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2016년 한국

23 강화도 1 초지진

천천히 chunchunhi 2017. 2. 1. 09:33


23 강화도 1  초지진

 

강화도에는 마니산이 있다.

정상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전해오는 참성단이 있어 요즈음에도 전국 체전의 봉화를 채화하기도 하고, 103일 개천절에는 강화 개천 대 축제를 거행하는 산이다.

469m밖에 안 되는 과히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산의 정상에서 남쪽의 한라산과 북쪽의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각각 같단다.

 

육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화도는 고려의 개경은 물론 조선의 한양과도 가까웠고, 바다에 떠 있는 섬이었던 관계로 여러 차례 천도(遷都)와 몽진(蒙塵)의 땅이 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바다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침을 제일 먼저 받는 격전지가 되기도 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부터 강화도 곳곳에 진, 보와 돈대를 설치하였는데, 근래에 복원하여 관광지 구실을 하는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 돈대 같은 군사 시설을 볼 수가 있다.

진과 보는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사용하던 명칭으로 군사들이 주둔하던 성곽이나 군사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진은 보보다 규모가 조금 더 컸으며, 돈대는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 방어 시설로 그곳에 대포를 배치하였던 곳을 이른다.

 

옛날, 5.16이 일어 난 후 모든 사회단체의 행동이 제약 받아 오다가 조금씩 풀리어 질 때, 흥사단에서는 YKA(Young Korean Academy)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고등학생 아카데미와 대학생 아카데미를 조직하여 흥사단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배의 권유로 참여하기 시작한 고등학생 아카데미는 나의 청소년기에 많은 변화를 주었었던 것 같다.  명동의 대성빌딩에서 매주 모이는 아카데미 모임에서 친해 진 친구들과, 매월 모이는 산행 때마다 50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이 모이다 보니 등산대장인 김태석형님을 따라 다니며 제 3대 부관 노릇을 하던 인연은 오늘까지도 사랑으로 이어져 오고 있게 되었으니까.

그 때의 친구들 중 시간이 되는 몇 명이 함께 강화도를 찾았다. 옛날을 회상하며….

그 때만 해도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 강화도가 이제는 강화대교가 생겨 더 이상 섬이 아닌 번화한 도시로 변해 있었다.

시간적인 제약으로 마니산까지 오를 입장들이 못되어 새로 보수하여 놓은 진,보와 돈대를 들려 본 후 전등사에 가기로 하였다.

 

제일 먼저 찾아 본 초지진(草芝鎭)은 강화해협을 사수하는 12개의 진.보 중에 외세의 첫번째 침공 루트가 되는 곳이다.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그 뒤 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 함대(병인양요) 1871 4월 무역을 강요하며 침략한 미국의 아세아 함대(신미양요), 그리고 1875 8월에 침공한 일본 군함 운양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이다.

당시 프랑스·미국·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하여 조선군은 빈약한 무기로 대항하여 싸웠던 것이니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18759 20일부터 일본의 운요호와의 싸움은 결국 〈강화도 조약〉으로 이어지고, 일본 무역을 위해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조일수호조약)

 

1973년 초지진의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여 역사 교육 현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적 제225호다.


앞으로 전쟁없는 세월이 한 100년은 더 흘러야 성곽에 고풍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은 새로 축조된 고성이다.



성벽에서 갯벌위로 흐르는 서해 물살을 바라 보는 마음!  아마도 사진만큼 어두어진 건 아닐까?



다시 태어난 옛 대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