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순례기 7 소아시아 7교회 터 – 2 서머나 폴리갑 기념교회
2000년 전에 쓰여져 이제야 배달 된 편지를 읽는 기분으로
에베소를 떠나 서모나로 가는 길목에 식당으로 사용하는기차박물관에서의 점심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아름답게 가꾸어진 정원에는 만발한 장미꽃이 피어 있고, 따가운 태양을 막아 주는 차양 아래 준비된 식탁은 깨끗하기가 그지 없는데 나오는 음식 또한 매우 정갈하다.
결국 에베소에서의 놀램과 기차 박물관에서의 점심으로, 어제 가졌던 피로도 다 풀어졌고, 어제 저녁에 가졌던 불만(?)도 다 날라가 버리게 된 것이다.
어쩐지 터키 여행에 좋은 예감을 주기 시작하는 것 같다.
환상적인 점심 후 만족감에 지나는 풍광을 보고 있는데 조금 가면 가죽 공장이 있는데 한번 들려 보지 않겠느냐는 케말의 제의가 있자 모두 이구동성, 아니 다구동성이었다.
“Yes!”
우리 눈에는 서양 사람으로 보이는 케말은 한국말로 물어 보는 데 우린 왜 영어로 대답을 하는지,,,,
지금 생각 해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습관이리라. 그새 우리가 이렇게 변했나…?
길 가에 자리 잡은 공장은 꽤나 규모가 컸다.
들어서자마자 터키식 사과티를 건네 주며 들어가 앉으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팻션 쇼를 하는 무대가 있고,우리보다 먼저 들어 온 일본인들이 몇명 있었다.
우린 그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음악이 나오면서 네명의 모델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새로운 디자인의 옷들을 입고 나와 자태를 뽑내더니 우리 일행 중에 한명을 잡아 끈다.
마침 K권사님이 그네들의 눈에 들었나보다.
싫다고 앙탈을 부린다고 그 잡은 손을 놓아 줄 그네들인가?
또 주위에서는 자기가 아니니까 “한번 해 보세요!” 라며 격려를 하고….
손 잡혀 뒤로 들어 가시더니 잠 시 후에 멋있는 가죽 쟈켓을 입고 멋있게 생긴 서양 남자의 팔장을 끼고 걸어나오신다.
허허… 옷이 날개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로세…… 얼마나 멋이 있는지….
쇼가 끝나니, 자 이제부터는 장사가 시작인 모양이다.
주인이 나오더니
자기를 소개하고 제품을 소개한다.,
물을 부어보며 방수가 되는 것을 시범보이더니 라이터로 불을 붙여보며 비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시키기도 하고, 꾸겨 두드리기도 하면서 제품의 좋은점을 설명하나 나에게는 그보다도 과연 얼마나 하는지…. 가 조금 더 궁금이다.
주인 왈, 모든 가격은 유로로 붙어 있단다.
그 시점에서의 유로는 미국달러보다 약 1.5배가량 높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미화의 단위로 생각 하란다.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걸짝이다.
“우리가 남입니까? 오! 대~~~~~한 민국!” 하며 박수를 치더니 붙어 있는 가격에서 40%를 더 깍아 주겠단다.
그럼 물경 얼마를 깍아주는 거냐?
$1.50 짜리를 $1.00에, 거기서 또 40%를 깍아주면 결국 $1.50짜리를 $0.60에 사는 셈이니까 가격표에서 60%를 감해 주는 셈이다. 와!!!!!
이 모든 설명을 한국말로 한다. 멀쩡하게 생긴 서양사람이 말이다,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가격이야 제가 붙이고 싶은 대로 붙여 놓았겠지만
우리 모두는 결국 군중심리에 들떠 있는, 조삼모사에 현혹된 원숭이에서 뭐 별로 나을게 있겠는가….ㅎㅎㅎ
모두 웃으며 매장으로 들어서서 아까 무대에서 보았던 옷들과 또 걸려 있는 옷들을 보기 시작하는 데 눈들이 반짝반짝이다.
왜냐하면 이 곳에 오기 전에 벌써 토론토에서 터키가 가죽이 좋고 싸다는 정보들을 모두들 가지고 왔기 때문에 말이다.
나의 Better half까지도 노래를 했으니까…..
40%는 조금 못 만족해 조금씩 더 흥정들을 한다. 그리고는 백 하나씩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버스로 가고…..
우리도 하나 고르기는 해야 하는 데 너무나 많다 보니 무얼 골라야 하는 지…
그러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랐는데 팔이 조금 길다고 했더니 문제 없단다. 5분이면 된다며 붙잡는데야 별 재간이 있나….
조금 더 깍자며 승갱이를 하니 주인과 상의 하겠다며 잠시 갔다 오더니 우리에게만 그렇게 해 주겠단다. 이 또한 장사 속인 것을 조금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특별히 싸게 샀나보다 하며 싼 김에 하나 사고 보니 정말로 5분이 안되어 소매를 고쳐 내 온다.
놀라운 일이다.
군중심리도 있고, 또 시간은 짧고, 또 들은 이야기는 가면 갈 수록 조금씩 비싸 진다기에 모두들 만족한 얼굴로 히히낙낙이다.
더운 버스 안에서 가죽쟈켓을 입어보면서 말이다.
토론토의 온누리의 가을과 겨울은 온통 터키 산 가죽으로 뒤덥이는 게 아닐까?ㅋㅋㅋ
이러는 동안에도 버스는 계속 달려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 서머나에 도착 하였다.
에베소에서 86km떨어진, 약 한시간 반 거리의 해안에 자리잡은 도시는 대도시 답게 약간의 교통 체증은 있었지만 깨끗하였다.
서머나에는 서머나 교회 터가 없는가보다.
그래서 들린 곳이 폴리갑 기념교회다. 교회 안을 둘러 보며 폴리갑에 대한 설명을 듣고 머리 숙여 폴리갑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우리들의 마음에 새기기 위하여 묵상한 후 그 마음을 다지며 함께 기도를 하였다.
폴리갑,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주후 160년경 교회가 핍박을 받았을 때에 10여세의 소년 챠반익을 맹수의 굴에 던졌으나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것은 수령의 유혹이라하여 서머나의 초대 감독인 폴리갑을 잡아다가 죽이려고 체포하였을 때 그의 나이 86세였다.
그의 덕망을 보고 “예수만 부인하면 살려주겠다” 하였으나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 왔고, 그분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한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 하고 거절 하였다.
성난 군중들은 그를 사자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으나, 사자 들이 폴리갑에게 달려들지 않자 총독은 경기가 끝났다고 선언 했다.
이에 성이난 군중들은 물러가지 않고 그를 장작더미에 올리라고 외쳐댔다.
바로 이 상황을 그린 그림이 천정에 그려저 있었다. 그린 화가의 손을 묶어 놓은 채…..
천정 빼꼭히 그련진 성화들, 신 고린도에서 본 천정화와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조금 더 자세히 보았으면…. 하였지만 문닫을 시간이 되어 빨리 나올 수 밖에……
나오는 길에 피뜩 본 벽에 걸려 있는 튜린의 성의 복제품 또한 특이 하였으나 자세히 볼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짐을 푼 호텔 또한 4성 호텔로 나무랄 데가 없는 온천이 있는 호텔이었다.
모두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온천에 푸~욱 몸을 담구었지.
오늘 하루도 꽤나 걸어 다녔는데 그 모든 피로가 다 싸악 가시는 것 같다.
생각보다 대단한 에베소의 유적지를 보고 놀랬지, 멋잇는 점심을 먹은 후엔 또 좋와하는 가죽 옷도 하나씩 샀지…….
뜨뜻한 물에 몸을 담군채 히히낙낙, 오가는 대화도 즐겁다.
그런데 내 코가 조금씩 맹맹해 오는게 아닌가?
엊그제 너무나도 오래 찬 바닷바람을 쐬워서 그런 모양이다.
20분 이상은 들어가 있지 말라는 온천이기에 시간을 채운 후에 나와 밖에 있는 수영장에 들어가니 여기, 토론토에서 다니던 시영 수영장하고는 비교가 안될만큼 물이 맑다.
그러나 너무 오래 있으면 안되지. 코가 맹맹해 오는데….
저녁 후 감기약을 먹고는 금방 침대에 누워 하루를 정리 하였다.
비록 서머나 교회 터를 보지는 못하였어도 그 교회로 주신 칭찬의 말씀을 생각하며….
생시에 못 받는 칭찬, 꿈 속에서라도 받아 볼 수 있을까…? 하는 꿈을 꾸며……
꿈 깨!?@~~~~~
계 2:8 - 10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사족:
서머나 (SYURNA) 뜻: 몰약성
서머나'라는 이름은 "몰약"이라는 향료에서 유래되었다.
8~ 9 피트의 높이로 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라는 몰약이라는 가시 돋친 나무는 쓴맛을 지니고 있으나 이에서 나오는 몰약의 향기는 대단히 훌륭하여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께 드리기 위해 준비해 올만큼 값지고 훌륭한 향료인 것이다.
특히 두드리고 으깰수록, 짓눌리고 부서질수록 더욱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다고 한다. 이런 특성을 생각할 때 고난과 핍박이 아무리 심할지라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따라 순교의 향기로 역사를 장식한 교회를 서머나 교회로 명명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인것 같다. 서머나 교회는 서기 100 년부터 콘스탄틴 황제가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공인한 밀란의 칙령을 반포한 313 년까지 혹독한 핍박을 치른 시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그 이름이 이즈밀로 바뀌인 서머나.
주전 3,000년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주전 800년 경 도리아인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로부터 쫓겨난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터키 중서부에 걸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유명한 장님 서사시인 호머(Homer)가 태어나 활약한 곳도 바로 이곳 서머나였다. 주전 3-2세기 희랍 시대에 크게 번성하였고 항구 상업 도시로서 비잔틴 제국, 셀주크-오토만 제국 그리고 터키 등의 역사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그 지리적인 중요성때문에 계속 번성하였다.
비잔틴 제국은 도시 곳곳에 기독교적 유적을 남겨 놓았으나 아랍 및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기독교 유적은 거의 사라졌으며 수차례의 자연 재난으로 거의 모든 고대 유적지가 대파되었다.
서머나는 에베소 다음가는 부유하고 번영한 항구 도시로서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살았는데 로마정부와 결탁하여 기독교인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 그러나 고난과 박해 중에도 기독교인들은 신앙 고수에 더욱 충성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황제 예배를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로 인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았기에 계시록에 소개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 다른 교회는 모두 책망을 받았으나 빌라델피아 교회와 이 교회는 칭찬을 받았으며 죽도록 총성하라는 권면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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