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 07 모세의 여정이 멈춘 곳 느보산(Mt. Nebo)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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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1
안녕하세요.
천천히 전병선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모세의 여정이 멈춘 곳, 느보산입니다.
Note 2
해발 835m의 느보산은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가나안 땅을 조망하고 숨을 거두게 된 산입니다. (신 34:1)
Note 3
느보산의 정상에 올라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바라보았었다고 추정되는 지점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올라 이정표를 따라 모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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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때문에
나의 눈에는 몽환적으로만 보이는 지경이었지만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던(신 34:7) 모세의 눈에는
크고 웅장하게 지어진 여리고 성도, 풍요로운 헤브론 산지도
또렷이 보였을 터인데
막상 자신은 그리로 갈 수 없다고 하시니
얼마나 하나님이 야속하였을까요?
아니 원통하기까지 하였을 것입니다.
오래전 소돔과 고모라 성을 구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간청은
여러 번에 걸쳐 들어주시며 그 결정을 번복하시었던 하나님께서
40여 년의 힘든 광야생활을 하며 여기에까지 왔는데
왜 모세의 마지막 바램은 끝내 거절하시었을까요?
민수기 20장 12절에는 그 답이 분명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었으니까요.
Note 10
원인은 “우리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셔야만 하는 물”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6절의 나오는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하신 일은, 아직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 신 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였으니 광야에 나온 후 2년 남짓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때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무리바라고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고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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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가나안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낸 후 돌아와 보고하는 10사람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광야를38년이나 유리 방황하다가 민수기 20장에 보면 다시
신 광야에 이르러 가데스에 이르러 미리암이 죽어 장사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서도 백성들은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모세와 아론이 회막문에 엎드려 간구를 하는 일들이 쓰여진 민수기 2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하라”하시었지만 모세는 그 많은 이적과 기적을 38년간이나 체험하였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그 민족, 그 무리들의 아우성에 화가 나서 였던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38년전의 일이 떠올라서 였던지, 바위를 두 번 쳐 물은 내었지만 바위가 갈라졌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때의 성경 관주를 보면 “므리바”라는 말은 다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창세기 17장의 갈라진 바위를 “므리바의 바위”라고 하는 것은 바른 표현이 아니라 그 물을 얻기 위하여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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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의 시차를 두고, 두 번 다 물을 내라는 다툼이 있었던 광야를 한글 표현으로는 똑 같이 “신 광야”로 표기를 하였는데, 영어 성경에는 이 두 광야가 같은 광야가 아니라, 다른 광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처음 나온 호렙산 근처의 신 광야는 KJV에는 영어로 wilderness of Sin 으로 기록되어 있고,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신 광야는 desert of Zin 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 완전히 다른 광야인 것입니다.
desert of Zin 광야는 에돔 땅, 페트라 부근에 있는 광야였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페트라로 지나갈 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애돔 왕이 완강히 거절함으로 멀리 광야를 돌아 느보산으로 올라가 가나안을 조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교계에서는 시내산이 시나이반도 안에 있는 것으로 확신하며 성경에 자세히 기록된 출애굽의 여정을 그려가다 보니,
처음에 나오는 신 광야, 즉 wilderness of Sin을 시나이반도 안에 그려 놓게 되어 우리들을 많이 혼동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wilderness of Sin”에서 Sin은 "죄"라는 도덕적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에서 엘림과 시나이 산 사이에 있는 지역의 히브리어 옛 이름 이었던 “Tsin”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려진 수 많은 출애굽 여정을 나타내는 지도들이 있으나
결국은 서너가지로 집약이 되면서도, 그 지명과 위치가 서로 달라 앞으로 교계에서 대대적으로 정리 작업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작업은 수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1500년 이상을 믿어온 타성이 잇는가 하면 천주교와 동방정교회와 개신교, 그리고 모슬렘까지가 다 연관이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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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던 모세는 그 “물”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도 못 들어가는 안타까운 신세로 그 생을 마감하게 된 곳이 바로 느보산인 것입니다.
결국 물에서 생명을 얻은 모세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의
파란만장하였던 인생 여정을 성경에 기록하여 놓은 후
이제는 더 이상 물이 필요 없는,
그래서 다툼도 없을 하늘나라의 “가나안 복지”로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종의 신분으로 살아오며
그 습성이 DNA로 몸에 배였던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치루는 수많은 전쟁과,
그 후손들이 왕국을 이루며 살아온 그 역사를 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 세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으니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때문이 아니라
저의 흐려진 눈 때문이겠지만
저의 눈에는 몽환적으로만 보이는 저 가나안 땅이 보이는
느보산 정상에는 “모세 기념 성당”이 있습니다.
394년에 쓰여진 에제리아(Egeria) 수녀의 순례기에도 언급되었으며,
5세기에 가자의 주교였던 이베리안의 베드로(Peter the Iberian)의 기록에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4세기 초에 지어진 후 세월이 가면서 증. 개축되어 온 것 같습니다.
1967년,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6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느보산은 중요 군사 지역이 되기도 하였지만 전쟁이 끝난 후부터 요르단은 느보산을 순례자들과 방문객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작은 형제회 성지 관구”에서는 순례자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유적과 모세 기념성당의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보호하기 위하여
1963년에 임시 지붕을 씌웠습니다.
작은 형제회는 프란치스코회를 이르는 우리말로, 1209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의해 창설된 단체로 세계 도처에 관구를 두고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성지 관구는 세계 곳곳의 성지를 세우고 보호, 관리하고 있는 단체로 800년이 넘도록 봉사하고 있습니다.
느보산은 교황청에서 지정한 공식적인 5대 기독교 성지 순례지 중의 하나입니다.
2000년 성지 순례에 나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비가
언덕을 오르자 우리들을 마지하여 줍니다.
성지 관구는 2008년에 역사적인 유적들을 보호하고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1963년에 지어진 건물을 뜯어내고 기념 성전을 재 건립하기로 결정한 후 성전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모세의 전망대와 비잔틴 시대의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유물들은 기념관과 임시 천막 안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하였던 2007년은 이 공사가 시작되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그 옛날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러나 부서져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기둥들이 여기저기 전시되었고
최근에 와서야 발굴되기 시작하였다는 그 옛날 비잔틴 시절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바닥들이 여기 저기 그 흔적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역시 옛날 사람들의 믿음과 장인정신은 요즈음의 발달된 재료와 장비로도 따라갈 수가 없도록 훌륭하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는
아름다운 모자이크의 편린들이었습니다.
아직도 계속 발굴되는 옛 유적들을 복원하며 새로 건축되는 모세 기념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복원이 되려는지….
가늠할 길이 없으니 다시 와 보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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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4~6세기경에 이곳에 세워졌던 수도원의 정문을 막았던 돌문.
정원에는 놋뱀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민수기 20장에서는 물로 다투어
모세로 하여금 가나안 입성을 못하게 하던 무리들이
21장에 와서는 홍해길로 가지 못하고
에돔 땅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을 불평하자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일이 생겼었습니다.
이 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불 뱀을 만들에 장대위에 매달아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게 하였지요.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Giovanni Fantoni, A.D. 1755~A.D. 1807)가 제작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모세기념교회 정원에 세워진 구리 뱀과 연계되는 많은 설교들이 있으나
이는 저의 분야가 아니니 여러분들의 상상에 남겨두겠습니다.
구급차 로고와 의사 가운에도 뱀이 그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 뱀 이야기와는 완전이 다른 이야기이니 현혹되지는 마세요.
자 이제 성전 안으로 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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