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찿아서
(역사의 뒤안 길에서)
세상에는 움직이는 것들이 참 많다.
아니, 참 많은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이, 다~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
쉬임없이 폭팔하면서 열을 내 뿜는 태양에서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맥박을 만들어 주는 나의 자그마한 심장, 그리고 그 피를 날라 주는 모세혈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움직이는 것들뿐이다.
집 앞에 있는 돌덩어리는 생명이 없으니 안 움직일까?
아니다.
그 돌덩어리 조차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바람에, 습기에, 온도에 그리고 그 위를 기어 다니는 자그마한 벌레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 만물이기에 그 모든 만물에는 지나온 어제가 있고, 지나고 있는 오늘이 있으며, 앞으로 지낼 내일이 있는 것이리라.
어제가 된 어제의 오늘은 우리가 알 수 있지만 오늘이 될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를 알 수 없는 게 우리 인간의 한계이기에 우리의 욕심은 어떻게 해서라도 내일이 어떤 모양으로 올지를 미리 알고 싶어하게 한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이 두려운 두려움이 하나요,
남보다 조금 더 앞서려는 욕심이 둘째요,
미리 대책을 강구하여 조금은 더 편안한 오늘을 우리의 후세들에게 알려 주고 일깨워 주려는 욕망이 그 셋이 아닐까?
그 욕심과 욕망이 결국 우리의 어제를 드려다 보면서 다가오는 내일을 점칠 수 있는 지혜로 발전하였기에 우린 어제의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이렇듯 오늘이 지나 어제가 되고, 그 어제가 좀 더 멀어져 과거가 된 우리의 과거를 우리는 역사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내 온 어제는 우리가 다 기억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존이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고, 또 그 기억력이라는 게 그렇게 믿을만한 것이 못 되기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게 되고, 그 기록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역사, 한 사회의 역사, 한 나라의 역사, 한 인류의 역사가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역사라는 것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기록하였는가에 따라서 객관성이 결여된 주관적인 기록이 되어 후에 그 역사를 드려다 보는 많은 사람들을 혼돈으로 몰아 넣는 일들이 너무나 종종 있음을 우린 또 경험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란 항상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네들이 느낀 느낌을 바탕으로, 또 그네들이 저지른 일들을 정당화해가면서 기록이 되고, 그래서 또 어떤 경우에는 후에 새로이 힘을 얻은, 그 전에 힘이 없던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바뀌게 되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르른것 같다.
결국은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역사란 다 어떤 주관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들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제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록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변화되는 순간에 발생하는 창조와 파괴의 이원적인 일들 모두를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또 기록되어지지 않은 역사가 있다.
그 옛날의 생활상을 말해 주는 고적들, 유물들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어떤 물건들은 그 변화가 엄청 천천히 이루어 지면서 그 시대의 생활상들을 말해주기 때문에 말이다.
주로 부서진 돌덩어리, 말라 버린 미이라, 흙 속에 묻혀 있던 그 옛날의 살림살이들….
이런 것들이 그나름대로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해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즈음도 힘 있는 나라들의 박물관은 하나의 유물관이 되어 그 옛날의 유품들을 아끼면서 전시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런 유물들, 유적들을 보면서 그 당시를 회상하고, 그 부서진 조각에서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내일은 어떤 날들이 될까를 짐작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몫이기는 하지만…..
세계 삼대 문명의 발상지 중에 두 곳이 지중해를 낀 그 주위, 즉 이짚트의 나일강 삼각주지대와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이라고 배워 온 우리이기에 작년에는 중동지역으로 해서 모세와 예수님의 발자취를 둘러 보았고, 금년에는
초기 문명이 꽃을 피운 그리스와 천여년동안 찬란한 문화의 �을 피운 터키를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어떻게 땅끝까지 전하여 지기 시작하였는지를 눈으로 보고, 또 몸으로 느끼기 위해 또하나의 여행을 준비한 것이다.
눈에 안 보이는 성령의 흐름을 눈에 보이는 유적들에서 �아보려는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게 될지……. 궁금하다.
허나 이 여로는 우리 모두에게 신약 성경의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그 당시의 오늘을 회상하면서 오늘의 나에게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믿음의 훈련 여정이 리라.
이런 바램을 가지고 준비한 여정이요, 이런 소망속에 떠나는 여로에 함께한 우리 온누리의 식구들 23명, 모두가 인생 여정을 많이 지내온 역전의 용사들이다.
대부분이 지난 해에 이스라엘과 이짚트 여행에 함께 하였던 동지들이기도 하니 요번 여행 또한 순탄한 가운데 모두가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 내리라….
기다리는 마음 때문인지 그렇게도 안가던 시간도 결국은 흘러 드디어 떠나는 시간이 되었다.
5월 12일 오후 2시, 공항에 모인 모두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웃음꽃이 함빡이다.
창 밖에 활짝 개인 하늘아래 만개한 Crab Apple의 화사한 꽃바다 같이…..
정확히 오후 4시 50분 우리 일행 23명을 포함하여 승객 474명과 또 수많은 짐들을 실은 747-400 Jumbo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6028km 떨어진 France의 Paris로 우리를 날라주기 위하여….
그러면 그 곳에서 또 다른 날개가 우리를 신화의 나라로 데려다 준단다.
그려지는 공상에 흥분되는 마음들……
모두의 즐거움을 오늘이 있게 한 주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맡기며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대었다.
“주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2차 순례를 시작하며,
2008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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