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구약 시대의 여리고 – 텔 여리고(Tel es-Sultan)
느보산에서 모세가 죽은 뒤 어디인지 모를 곳에 장사 지낸 후 유대인들의 새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앞에 제일 먼저 닥친 관문은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 기록들에 의하면 “여리고는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도시(Walled City)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1907-1909년의 독일팀 발굴 결과를 근거로 한 고대 여리고 북편 성벽의 추정도에 의하면 가옥들이 돌로 된 옹벽 위에 놓여 있는 진흙 벽돌 성벽을 의지하여 지어졌음이 유추되었고, 1930-1936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죤 카스팅(John Garstang)의 발굴에 이어 1952-1958년에는 영국의 여류 고고학자 캐더린 캐년(Kathleen kenyon)이 정밀 발굴하였습니다.
발굴 장소들이 여리고의 여러 부분으로 위치가 다르기는 하였지만 거의 모든 결과가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즉 주전 8000년경에 이미 도시 생활을 시작한 증거들과 도시가 발전하며 쌓은 성벽과 둥근 망대(Round Tower)터 등을 발굴하였습니다.
1997년에 성이 있던 구릉의 남쪽 끝에서 발굴 작업을 한 이탈리아 팀의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박사도 외벽의 기초부분(옹벽)을 발굴했으며 항아리 속에 담겨 있던 음식물들을 최신의 연대측정방법으로 추산한 결과 3,500년 전으로 나타나 결국 BC 1400년경 유대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던 시기와도 묘하게 일치가 되는 것을 밝혀 내었습니다.
흙 속에 묻혀 있던 유적의 발견으로 유추된 여리고 성은 아래쪽에 돌로 4-5m 쌓은 옹벽(기초성벽)을 가지고 있었고 그 성벽 위에 폭 2m, 높이 6-8m의 진흙 벽돌로 된 성벽(mudbrick wall, 외벽)을 만든 후 집을 짓고 사람이 살고 있는 거대한 토벽(earthen rampart)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보낸 2명의 정탐꾼이 발각되어 기생 라합의 집에 숨어든 후 라합의 도움으로 성 밖으로 탈출하던 이야기가 완전하게 부합되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 2:15).
이렇게 성 터는 발굴 되어 성벽의 모양에는 이견이 없는데, 여호수아 6장 20절에 자세히 나와 있는 성의 함락에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구구한 설들로 우리들을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일 많은 설이 지진으로 무너진 설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는 설명이 소리의 진동으로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지는 모르겠으나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음파 무기가 개발이 되였었지요.
또 심지어는 소프라노의 고음에 포도주잔이 깨어지는 비유를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강우량을 조절하기도 하고 지진을 유발시키기도 한다는 HAARP(High-frequency Active Auroral Research Program)로까지 발전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6장 1~7로 여호와께서 주신 계획대로 행하여 성이 무너진 것은 신비(神秘)한 일, 즉 신의 비밀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우리 인간들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즉 기적인 것이 아닐까요?
바꾸어 말하면 여리고 성의 발굴로 나타난 고고학적 증거, 즉 기원전 1,400년 전의 장비나 기술로는 절대로 가능할 수 없도록 한 순간에 무너진 성벽과, 이를 뒷받침하는 성 안의 대부분의 건물 안에 있었던 많은 양의 곡식이 든 항아리들과 굽지 않은 빵의 반죽 등의 발견을 보면 성경의 이야기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일 또한 설명할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일곱째 날에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 온 백성이 큰 함성을 지르자 성이 무너 졌다.”라는 기록을 마치 홍해가 갈라지고, 사막에서 바위가 벌어지며 물을 쏟아낸 것처럼 우리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신비한 현상들로 거저 “기적”이라고 믿으면 될 터인데 그것을 굳이 이해시키려고 설명을 달다 보니 더 이상한 이야기로 귀결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성경이 다른 역사서보다 좋은 것은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라도 가감 없이,거짓되이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때 정탐꾼을 숨겨 주었던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성이 무너진 후 정탐꾼 중의 한 명인 살몬과 결혼하여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인자로 오신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부터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 즉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숨기고 싶은 일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들은 단지 그를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들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믿기가 힘든 결과일 뿐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늘의 비밀을 가르치실 때 비유로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주님께서도 우리 인간들이 도저히 이해 못할 것임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비(神秘)라는 단어가 만들어 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신의 비밀”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는 구약에서는 구약대로 그 성의 함락 이야기로,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시험받으시던 시험산 이야기로, 그리고 키 작은 세리 삭개오의 이야기들로 우리에게 친숙하고,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유대광야를 통과하는 오름길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로 예수님의 향취가 깊이 배여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여리고 시는 요단강 서안 지역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치구로, 유대인들은 물론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조차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들이 2만 명가량 살고 있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해저 250m인 여리고의 외곽에 옛날의 여리고 성을 발굴하는 지역에는 들어 갈 수가 있어서 3,500년 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생활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첫 발을 디디던 도시의 옛 성터 기초를 만져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발굴작업은 시작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극히 적은 지역일 뿐입니다.
워낙 9,000년의 역사를 지닌 여리고이고 보니 시대에 다라 흥망성쇄도 있었겠고, 또 인구의 증가로 성이 커지기도 하였기 때문인지 고고학자들은 여리고를 구약시대의 여리고, 신약시대의 여리고, 그리고 현재의 여리고 이렇게 세 개의 지역으로 구분하며 구약 시대의 여리고를 텔 여리고라고 부릅니다.
모세 5경 이후 역사서로 분류되는 여호수아서의 수많은 전투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여리고 성의 함락은 더 이상 설명해 볼 도리가 없으니 이즈음에서 신약시대의 여리고로 떠나 보기로 하지요.
'신문 연재-토론토지역 > 흔적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신약 시대의 여리고 - 예수님의 세례 터 (0) | 2020.09.11 |
---|---|
15 신약 시대의 여리고 – 시험산 수도원 (0) | 2020.09.04 |
13 모세 기념교회 - 느보산 (0) | 2020.08.21 |
12 모세의 여정이 멈춘 곳 – 느보산 (0) | 2020.08.16 |
11 왕의 대로(The King's Highway) - 요르단 (0) | 2020.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