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쌍트 페트르부르크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도시가 St. Petersburg이다. 미국 Florida의 Gulf 만에도 있고 소련의 서쪽 끝, 발틱해의 동북쪽 끝에도 있다. 영어로는 “쎈 피터스버그”라고 발음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쌍트페트르부르크”라고 읽는다. 아마도 러시아 발음에 가까운 모양이다. 좀 오래전에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에게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잘 알려진 도시다. 여기서는 쌍트페테르부르크라고 하기로 하자.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핀란드 만 주위로 처음 러시아인들이 정착한 것은 8~9세기부터이다. 이 지역은 습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았으므로 버려진 땅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1611년에 스웨덴이 이 지역을 차지하자 표트르 1세가 북방전쟁에서 이 지역을 탈환한 후 수비를 목적으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짓기 시작함으로써 도시건설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표트르 또한 영어로는 “피터”요 그 어근은 “베드로”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이렇게 발음을 하였나보다.
표트르 1세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장대한 도시계획을 세우고, 이 요새 근처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새로운 도시,”상트페테르부르크”를 크고, 화려하게 짓게 하였다. 요즈음까지 사용 되고 있는 그 당시의 건물들이나 도로의 넓이를 보면 무척이나 멀리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던 모양이다.
1713년 모스크바에서 이 곳으로 천도하여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아주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진 도시로 성장하여였다. 1918년 혁명 후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지고, 1924년 레닌이 죽자 이 도시이름을 “레닌그라드”라고 부르게 되어 우리들에게는 더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소련이 한창 개방이 되기 시작하던 1991년 다시 옛 이름으로 바꾸어 쌍트페트르부르크가 되었다.
습지였던 이 지역에 도시를 세우기 위해서는 석조 토대가 필요했기에, 수많은 노예들이 습지를 돌로 메우는 데에 이용되었으며 가혹한 자연과 고된 노동을 이기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이때 죽은 노예를 습지로 던져버렸기 때문에 이 도시에는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볼쉐비키 혁명)의 발원 현장이었으며, 또 세계 2차대전 당시 1941년 8월부터 29개월 동안 독일군에 포위당한 상태로 40만 명이 아사(餓死)당하면서까지 지켜낸 도시라고 하여 “영웅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수도 모스크바 다음으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표트르 1세 등 역대 황제는 쌍트페테르부르크 건설을 위해 프랑스·이탈리아 등지에서 건축·조각의 거장들을 초청하였고, 엄청난 자원과 물자를 쏟아 부었다. 2백여년 동안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길 양편에 즐비해 있는 모습이 모스크바를 능가하며, 건축적인 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화로운 도시의 하나로 명성이 높다.
문화시설로는 키로프 기념극장, 푸슈킨 기념극장, 고리키 문화궁전, 러시아 민족박물관(옛날 미하일로프 궁전), 세계 유수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에르미타쥐 미술관 등이 있다. 또한 네바강 강변에 알렉산드르네프스키 수도원, 스트로가노프 궁전, 카잔 사원, 아니치코프 궁전 등을 비롯한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다. 그 밖에 페트로파블로프스크 , 분수로 유명한 여름 궁전, 성(聖)이사크성당 및 10월 혁명 때 혁명본부가 설치된 스몰리니 궁전, 제정시대 말기의 국회의사당인 타우리데 궁전 등이 있어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러시아의 대 문호 푸쉬킨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고 표현한 “쌍트페테르부르크”!
도시를 둘러 보노라면 “과연 혁명이 일어 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호화찬란한 도시다.
도시의 관문인 기차역 대합실의 천정화가 혁명의 분위기를 말해 주고 있다.
넵스키 거리의모습. 그 옛날에 벌서 이렇게 넓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네바강변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스웨던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지어 졌지만 이 지역을 스웨던으로부터 탈환 한 후 스웨던의 재침공은 없었다.
네바강과 이삭 성당 사이에 세워진 피터대제의 기마상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성당을 본 따서 지으라는 바벨 1세의 명령으로 10년만에 지은 카잔성당. 그러나 모양은 비슷해도 규모는 비할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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