 있을까?
아무데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풍요의 여신이라고 일컷는 아데미이고 보면 그 풍요를 위하여서는 생산을 하여야 할 테인데, 땅의 신이 생산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씨앗이 아닌가? 소의 고환은 바로 씨앗의 주머니이고……
그래서 나는 이것이 아데미의 유방이 아니고 제물에 사용되었던 소의 고환을 목에 걸고 거리를 활보하며 환성을 자아내게 하였던 것이라는 설명에 더 동감을 하는 것이다.
허기사 이런 설명보다는 거저 유방이 24개라고 하는 편이 좀 더 말하기 쉽기야 하겠지만….
이런 풍요의 여신도 지금은 박물관에 진열된채 사진으로 사람들의 눈요기를 시켜주고, 그 화려하였던 신전도 다 무너진 채 겨우 기둥 하나가 남아 그 꼭대기에 새 둥지를 인채 하늘을 향해 서 있는게 고작이니, 눈에 보이는 것들의 말로는 다 정한 이치인것 같다.
이 신전에서 몇개의 기둥을 가져다가 소피아성전을 지을 때 사용하였다니 며칠 후 그 곳에 가면 지금은 멀리서 망원경으로보는 기둥의 실체를 볼수가 있겠지….
더 볼것도 많고, 또 느껴야 할 감흥도 많은 도시 에베소이지만 다음 정착지를 위해서 또 떠나야 할 시간이다.
이런 대 도시, 에베소에있던 교회에게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신 말씀은 바로 예베소를 떠나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리라.
2000년 전에 쓰여져 이제야 배달 된 편지를 읽는 기분으로
에베소를 떠나 서모나로 가는 길목에 식당으로 사용하는기차박물관에서의 점심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계 2:1 - 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사족:
3차 종교회의의 전말
네스토리우스가 430년 8월 11일 로마 종교회의에서 정죄를 받았게 되었다.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는430년 11월 19일 공동 황제 발렌티니안 3세와 로마감독 켈레스틴과 더불어 범종교회의를 소집한다는 공문을 발표하면서 네스토리우스에게 이 종교회의에 참석하라는 소환을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로마 사절단과 안디옥의 존이 이끄는 동방교회 감독들이 참석하기 전인 6월 7일에, 알렉산드리아 감독 시릴은 회의를 시작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3차례나 참석할 것을 종용받았으나 응하지 않은 상태에서
197명의 감독들은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점검하고 판결을 내렸다.
며칠이 지난431년 6월월 22일 안디옥의 존과 동방교회 감독들이 도착하여, 시릴이 개최한 종교회의를 인정하지 않고 따로 종교회의를 개최하였다.
로마 사절단도 도착하였지만 그들은 시릴과 뜻을 같이하여 네스토리우스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렸다.
범 종교회의는 급기야 7월 17일에 있었던 5차 회기에서 다른 종교회의를 개최한 존과 그의 감독들을 출교시키기에 이르렀다. .
그리고 시릴이 이끈 종교회의가 범종교회의로 인준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자리에서 마리아를 신성시하기로 한 에베소 종교회의인 것이다.
아마도 마리아가 요한과 더불어 이곳 에베소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그런 회의가 이루어 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도 몇차례의 큰 획을 긋는 종교회의가 있었다.
예를 들면
제4차 종교회의(칼케돈) : 예수의 이중성(신과 인간의 성격이 불가분적으로 합치)에 대한 신조 도입
제5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
▷ 인류의 타락 누구의 죄인가?
▷ 천국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루시퍼)이 일으킨 쿠데타
▷ 자신(하나님)의 친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하고 그제서야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인류와 화해(?)
▷ 삼위일체 - 애당초부터 하나인 아버지와 아들
에베소(Epenetus) 뜻: 인내
에베소 도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역사에서 에베소의 이름이 최초로 언 급된 것은 기원전 13세기 경의 힛타이트(Hittite, 기독교 성경상의 헷족속) 비문이다. 그 비문에 아파사스(Apasas)라고 불려졌던 도시가 바로 이 지역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스의 역사가요, 철학자인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에베소 도시는 아마존족이 기원전 1,400년 경에 처음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에베소를 문화적, 상업적으로 발전시킨 민족은 아니었다. 당시의 최강국이 었던 로마가 아나톨리아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버가모의 마지막 왕 앗탈로스 3세( Attalos)는 자신의 왕국을 로마제국에 자진 헌납 함으로서, 에베소는 그리스 시대에서 로마시대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한때, 로마제국의 과중한 세금과 압제에 항거하는 폰투스왕 트리다테스(Mithridates)의 반란으로 에베소 도시는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지만, 에베소는 로마시대에 가장 큰 전성기를 맞이했다.
로마인들은 로마제국의 아시아 수도를 페르가뭄(버가모)에서 에베소로 옮기고 이 도시를 아름답게 꾸며 나갔다.
기원전 33년, 로마황제 안토니우스는 그의 정적 옥타비우스(후에 Augustus로 개명)와 대치하던 중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곳 에베소에 머물기도 했다. 에베소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시대에 더욱 번성하여, 로마의 5대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기원후 1세기에 에베소는 기독교인 들에게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37-42년 사이에 기독교 전도에 주력하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 당하게 되자 사도 바울은 그의 2차와 3차 전도 여행때 에베소를 방문하여 선교를 벌리고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또한 사도 요한도 그리스도로 부터 성모 마리아를 돌볼 임무를 부여 받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와서 살면서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1) 바울이 2차 선교여행시에 이 성에서 전도하였다(행18:16).
(2) 3차 여행시에 이곳에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 성신이 강림하여 방언과 예언을 하여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본 요술객들이 가지고 있던 술서 은 5만어치를 소각하고 신종하였다 (행19:1-20).
(3) 바울이 마게도냐 선교에서 귀로시에 빌레도에 이르러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너희는 깨여 내가 3년이나 쉬지않고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하였다(행20:17-31).
(4) 사도 요한이 이성에 오랫동안 감독으로 있었으며 요한복음과 세 서신을 발송하고 밧모섬에 서 계시를 받아 이곳 교회에 보냈다(엡1:1).
(5)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두기고 등이 이곳 교회의 교역자였다 (댐전1:3,행18:18,19,24,20:4,21:29 딤후4:12).
(6) 세례요한의 제자 오네시모 그리고 알렉산더 에베드리오스게와의 아들 후메내오 부겔로 허머네게 등의 고향이다(행19:103,14,24,딤후1:15-18, 4:14,딤전1:20).
64년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 밖에서 순교하자, 요한은 그를 대신해서 에베소의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다. 요한은 노구를 이끌고, 버가모, 서머나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지중해 연안의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하였고, 1여년 후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이 피살 당하자 요한도 유배에서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와 '요한복음'을 썼다. 요한은 자신의 뜻에 따라 에베소에 묻혔으며,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사도 요한의 교회'가 세워졌다.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에베소가 페허가 되어 버린 것은 대지진 때문이다. 게다가 6세기 중엽 진흙으로 덮여진 항만에서 모기들이 생겨 말라리아 병이 확산 됨에 따라 사람들은 아름다운 에베소를 떠나야만 했다.
12세기에 이르러 이곳에 침략해온 셀축 터키인들의 공격으로 남아있던 에베소의 기독교인들도 정든 도시를 버리고 타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곳에 침략해 온 터키인들은 회교도들이었기 때문이다.
에베소는 당시 상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고대 세계의 교통망은 오늘날처럼 용이하지 않아 주로 강 유역을 따라 상업과 무역이 성행하였다.
특별히 이곳은 이스테르 강 어귀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이 지역에 성행하는 무역을 관장할 뿐 아니라 시리아, 인도, 아라비아, 이집트 등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온 상인들이 식료품, 향료, 고급 옷감에서부터 금, 은, 보석, 도자기 및 노예 판매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을 거래하는 동양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이 시장의 바닥은 대리석으로 포장되고 그 주위에는 기둥들로 둘러져 있었으며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연못도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시장의 개점과 폐점을 알리기 위해 물시계와 해시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몰려 온 상인들, 은행업자, 창고업자, 운수업자들은 물론 그들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법률가, 대서업자, 예술가, 철학자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로 몰려왔다.
에베소에는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도시였다.
시민들을 위한 위락 시설로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극장, 경기장과 체육관, 음악당, 거대한 목욕탕 등이 있었다. 배움을 위해서는 도서관과 학교가 있었고, 여행자들을 위해서는 여관이나 유곽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여성들이 에베소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였다.
로마의 집정관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한 후 수시로 에베소에 들러 보석과 화장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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