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폼페이(Pompeii) - 되 찾은 도시
나폴리와 소렌토 사이에 형성된 나폴리만의 가운데에 토레 안눈치아타(Torre Annunziata)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아마도 서기 79년 8월 24일에 폭발한 베스비우스 화산의 용암으로 덮이어 옛 도시의 흔적도 없던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작은 어촌이었던 것 같다.
16세기말에 사르노 강으로부터 토레 안눈치아타 시로 물을 끌어 오기위해 라치비타라고 알려진 구릉 밑에 터널을 파던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폼페이의 유적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매몰된 도시의 발굴은 오스트리아 점령기인 1709년에 “헤르쿨라네움”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폼페이의 발굴 작업은 1748년에야 시작되었다.
발굴 중1763년, 그 장소가 “폼페이”였음을 밝혀주는 비문(rei publicae Pompeianorum)이 발견되어 1600년의 세월동안 전설처럼 전해오던 고대 로마제국 시절, 로마에 버금가도록, 아니 어떤 면에서는 로마 보다도 더 화려하게 번영하였던 도시, 폼페이의 전설이 되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 후 영국 역사 소설가 E. G 리턴(1803 ~ 1873)에 의해 쓰여진 “폼페이 최후의 날”이 세상에 알려 지면서 더욱 세인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 오르게 되었다.
많은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기에 도시는 부유하였고, 화려하였기에 사람들은 영화와 향락 속에 쾌락을 찾아 방황하며 저지르는 방탕이 극에 달하였을 때, 예고없이 다시 폭발한 베스비우스는 단 18분만에 전 도시를 뜨거운 용암 밑에 파묻었다고 한다. 그 18분 동안에도 사람들은 살아가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온갖 행동들을 하고 있었던 그 순간의 생생한 모습이 인간화석으로 출토되었기에 더욱 유명해진 폼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1959년에 만들어 진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옛날 영화의 옛 기억을 되 살리며 폼페이에 도착하여 유적을 보았다
그 옛날의 건축 규모와 화려함! 그리고 잘 정비된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 되였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아직 다 발굴이 안되어서인지 생각보다는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 진한 아쉬움은 그 당시에 있던 그 대로 재를 뒤집어쓴 채 소멸된 환락가가 보수 관계로 개방이 안되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온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에 꽤나 보고 싶었는데 개방이 안되었으니 이걸 보러 다시 올 수도 없고…. 역시 속물근성은 항상 꿈틀 대도록 나는 아직도 남자인 모양이지? 허허허 (2006년 처음 방문 한 후에 적었던 감상문의 일부다.)
당시 도굴꾼들은 주로 웅장한 건물이나 박물관에 진열할 보물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굴은 1860년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가 발굴 감독이 되면서 종식되었다.
피오렐리는 발굴하는 동안 발견되는 많은 구멍들을 이상히 여겨 구멍에 석회를 부어보자 신체의 모형이 나오는 것을 보고 주형을 뜨는 기법을 개발했단다.
또한 발굴 지역을 정비하고 꼼꼼히 기록하며. 폼페이를 9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분류하고 거리의 각 문에 번호를 매겨서 각 집의 위치가 3개의 숫자로 편리하게 표시되도록 했다.
2017년에 다시 찾은 폼페이는 그간의 복원작업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현재 옛 폼페이의 3/4이 발굴된 상태로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래서 “낮에는 수많은 유동인구로 바글거리지만 밤이 되면 인적이 하나도 없는 유령도시”로 되 찾아지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도시, 폼페이가 되었나 보다.
되 찾아 지는 도시, 폼페이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유적지 입구로 사용되는 마리나 문(Porta Marina)
두 개의 통로로 되어 있다. 왼쪽 입구는 보행자를 위한 것이고, 오른쪽 입구는 소금이나 생선을 바다에서 운반해 오는 수레나 가축의 출입구였다. 그러나 요즈음엔 사람들이 이리로 들어 간다. 워낙 많으니까….!
공회장(Foro). 폼페이의 정치, 경제, 종교 생활의 중심지였다. 특히 3개의 계단이 가로막고 있어 마차가 들어갈 수 없는 보행자 전용 공간이다.
공중 목욕탕 탈의실과 사물함. 유일하게 천장이 무너져 내리지 않은 아취형 구조물이다.
목욕탕의 수증기가 천장에 붙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지 말고 옆으로 흐르라고 아치형 구조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 오히려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준 셈이다.
파우노의 집(Casa del Fauno)
정원에 춤추는 듯한 목신 파우노(팬)의 조각이 있어서 파우노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당시 최 상류층에 속하는 집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 보이는 조각품은 모사품이고, 진품은 나폴리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곳곳에 남아 있는 모자이크들
루파나레(Lupanare)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이 작은 방들은 창녀들의 영업 장소였다.
각 방문 위에는 다양한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일종의 방마다 봉사 가능한 메뉴였던 셈이다.
요즈음 나타나기 시작한 AI의 머리를 가진 sex robert만 없을 뿐 각양 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각양각색의 쾌락을 사고 팔던 쾌락의 거리였지만 지금은 그 당시의 영업을 안내하던 간판의 모사품을 파는 작은 가계가 옛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화석화된 여러 모양의 사람들.
보기 민망한 화석들은 다른 곳에 전시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이 흐르던 길(하수도?) 가운데 돌은 징검다리인 셈이다.
마차가 다니면서 마모된 돌
베수비오산이 왼쪽에 멀리 구름 속에 가려 있다.
음악
[김성종] [10:20 PM]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y34WEq616Bc
[김성종] [10:19 PM]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m326LNIRB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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