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ie's Pilgrimage

cp 09 가나안 복지에서 흩어지는 12지파들

천천히 chunchunhi 2022. 6. 5. 10:28

cp 09 가나안 복지에서 흩어지는 12지파들

 

YouTube Link

https://youtu.be/BD8J8eu7Uc0

 

 

Note 1 2

안녕하세요, 천천히 전병선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는

복지에서 흩어지는 12지파들이 되겠습니다.

 

Note 3 - 9

여호수아의 지휘로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함락한 후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전진하는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점령하였습니다.

이 땅에는 이미 노아의 둘째 아들의 후손들인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헷족, 브리스족, 히위족, 여부스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 외에도 노아의 장자, 셈의 족보에서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딸들과

손녀 손자들을 통해 번성한 모압과 암몬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라의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 과 함께 광야로 쫓겨났지만

이들 또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세토록 번성하며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모든 지역에서 그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고

창세기 25장에는 족보까지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름을 받은

첫번째 사람은 “이스마엘”이었고, 야곱은 오히려 두번째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여러 부족들과 싸우며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에 이른 유대인들은 결국

에서의 본거지였던( 32:3) 사해 남쪽의 에돔 산악 지대에서부터 헬몬산 아래 레바논 골자기의 바알갓까지

모든 왕을 잡아 쳐죽이며 기나긴 가나안 정복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레위 지파가 제외된 것은 11지파에서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여호수아 13 14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아,

레위와 요셉이 빠진 10지파를 다시 12지파로 만들어 나누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전 지역의 모든 족속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멸절시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 땅을 찾아 정착하려는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야곱의 12 아들들의 후손들에게

강력히 대항할 만한 세력들 중의 대부분만이 제거되었을 뿐입니다.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사단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가나안 땅을 모두 분배 받은 것으로,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지만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의 무리로 모였던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한 아버지 아래 서로가 다른 어머니를 가진 형제들이 각각 기업을 물려 받은 것입니다.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는 스펜서의 말 처럼, 여기까지는 한 무리로 왔지만 이제부터는 각 기업이 받은 땅을 지켜야만 하기에 살아남기 위하여 모이다 보니 남.북 왕조로 분열이 되게 되었고,

죽음이 두려워 신을 만들다 보니,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눈에 멋지게 보이는 신을 만들게 되어 

두 차례의 포로 생활 후 결국에는 전 세계로 산산이 흩어지게 되었으니까요.

 

대표적인 영적 전쟁이 갈멜산에서 이루어 졌었고,

수많은 인간들의 전쟁이 므깃도에서 있었으며,

인류 최후의 전쟁 또한 므깃도에서 일어난다고 계시 되었으니까요.

다른 신을 두지 말라시며, 우상을 만들지도, 숭배하지도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분노가 아직까지도 계속이 되는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Note 10 - 21

신들의 싸움터 - 갈멜산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하여 도도하게 흐르는 이야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들이 만든 신으로 인하여 일어난

하나님의 진노와 그 징벌의 고통 속에서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인간들의 끊임없는 소망과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일이 갈멜 산에서 일어난 엘리야와

바알의 사제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이 연합을 이룬

거대한 사제군단과의 싸움이 아닐까요?

이런 써움이 있었던 갈멜 산으로 오르는,

완만히 경사진 산 비탈에는 올리브 나무가 무성하고,

목초지에서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참으로 목가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저 소들이 제물로 바쳐졌던 소들의 후예일까?"

서로 농을 주고 받으며 비탈길을 올라가니 수도원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주일이라 문을 안 연답니다.

어제인 토요일, 안식일이라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오늘, 일요일은 주일이라고 수도원 문을 안 열고….

좀 섞갈리는 이스라엘 이었습니다.

 

수도원 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위에,

평평한 단 같은 것이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그 옛날, 엘리야가 혼자서 외롭게 싸우던 그 정상의 자리였답니다. 

열왕기 상 18장에 기록되어진 1 850의 싸움!

바알의 사제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이 연합을 이룬

거대한 사제 군단이니, 수학적인 숫자로 볼 때에는 도무지 승산이 없는 싸움입니다.

아합의 부인,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의 사제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 후이니 엘리야는 숨어 다녔었나 봅니다.

그 숨어 다니던 엘리야를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머리카락 보일라 꽁꽁 숨어라한들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찾으시는 데

별 재간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인간적인 두려움과 조심성으로, 친분이 있는 오바댜를 통해서

아합을 만나는 일을 주선하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알의 사제들에게 도전장을 낸 것입니다.

“누가 진짜 신인가?”를 가리자고….

 

가리는 방법은 각을 뜬 소를 제물로 바쳐 태우는 방법에 서로가 합의를 하였습니다.

숫자가 많은 바알 사제들에게 먼저 그들의 신을 불러 보라고 하였지요..

한나절이 지나도록 외쳐 불러 보고, 자해를 하여 보기도 하였으나

그 단위에 각떠 올려진 소는 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서로 믿을 수 있는 신을 가리는 싸움을 하기로 한 이상

이제 그 수적 열세에 두려워해야 할 엘리야가 아니지요.

그래서 그네들을 비웃고 조롱하기도 하였습니다.(왕상 18:27)

저녁 소제 때가 될 때까지 응답이 없자, 이젠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불로 태워야 할 각진 송아지에 물을 부으라고 명합니다.

태워야 할 각진 송아지에 물을 붓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물하고 불은 서로 상극인데…..

얼마나 많이 부었던지 그 물이 도랑 져 흘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곤 하나님께 간구를 하였지요.(왕상 18:36)

결과는 뻔 한게 아니겠습니까?

여호와 하니님의 불이 그 도랑에 찬 물까지 다 말려 버리셨다니까요.

 

이 결과를 본 군중들이 바알과 아세라의 사제 850명을

텔 엘 콰시스즉 제사장들의 언덕이라는 곳으로 끌고 가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니 아합의 부인인 이세벨이 길길이 뛸 수 밖 에요.

그래서 싸움에 이긴 엘리야가 오히려 19 2절에 와서는

현상 붙은 사나이로 전락하여 숨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에게 환호하며 바알의 사제들을 죽이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왜 또 태도를 돌변하여 바알을 믿어야만 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요, 어느 곳에서 불어올지 모르는 것이 바람이고 보면,

밟으면 밟혀야 하는 민초야 그 바람에게 운명을 맞기는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두려움에 광야로 도망가 로뎀 나무 아래 앉아 탄식하며,

하나님께 죽기를 바라는 엘리야의 인성!

도대체 인간의 믿음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얼마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체험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또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얼마 만큼일까요?

결국 호렙산, 우리가 올라 갔다 온, 그 시내산이 아닌,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호렙산에 다녀 오고 나서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 엘리야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결국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영광된 인성을 마치게 되었습니다.(왕하 2:11)

 

Note 22 - 44

인간들의 전쟁터 - 므깃도 (Tel Megiddo) -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 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계시의 책인 요한계시록 1616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마겟돈" "므깃도의 언덕 (Tel Megiddo)"이 라는 뜻으로 구약시대에 많은 전쟁이 치러진 곳입니다.

가나안 땅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스르엘 골짜기에 있는 므깃도는 그만큼 전술상 중요한 지역이 되어서인지

성경에도 므깃도와 관련된 많은 전쟁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에 므깃도를 점령하였다는 기록은 물론이고( 12:21),

사사 드보라와 바락의 전쟁에서도 므깃도 앞의 평원과 물가들은 중요한 전쟁터였습니다( 5:19).

 

이곳의 중요성을 간파 한 솔로몬은 이곳에 오늘날의 기갑부대라 말할 수 있는

전차부대의 주둔지로 병거성을 쌓았습니다(왕상 9:15).

그도 그럴 것이 므깃도가 전략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를 적들에게 빼앗길 경우,

사마리아 지역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까지 위태로울 수 있기에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은 하나님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 므깃도의 무장과 방어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아합의 아들이자 당시 왕이었던 요람에 반란을 일으킨 예후가

요람을 죽인 후 나봇의 포도원터에 가져다 버리게 하고,

그때에 함께 있었던 남왕국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예후를 피해서 도망하다 죽은 곳이 므깃도이기도 합니다(왕하 9:27).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 남 유다 왕국의 16대 왕, 요시아가

이집트 파라오 느고의 군대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곳도 므깃도였습니다(역대하 35: 20~24).

 

이 지역은 19251939년에 미국 시카고 대학의 동양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어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직은 발굴의 초기 상태이기에 돌무더기의 폐허이지만

그 폐허의 유적들은 옛날의 번영과 영화를 말해 주기에 손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넓은 평야와 언덕 위의 성곽 터, 그리고 큰 곡물 저장소의 자리며 또 그 긴 땅 속 수로….

우기 때에는 아직도 그 수로를 타고 물이 흐르기에 개방을 안 한다지만

마침 우리가 왔을 때에는 우기가 끝난 직후라 문을 열어서,

우린 그 수로를 통하여 들어갔던 곳이 아니라 언덕 아래 한참 떨어진 평지로 나올 수가 있도록

그 수로의 규모는 가히 우리의 상상을 불허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6 16절에 계시된 대로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모일

왕들은 과연 어떤 왕들일까요?

이제는 더 이상 총이나 대포로 승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자폭탄으로 그 큰 땅을 차지한다 하여도 쓸모가 없음을 잘 아는 교활한 왕들의 기상천외한 술수는,

동물들에나 기생하던 균을 사람에게 전이 시키도록 변이를 만들어 창궐케 하도록,

모든 악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왕권 유지를 하고 있는 인간세상에서,

과연 정의를 실현하며 다스릴 수 있는 왕이 나타날 수나 있으려는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요한 계시록 17장과 18장이 꼭 오늘날을 예견한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Note 45 - 64

텔 단(Tel. Dan)- 사사들의 언덕

제일 마지막으로 제비를 뽑아서 였던지, 가나안에 들어 올 때,

유다지파 다음으로 인구수가 많았던 “단”지파에게 분할된 땅은

베냐민 지파의 왼쪽 해안가 지역으로, 제일 작은 땅이었습니다.

“단” 지파에는 삼손과 같은 위대한 사사가 있어 필리스티아인(philistines블레셋) 들과의 경쟁이 가능했지만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대로 삼손이 죽은 이후, 이들에게 밀려 분배 받은 땅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이동하여 이곳에 있던 “라이스”를 정복한 후, “단 지파”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8:29)

라이스는 원래 납달리에게 분배된 땅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지파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단과 납달리는 같은 어머니 빌하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북왕국 첫번째 왕이었던 여로보암이 절기때마다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이 곳에서도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쌓은 제단 터를 발굴할 목적으로

1993년서부터 발굴을 시작하던 중 귀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9세기에 아람 왕 하자엘이 유대 침공 후 승리한 전쟁상황이 아람어로 새겨진 현무암 돌판이라고 합니다.

이 돌판 해독으로 인하여 엘리사의 잔혹한 전쟁 예언(왕하 8:12),

유대인이 아닌 아람왕의 역사적인 전쟁 기록으로 입증이 되었다고 합니다.

 

텔 단 지역은 헬몬 산의 눈 녹은 물이 계곡을 흐르며 지하로 스며 들었다가 지면으로 흘러나오는

수량이 풍부한 샘들로 인하여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나무들로 녹음이 우거진 곳으로, 

260km를 구비구비 흐르는 북 “요단 강”의 시발점이 되는 곳입니다.

‘요단’이란 말은 ‘단에서 흐르다’라는 뜻이니, 우리 귀에 익은 요단 강은 즉 ‘단 지방에서 흘러내리는 강’인 것이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지역이니 잡신들의 신당이 안 들어설 리가 없겠지요.

북왕국에서 처음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이 어느 사이 잡신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 폐허가 된 채로 자국만 남은 팬 신전 터도 이 곳에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하나인 단 지파의 자손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믿거나 말거나”의 수준인 이야기로 치부하고 말았었는데

우리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조금 옮겨 봅니다.

 

2001 9월부터 6년간 주한 이스라엘 대사였던 우지 마노르(Uzi Manor)가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야, 로마제국등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흩어졌는데, 한 부족만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미스테리였다고 합니다.

그 사라진 부족(lost tribe)의 이름이 단 지파였는데 고조선의 단군과 동일한 사람 같다고 하여

관심을 끌게 되기도 하였었습니다

이 후 이를 뒷받침하는 고적들도 발견되었고, 유대인들과 한국 사람들의 공통된 습성이나 풍습,

언어들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들이 써 오던 우리의 단군 조선의 기력이 서기 2022년에 2333년을 더하면 4355년이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참 묘한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해 보세요.

(https://m.blog.naver.com/cs3197/221233496541)

 

워낙 오래 전에 있었던 민족들의 이동 자취이기에 아직은 설 들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신앙을 왜곡하여 이용하는 사람이나 국가의 결말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이 “폐허가 되리라” 부르짖는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1부 끝 맺음

구약 성경에 기록으로 남겨진 유대 민족들의 파란만장하였던 삶의 자취들은

오늘 말씀드린 갈멜산에서, 므깃도에서, 그리고 텔 단에서 있었던 일들의 되풀이에 비슷한 것

같아 여기에서 흔적을 찾아서를 잠시 마치려 합니다.

 

예수님 이 후의 교회 탄생의 자취를 찾아보는 일 역시

중동의 베들레헴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과 갈릴리 호반에 머물다가

소아시아라고 부르던 요즈음의 터키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이기에

이 여정의 내용을 조금 더 보완할 필요가 있어

올 가을에 “2차 흔적을 찾아서로 다시 시작을 하려고 준비하며

여러분들에게 양해를 구하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하여 주신 여러분들과 토론토 한인 기독교 방송국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성숙의 계절, 여름을 건강하게, 평안하게, 즐거웁게, 잘 보내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천천히 전병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