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흔적을 찾아서

17 신약 시대의 여리고 – 유대광야

천천히 chunchunhi 2020. 9. 18. 08:17

17 신약 시대의 여리고유대광야

 

공관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 혹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태 4,1-11; 마가 1,12-13 ; 누가 4,1-13)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신 광야는 분명히 여리고 근처의 광야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기 전 40일동안을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화려한 도시, 여리고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오늘의 시험산 수도원 자리에서 금식하시며 기도하시었을까요? 

제가 의문을 품게 된 것은 여리고 고적 발굴터로 오기 전에 들려 본 유대 광야의 정경 때문이었습니다.

 

해발 780m 인 예루살렘에서부터 해수면보다도 250m 더 아래인 여리고로 가는 길은 유대 광야라고 부르는 메마른 민둥산들 사이를 돌고 돌며 계속 내려오는 내리막 길입니다.

요즈음엔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관광버스를 타고 편히 내려오지만 그 당시, 노새에 등짐을 싣고 힘겹게 오르내리던 길은 강도들도 자주 출몰하던 한적한 광야의 산길이었을 것입니다.

여리고에 가까운 곳에서 버스가 산길로 한참 들어가다가 오솔길과 마주치는 곳에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저 멀리 좁은 길섶에 폐허가 된 돌집이 보였습니다.

인솔하신 선교사의 설명은 저런 집이 아마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 등장하던 곳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메마른 돌밭을 걸어 들어가자 앞에 펼쳐지는 장관!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계셨던 곳은 바로 이런 정도의 지점은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딱 들어오는 곳이었습니다.

마침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이 누런 광야의 곳곳에 그늘을 드리워 주었기에 햇볕을 받은 곳과 대비하여 보이는 정경은 거대한 화덕에서 누룩이 안 들어간 빵이 구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한 광야의 정경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유혹할 수 있을까?”를 한 때에는 하나님의 천사였다가 타락한 마귀는 오랫동안 고심하며 연구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40일간의 금식 후에 나타난 마귀의 유혹은 인자로서는 참으로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서 제일 먼저 생존에 관계되는 식욕!  다른 모든 욕망들은 결국 살아 있은 다음에 느낄 수 있는 욕망이기에 아마도 허기진 예수님께 처음 던진 유혹이,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능력을 사용하여 돌들을 떡 덩이로 만들라고 유혹한 모양입니다. 

그에 더하여 주님께서 앞으로 사역하실 세상의 사람들이 그만큼 육신의 양식에 주리며 억압 속에 있는 피 지배인들임을 예수님도 알고 있으리라고,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이 그를 위한 떡 덩이일 것이라고 마귀는 생각하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멋지게 이겨 내 시었지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두 번째 유혹과 세번째 유혹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순서가 서로 바뀌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순서에서 두번째 유혹은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보내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를 보살펴 주시는가를 시험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지은 화려한 성전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누런 사암으로 지어진 성벽과 성문들은 AD 1538년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 1세가 재건한 예루살렘 성벽이지, 건축의 귀재, 헤롯 대왕이 재건한 성전과 성벽은 이에 비할 바 없이 크고 화려하였던 것 같습니다.

AD 135년에 3차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로마가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다 허물어 버리면서 우리가 어떤 성벽을 허물어 버렸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 남겨 놓았다.”라고 자랑하며 조금 남겨 놓은 지금의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서쪽 벽을 보면 돌의 질부터 비교가 안되는 큰 규모의 화려하고 견고한 성곽이요, 성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었을 정도이니까요.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21:5, 24:1 13:1)

이렇게 화려하고 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지를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간단한 대답으로 물리치셨죠.

마귀도 하나님이 시험의 대상이 아닌 것을 알고는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인자로 오신 예수님이 그것을 아는지를 시험해보려는 술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번째 유혹을 위해서는 아마도 여리고 근처의 유혹의 산으로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유대 광야에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다시 여리고로 올 수가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요?

인간인 우리가 생시에 경험해 볼 수 없는 신들의 경지에서 일어난 일들이니 무슨 답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감을 할 때 꾸는 꿈도 있지만 그마저도 ? 어떻게를 증명할 수 없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러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기적들이 이루어진 곳을 다녀가며 흔적을 찾아보아도 우리는 증명할 수가 없으니까요.

 

모세도, 엘리야도, 예수님도, 그리고 사도 바울까지도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피난처였지만 이네들에게 믿음을 통하여 힘과 용기를 준 광야!

이 곳 사람들이 와디(wadi)라고 부르는 광야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 같아, 빵처럼 보이는 광야의 구릉을 보며 드리는 기도는 간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곧 이어서 점심을 먹었으니

 

유대 광야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
눈길이 미치지 않는 끝없는 유대 광야

 

광야의 표면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광야에도 생명체가 있어, 신기하게 생긴 곤충? 동물?을 드려 다 보는 모습. 전갈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산길의 여인숙”이 이런 정도의 집 이였을 것이라고 하네요.

 

광야를 찾아오는 그룹들도 제법 여럿 있었습니다.

 

우기가 막 끝난 후의 광야에는 이렇게 풀들이 자라고, 양들이 목자들의 인솔로 와서 풀을 뜯기도 하는 살아있는 광야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