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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는 요르단이 세계에 자랑하는 국보 1호의 유적지, “페트라”입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중 두 곳을 좌 우에 가지고 있는 “광야”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페트라는 출애굽 시절부터 그 이름이 거론되도록 오래 전부터 “왕의 대로”가 지나는 지역이었기에 활발한 문물 교역으로 향신료, 철, 직물, 의약품, 특히 값비싼 유향 등을 무역하며 이 지역에 많은 유물을 남겨놓았었는데, AD 106년 로마 황제 트라이아누스(Traianus)에 의해 나바테아 왕국이 멸망하며 나바테안들은 페트라와 함께 역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가 재발견 하였으니 웬일인지 한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다가 1929년에 이르러서야 이곳의 발굴작업이 시작되었고, 1964년에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의 대로, 즉 Kings Hiway라는 이름이 붙은 길은, 광야의 서쪽에 있는, 태양신을 믿으며 태양력을 사용하는 이집트와, 광야의 동쪽에 있는,달을 믿으며 태음력을 사용하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명멸하던 제국들이 서로 힘을 겨루며 침략하고, 또 침략당하던 과정에서 군인들과 무기와 군수물자를 효율적으로 옮기기 위하여 만들어진 길로 내륙 쪽에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길을 오가며 진귀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실어 나르던, 이재에 밝은 캬라반들이 해안가에 개척한 “해변의 길”이 다시 생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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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한 2년째인 주전 1445년에 바란광야에 진을 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각 지파 별로 1명씩 모두 12명을 택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애굽 왕실에서 교육받은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두가지 길을 훤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12명을 택하고 몇 가지 임무를 주며 이들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게 되었지요.
12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40일에 걸쳐서 두루 정탐하고 포도송이와 무화과와 석류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모세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궁금하게 생각하여 가데스에 모여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었습니다.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은 분명한데 그 땅은 너무 험하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키가 크고 힘이 장사여서 도저히
가나안 땅을 차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10명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비교하면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자조섞인 어조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은 몹시 절망하고 한편 흥분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불평했지요.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지만 백성을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하였습니다.
이 후 여차여차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죽음은 면하지만 그들이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던 일들이 민수기 13장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37년 간의 유랑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렇게 37년의 광야생활을 한 후 가나안으로 나아가전 중 모세는 좀 빠른 길, 즉 왕의 대로로 가기 위하여 에돔 왕국의 수도, 페트라의 통행 허가를 위하여 사신을 보내었으나,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왕의 완강한 거절로 결국 광야로 우회하여 느보산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민수기 20:14에서부터 기록되어있는 곳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들이 못 통과한 그 페트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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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여러 나라들 중 희귀하게도 산유국이 아닌 요르단에는 페트라(Petra)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점인 사해(Dead Sea)와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요단강을 이스라엘과 공유하며 국경을 이루기도 할 뿐만 아니라,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방황하였던 와디 럼 광야와, 모세가 여리고 성을 바라보며 지휘권을 여호수아에게 넘겨주었다는 느보산과 다양한 로마 유적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도록 기독교에 어느정도 개방된 나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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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면 조랑말들과 마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하기에 연로하신 분들은 대부분이 마차를 타시고, 좀 젊은 분들은 마부가 이끄는 조랑말을 타고 뙤약볕이 쬐이는 광야를 한참 내려간 후, 말에서 내려 거대한 바위틈 속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을 걸어 내려갑니다.
때로는 하늘이 안보이기도 하도록 양쪽의 바위들이 서로 어긋나기도 하며 구비구비 내려가는 이 길을 '시크'라고 부릅니다.
영화 '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의 끝 부분에서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성배를 찾기 위해 거대한 바위산 협곡을 말을 타고 빠져나가던 장면이 바로 이 곳, 시크였습니다.
협곡의 아랫부분에는 수로가 파여 있어, 우기에 오는 빗물을 물 저장소에 옮겨 놓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안 보이도록 그늘진 시크를 벗어나자마자 눈부신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색 나무잎들이 우리들의 눈을 부시게 만들어 줍니다.
흙이라곤 한 줌도 없는 빠알간 암석 사이에 뿌리내린 생명력 강한 몇 그루의 나무가 파란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장면이 경이롭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이런 장관을 연출할 수가 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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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금 더 내려가다 보면 바위틈에 수줍게 숨어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살짝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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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야! 야! 탄성을 연발하며 내려가다 한 구비를 도니 다시 탄성이 터집니다.
바로 사진에서만 보아 오던 그 "보고"라는 별명이 붙은 "카즈네"가 위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요!
영화 '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의 끝 부분에서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성배를 찾기 위해 거대한 바위산 협곡을 말을 타고 빠져나가면 광장 맞은편에 돌산을 깎아 만든 거대한 성전이 나타나지요. 그리고 그 성전 안에서 미로 같은 동굴을 통과하여 성배를 찾게 되는데 이 장면의 촬영지가 바로 '페트라'였습니다. 이 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게 된 명소로 변하여 이제는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명소 10군데 중의 한 곳이 되었지요.
정면 제일 윗부분에 항아리 형태가 조각되어 있는데, 그 속에 나바테안들이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설이 전해져 '보고'라는 이름이 생긴 페트라의 유적 중 대표적인 것으로, 전면에 6개의 '고린도'식 석주가 서있는 희랍식 건축 양식의 건물인 것으로 보아 기원 전 1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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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영화와는 달리 내부는 의외로 단조롭습니다.
돌을 파내 규모가 큰 직사각형 방을 만들어 놓았을 뿐입니다. 건물의 내부 벽면에는 아무런 장식이나 벽화가 없지만 암석 자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색깔과 기하학적 또는 물결무늬들이 방 전체를 휘감고 있어 어떤 벽화나 장식보다도 현란하고 황홀하게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사람들의 특징은 산 사람은 텐트 안에서 살고, 죽은 사람은 돌을 파서 만든 무덤에 시신을 보관하였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니 이 건물도 결국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어느 고귀한 신분의 무덤이었을 것 같습니다.
들어가지 못하게 유리로 막아 놓았으나 지하실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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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는 부서지나 남은 상태인지, 아니면 짓다가 끝을 내지 못한 상태인지는 알수 없는 여러 개의 큰 무덤들이 보입니다.
큰 산에 여러개의 구멍이 보이는 이 곳은 아마도 공동묘지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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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죽음 후의 사람도 다 평등한것만은 아난 것 같다고 생각들 하며 조금 더 내려가면 야외 원형 극장이 나옵니다.
로마가 점령하였었으니 야외 원형 극장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바위산 자체를 깎아서 만든 것으로 로마인들과 나바테안들의 기발한 독창성과 우직한 추진력이 발휘된 작품으로 33개의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너비가 40m에 이르며, 7천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로 아직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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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유적에서 일명 '수도원'이라고 부르는 알-데이르를 빼놓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르는 길이 힘들 뿐만 아니라, 거리 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처럼 보통 하루 일정으로 온 사람들은 이야기로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알-데이르(Al-Deir)는 800 계단을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페트라의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전면의 폭이 50m, 높이가 45m에 이르지요.
오보다스 1세 (Obodas I BC 96~86년 즉위)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곳이라는 데 수도원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 건물 내부 벽면에 십자가 몇 개가 새겨져 있는 데서 유래했답니다.
아마도 십자군 운동 때 교회로 사용하며 새겨 놓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그 이전 교회가 핍박받을 때 이 곳으로 숨어든 초기 기독교인들의 자취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즈음엔 알 카즈네 를 본 후 넓은 돌 자갈 길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베드윈들이 말과 당나귀들에 관광객을 태우고 알 데이르를 다녀오기도 합니다마는 내릴 때 비싼 요금을 지불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이나 당나귀에게 줄 팁을 또 요구한다고도 하니 베드읜들의 흥정방법도 대단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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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는 고대 국가 에돔(Edom)의 수도이었으나, 기원 전 300년경 에돔사람들을 몰아낸 나밧 사람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나밧 사람, 즉 나바테안 (Nabateans)은 신.구약 중간시대, 주로 북 아라비아를 지배하고 있던 아라비아인이라고 합니다
나바테안들은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그 문화의 절정을 이루어, 유대의 역사에 보면 헤롯 임금시대에 이들에 대한 기록이 무척 많이 나오고 있었지만 그 후 종적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건축의 귀재이자 정치감각이 뛰어난 헤롯대왕도 이 곳 출신으로 로마의 정치권과 인연을 맺어 유대지방을 다스리는 위임을 받았다고 합니다.헤롯 대왕 이야기는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좀 더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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