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흔적을 찾아서

15 신약 시대의 여리고 – 시험산 수도원

천천히 chunchunhi 2020. 9. 4. 10:10

15 신약 시대의 여리고시험산 수도원

 

고도가 해저250m로 세계에서 가장 저지대에 있는 도시들 중의 하나인 옛 여리고 성터 발굴 지역에서 올려 다 보이는 민둥산이 있습니다.

유혹의 산(Mount of Temptation)” 혹은 시험산입니다.

높이가 해발 350m라고 하니 제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는 600m의 정상인데 산이 민둥산이 되어서인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제법 가파른 산입니다. ,

나무 한 그루 없는 사암으로 된 산 중턱 조금 못 미치는 곳에 멀리 보이는 건물들이 마치 기차가 서 있는 것처럼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유혹의 산 수도원(The Monastery of the Temptation)”입니다.

그리로 연결되는 케이블카가 발굴지역에서 현장을 보며 설명을 듣는 우리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걸어서 오르기에는 꽤나 힘든 고행길이 되는 것 같은 높이인가 봅니다.

 

이 민둥산 정상은 마치 마사다의 축소판처럼 약 100m×40m의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고 3면은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군사적인 요새로서도 좋은 지형이 되어 로랜 세월, 여러 세력들로 주인이 바뀌던 중 하스모니아 왕조 시절(BC 164~BC23)에는 산 정상에 ’(Doq)이라고 부르는 작은 요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때에는 유혹의 산이라는 이름이 아니었겠지요.  

단지 왕의 대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풍요로운 도시 여리고가 있기에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을 것입니다.

 

서기 340년경 카리톤(St.Chariton) 성인은 유혹의 산 정상에 있던 요새의 폐허 위에 요새의 이름(Doq)에서 따와  도우카의 라우라’(Laura of Douka)라는 공동체를 만들자 많은 수도자들이 다녀가며 이곳의 수도자들을 예수님이 단식한 40일을 의미하는 꽈란타나(Quarantana) 수도자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614년에 페르시아 군에 의하여 모두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을 포함한 성지 팔레스타인 지역은 630년경에 이슬람 칼리프 오마르(Umar 586/590- 644)에게 정복되면서 무슬림들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어 유혹의 산 수도원도 이때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1099년 십자군에 의해 수복된 후, 유혹의 산에는 두 개의 성당이 지어졌는데 하나는 산 중턱에 그리고 두 번째 성당은 유혹의 산 정상에 지었으나 팔레스타인 지역은 무슬림들에게 다시 정복되고 성당들도 모두 다 파괴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즈음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유래를 집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이스라엘 일대와 팔레스타인 지역은 원래 가나안 지역이라고 하였으나 유대민족이 출애굽한 후 나라를 세우며 유다지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포로생활과 또 계속되는 외침에 의한 피지배 민족이었기에 야훼, 여호와를 믿으며 유난히 강한 선민의식으로 뭉친 그들의 집념은 항상 대단한 결속력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지배 세력이었던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독립 항쟁이 세 번 크게 일어났고, 그 때마다 진압은 되었지만 로마의 피해 또한 엄청 많았습니다.  특히 AD 72년의 마사다 전투 이후 일어난 AD 135년에 3차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로마가 입은 피해가 엄청났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모든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한 후 다만 성전 파괴일(아브월 9)에만 방문이 허락되며 들어가 살지는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다로 부르던 속국의 이름을 시리아 - 팔레스티나로 바꾸어 유다라는 지명을 지도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더 이상 유대인들이 이 땅에 대한 애착을 갖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던 것입니다.

그 후로는 이 지역에 남아 살던 사마리아인들과 블레셋 사람들, 그리고 여러 혼혈민들이 살게 되어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필리스티아(Philistia), 즉 블레셋 사람의 땅 이란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유다의 사사 삼손을 유혹하여 죽게 한 들릴라도 블레셋 여인이었고, 후일 다윗의 돌팔매에 꼬꾸라진 거인장수 골리앗도 블레셋 장수였으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인연은 매우 끈질긴 인연인가 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후손 중 가스루힘의 후예들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분류를 한다고 합니다.

 

여리고 발굴 지역 위로 지나가는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산 중턱의유혹의 산 수도원(The Monastery of the Temptation)”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1874년에 부지를 구입하여 1895년에 예수님께서 단식하시며 앉아 계셨다던 동굴의 바위 위에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글들 에서도 느끼시겠지만 성지순례를 하다 보면 때로는 이건 아닌데….?” 하며 회의를 느끼는 곳들이 종종 나오게 됩니다.

세계 도처의 성지라는 곳에 가 보면 주로 로마시대의 교황들이, 아니면 수도자들이 성지라고 불리우는 곳곳에 성당을 지어 놓고 많은 장식들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야 흔적을 찾아서 헤매는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오게 되고….  

그래서 교세가 늘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성당들마다, 성지들마다 좀 더 많은 성물들을 비축해 놓으려고 끈임없이 노력들을 하지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지만 그 믿음을 가지기 까지에는 보이는 교육효과가 필요한 것이 우리 인간들의 믿음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앉아 계셨던 바위라거나 예수님께서 첫 번째 유혹은 받은 자리에 세워진 경당이 이런 느낌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곳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느낌은 저만의 느낌일 뿐, 이 곳에서 소개하는 대로 예수님께서 두가지 시험을 받으신 곳이 바로 여기라고 믿으며 경건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에 이 곳을 찾는 순례객들도 많은 성지인 것은 사실임을 미리 부언해 두어야 겠습니다.

유대 광야편에서 조금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시험산 원경

 

카메라의 망원렌즈로 보면 산 중턱에 건물들이 보입니다.

 

 

 

 

정상의 요새 터      아마도 세번째 유혹을 위해서는 시험산 정상으로 오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