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세의 시내산과 지도의 시내산 3
시나이 반도 안에 있는 시내산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이 아니라는 반론이 일어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십계명을 받은 산의 위치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유감스럽게도 모세는 주위의 지명만 명시할 뿐, 그 산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을 해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할 수가 없었던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 보면 지도가 있을 수가 없었을 때였으니까요.
현재 사본만 존재하는 고대 지도로, 2세기경 지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의 세계지도, 아시아 편에는 놀랍게도 이스라엘을 포함한 아라비아 지역의 지명들을 위도와 경도로 표시했다고 합니다.
그의 지도에 나타나는 시나이 반도는 왜곡되긴 했지만 페트라라는 큰 지역 안에 포함되며 반도의 남쪽에 두고 있지만 시내산 표시는 없다고 합니다.
4세기경 유세비우스(Eusebius Caesarea)의 오노마스티콘(Onomasticon地名錄)은 성경의 지명들에 대한 연구서로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저서라고 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700여 개의 지명을 다루면서 그중 320개의 지역들에 대한 위치를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동 요르단의 지명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 지명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는 출애굽 여정지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광야의 이스라엘 진영”이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지난 회에 잠시 말씀드린 기원 후 381~384년 사이에 에제리아(Egeria)라는 수녀의 순례기에 의하면 지금의 시나이반도 안에 있는 “에벨 무사”가 그 당시 시내산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싶어 하는 순례자들의 욕망이 어디 쉽게 잠재워질 수가 있겠습니까?
AD 527년에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시내산을 순례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시나이반도, 시내산 기슭에 있는 ‘하나님이 거니신 시내산 수도원’(Monastery of the God-Trodden Mount of Sinai)을 보수한 후 성지화 하며 황제의 명으로 “시내산”이라고 공포한 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6일 전쟁, 혹은 제3차 중동 전쟁으로 불리는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1967년 6월에 일어났었습니다. 불과 6일 만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그리고 골란 고원, 가자 지구, 서안 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며 이스라엘이 국토를 3배나 늘렸던 전쟁이었습니다. 국제적인 여론에 의해서 1981년 시나이반도를 이집트 측에 반환한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도 그때의 점령지들을 자국의 영토로 삼고 있지요.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던 15년 동안,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바둑판 쪼개듯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1981년 시나이반도를 이집트로 돌려주었다는 말들이 나돌기도 하였었습니다. (출처 : 뉴스프리존(http://www.newsfreezone.co.kr)
1984년에 두 아들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에 밀입국을 시도하였다가 여러 고비를 넘기며 생환한 성서 고고학 탐험가 론 와이어트(Ron Wyatt, 1933-1999)가
사우디아라비아 미디안 땅에 있는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고 주장하며 아들과 함께 찍은 ‘디스커버리’라는 제목의 비디오를 근거로 내놓으며 다시 불붙기 시작하였습니다.
론 와이어트는 1978년에 시나이반도의 동쪽 홍해변에 있는 누 웨이 바에서 페니키아 양식의 기둥을 발견한 후,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는 확신을 갖고 인근의 홍해 바닷속을 탐험하여 당시 바로의 이집트 병사들이 남긴 병거 바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이 사우디아라비아 쪽 근처의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시 론 와이어트는 홍해 건너편 사우디아라비아 해안 지역에서 누 웨이 바 지역에 있는 것과 동일한 기둥을 발견하고 누 웨이 바에 있던 기둥에 쓰인 글자들을 해독함으로써 솔로몬 왕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것을 1984년 밝혀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항공사진들을 판독하면서 이집트 쪽의 누 웨이 바 해변과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 있는 라오즈산에 200여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운집 가능한 넓은 공간이 있음을 확인하면서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지만 학계와 교계에서는 아직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론 와이어트가 발견한 직후인 1985년부터 울타리를 쳐 놓고 일반인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표지판에는 이와 같이 적혀있습니다.
“이곳은 고고학적 지역으로 무단 침입하는 것은 불법이며, 처벌대상이다.”
2007년, 한국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책 중의 하나가”떨기나무”입니다 (김승학 저, 2007, 두란노).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한방주치의로 일하던 그는 한국에 계신 아버지(김상태 은퇴 장로)를 통해 하나님의 성산, 시내산이 시나이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디안 땅(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북부)에 있다는 신학계의 오랜 가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후,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사명임을 직감하고 가족들과 함께 시내산으로 추정되는 라오즈산에 가 보니 놀랍게도 출애굽기에 기록된 말씀의 단어 하나하나가 들어맞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다음회로 이어집니다.)
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nKXUA3Z29DA
m.youtube.com/watch?v=9e9p3yTI5v4&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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