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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de Note
Note 2
안녕하세요
오늘 저희들이 함께 나누어 볼 주제는 “시내산의 역사와 야사” 3번째 이야기로 “방황하는 12지파”가 되겠습니다.
Note 3
그 깊은 홍해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여 주신 길로 평탄하게 건넜다는 일은,
믿지 않으려 해도 믿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흔적이 남겨진 신비한 일이었지만
사실 더 믿기 힘든 일들은
이 후 근 40년에 걸쳐 광야에서 있었던 일들일 것입니다.
그 광야의 모습을 막상 보시면
어떻게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40년을 버티며 유리 방황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있었던 일이니까요.
이제 홍해를 건너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시내산을 향해
움직이는 무리들이 되었으니,
우리들이 지난 1500여년동안 시내산으로 알고 오르던 시내산이
시나이반도에 있는 시내산이 아니란 것에 대한 확인을 한 후에
시나이반도를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Note 4
2차대전이 끝난 후 영국사람들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그 옛날의 가나안지방이요 유대나라였던 지역에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은 그 곳에 오랫동안 거주해 오던
팔레스타인 인들이 있었으니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요즈음의 사회적 단어의 개념으로는
시오니즘에 따라 유럽 등으로부터 유대인의 이주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았던 아랍인과 이 지역 출신의 이주민과 그 후손을
별개의 민족으로 부르는 명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손자 가스루힘의 후손으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서로가 견원지간이 된 필리시테인(Philistine) 들인 것입니다.
후에 다윗의 돌팔매에 꼬꾸라진 거인 골리앗도 블레셋 사람이니가요.
팔레스타인이란 말은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Note 5
주후 70년경에 성전이 파괴되고도 또 60여 년이 지났으나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꿈은 사라지지 않아 로마에 대한 반란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반란의 결과는 더욱 참혹했겠지요. 모든 유대인들이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알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 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어 지며 유대인 거주가 금지되고, 오직 성전 파괴일(아브월 9일)에만 방문이 허락되었지요.
이 때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지금까지 유다로 부르던 속국의 이름을 시리아 - 팔레스티나로 바꾸었습니다. 이후로 이 땅은 이스라엘이나 유대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이니 이네들이 1500년정도를 살아온 땅이었던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함께 살아 남은 노아의 후손들로, 서로 형제지간이었건만, 축복이 무언지…?
Note 6
6일 전쟁, 혹은 제3차 중동 전쟁으로 불리는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1967년 6월에 일어났었습니다. 불과 6일 만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그리고 골란 고원, 가자 지구, 서안 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며 이스라엘이 국토를 3배나 늘렸던 전쟁이었습니다. 국제적인 여론에 의해서 1981년 시나이반도를 이집트 측에 반환한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도 그때의 점령지들 대부분을 자국의 영토로 삼고 있지요.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던 15년 동안,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바둑판 쪼개듯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1982년 시나이반도를 이집트로 돌려주며 마침내 무사산은 시내산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The Jewish Encyclopedia(유대인 백과사전)vol. 14, 1599)에 기재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뉴스프리존(http://www.newsfreezone.co.kr)
Note 7
요즈음의 이스라엘 지도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모랫길을 걸어
홍해를 건너 애굽을 빠져나와 이렇게
위태위태하지만 국경선을 그어 놓고 살고 있지만,
Note 8 9
저희들은 이집트의 국경을 넘어 완충지역을 걸어서
이스라엘 국경에 도착한 후 세밀한 짐 검사와
삼엄한 보안 검색을 거친 후 버스를 타고
요르단 쪽의 도시 아카바의 국경에 이르러
다시 짐 검사를 위시한 출국 수속을 한 후에야
요르단으로 건너오너라 반나절을
그 10km 밖에 안되는 국경에서 보낸 셈이 되었습니다.
Note 10
그래서 저녁 늦게야 석양빛을 받으며 홍해에 발을 담글 수가 있었습니다.
Note 11
급변하는 중동 정세는 지난 몇 해 동안 엄청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던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수장격이던 사우디아라비아가 2020년부터 서서히 변화를 보이더니 요즈음 구글 어스 지도를 보면 철책으로 둘러 싸였던 라오즈산에 공원이 생기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개방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보면 한국분들도 여러명이 라오즈산을 방문한 후 방송하는 것도 간간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엔 시내산은 시나이반도 안에 있는 시내산이 정설이었기도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내산이 있는 라오즈산을 엄중 경계하며 지키고 있었기에 오늘 보여드리는 모세의 시내산의 대부분 사진들은 구글 어스에서 Screen Shot을 한 것들입니다.
Note 12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에 위치한 네옴이라는 신도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계획중인 신도시로서, 북쪽으로는 요르단과 접경하고, 서쪽으로는 홍해를 접하며, 15 km 길이의 다리를 건설해 이집트와 연결될 계획으로. 사업비 5000억달러에 2만6500km²의 넓이로 건설 시내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건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벌써 TROJENA 산에는 환상적인 유흥시설들과 스키장들이 건설되어 붐비고 있습니다.
Note 13
시내산을 요즈음구글 어스에서는 LAWS Mountain이라고 부르며 많은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 벌써 관광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이름은 구글 어스에서 붙여준 이름인 것 같습니다.
아랍어로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뭐라고 잇겠지요.
이런 추세라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을 우리들도 등정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열리게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Note 14
네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정점에는 TroJena가 있고 그 옆에 우리가 모세의 시내산이라고 부르는 산이 있는데 구글 지도에는 Laws Mountain으로 기록 하였습니다.
그 아래쪽으로 라우즈산, 일명 아몬드산이라고도 하는 이 곳이 지금까지는 시내산이었을 것 이라고들 이야기를 하였었는데 이 산은 성경에 나오는 호렙산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 바로 아래에는 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오른쪽에는 임시 휴점이라 쓰여진 매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Note 15
열왕기 상 19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멋진 싸움을 벌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였지요.
이후 길길이 뛰는 '이세벨' 여왕을 피해서 광야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 탈진한 상태로 쓰러져 있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먹이시고, 새 힘을 얻어 호렙산까지 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호렙산이 시내산 봉우리와 마주보고 있는 라오즈산이라고 합니다. 이 산에는 그가 기거하였음직한 동굴이 아직도 있다고 합니다.
이 산자락은 아직도 이렇게 철조망으로 막아놓았습니다.
Note 16
사진으로 보면 호렙산과 시내산은 자락이 같은 산으로 두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 시나이반도 안에는 지도의 시내산은 있을지언정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모세의 시내산은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산으로 귀결이 될 터인데, 앞으로 나올 성경에는 그 산 이름이 무엇이라고 나올지….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겨울에는 눈이 덮이는 시내산은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아직 정확한 자료들이 없어 확인은 못해보았습니다.
Note 17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 에서(므리바?)에서 바위를 쳐 물을 얻었다는 그 바위도 라오즈산, 즉 호렙산 자락에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6절의 르비딤(므리바?)사건은 아직 시내산에 도착 하기 전, 광야생활 초기에 일어난 일로 나옵니다.
이 바위가 결국 모세의 운명을 갈라놓았다고도 하는데…..
그 이야기는 느보산에서 다시 이어지도록 하고, 이네들이 유리방황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광야는 우리들이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이네들이 가나안으로 진격해 나가던 길목인 요르단의 광야를 다음주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Note 18
시내산은 지금 사진을 찍어도 산 봉우리가 까맣게 그을려진 모습입니다.
출애굽기 3장 1절과 2절에서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더니 그 때 그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고 적혀있지만 19장 17절에서 19절에는”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자국이 아직까지 남아있기에 이 산만 정상이 까맣게 타 있는 것입니다.
정상 부근에서 까만 돌을 쪼아보니 뒷면은 다른 산의 바위처럼 붉은 색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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