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북 유럽 여행기

17 겨울궁전 – 에르미타쥐

천천히 chunchunhi 2013. 10. 13. 04:56

17 겨울궁전 에르미타쥐

 

에르미타쥐, “현자의 방이라는 뜻을 가진 소련의 국립박물관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부르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칭송을 받는 박물관이다.

대영박물관은 입장료가 없다. 왜냐하면 전시하는 거의 대부분의 물건들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시절, 세계의 곳곳에서부터 약탈 내지는 훔쳐 온 장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르미타쥐는 당당히 입장료를 받는다. 성인 하루 입장료가 450루불($15.00)이고 사진촬영을 하려면 100루불, 캠코더소지시에는 250루불을 더 내야만 한다.왜냐하면 80% 이상의 소장품이 돈을 주고 사 왔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얼마만한 곳일까
?
2006
년 상트페트로부르크가 출판한 도록<에르미타쥐>에 의하면 소장품은 약 300만점에 달하며 약 22Km에 달하는 동선을 따라 전시한 작품들을 매 작품당 10초씩, 하루 8시간을 1 365일 본다고 하더라도 약 3년이 걸린다고 하며 1,786개의 문과 창문이 1945, 계단이 120개나 된다는 둥, 흥미로운 데이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워낙 소장품이 많다 보니 계절에 따라 전시품목을 바꾸어 놓기 때문에 언제 가는가에 따라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틀려지게 된다.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의 직계가 단절 된 후의 격동기에 정권을 잡은 엘리자베타 여제(1741-1761)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그 또한 후사가 없었다.
엘리자베타 여제는 자신의 권력을 이어 받을 후사를 얻기 위하여,아니, 자신의 권력을 좀 더 오래 지속시키기 위하여 정치적으로 그다지 영향력이 없던 가문에서 황태자를 간택하고, 며느리로는 독일 혈통을 가진 프로이센의 작은 공국의 공녀였던  소피 프리데리케를 간택하게 된다
.
러시아로 시집 온 소피는  예카테리나라는 세례명을 얻은 후 그의 정치적 야망과 수완으로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면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예카테리나 2세가 되었다
.
1754
년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부채에 대한 상환금으로225점의 그림을 받아 오게 되는데 이 것이 에르미타쥐의  1차 수집품이 되었다
.
예카테리나 2세가 이 수집품들을 궁에 뫃아 놓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감상하며 조용히 즐겼다는데에서 에르미타쥐라는 이름이 유래하게 되었단다.  그 후 여제는 4천점 이상의 회화작품을 사들여 동궁의 공간을 장식해 나갔고 작품 수장을 위해 계속 확장한 후 1852년부터 일반인에게도 공개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1917
3

1
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굶주림에 지친 노동자들의 파업이 도화선이 되어 로마노프왕조의 몰락을 가져 온 혁명이 성공한 후  겨울 궁전은 러시아 임시 정부 청사로도 쓰였다.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던 러시아에서는 2월이 되고,  그레고리우스력을 사용하던 서방의 모든 나라에서는 3월이 되어  러시아에서는 2월 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해 11(러시아력으로는 10), 볼셰비키 정권의 겨울궁전 급습은 또 다른 혁명이 되어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소련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결국 지나치게 화려 하였기에 혁명의 대상이 되어 타도당한 귀족들이 수집하여 만들어 놓은 문화공간에 전시 된 예술품들을   몰락한  혁명의 후손들이 열어 놓은 개방정책에 따라서 소련을 적국으로만 알고 있던 나 같은 사람마저 속 편히 와서 관람하며 그 옛날 귀족들의 향취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
왕조는 단절되었어도, 혁명은 몰락하였어도 이곳 역시 조상의 덕을 단단히 보고 있는 몇 나라 중의 하나인가 보다.

 

 

 

네바강에서 본 에르미타쥐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앞에 서있는 군중들. 결국 이런 군중들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여야 하는 관람이 된다.–

 

 

 

 

 

 

산돼지로 변한 아레스(마르스)가 엄금니로 아도니스를 물어 제키는 조각.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모르고 보면  뭐가 뭔지 모를 것들이 참 많다
.
이 때 흘린 피에서 아네모네가 피어 났다고 한다.

 

 

 

 

 

 피카소의 " 여체 "  
피카소도 처음부터 이렇게 그리지는 않았었는데 뭔 일이 그를 이렇게 바꾸어 놓게 되었을까
?
무지 비싼 그림이지만 왜 나는 여기서 여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아무래도 싸구려 체질인 모양이다.

 

 

 

 

 

 

망측하게도 늙은 할베가 젊은 여성의 가슴을 빨고 있다.
허지만 뜻밖에도 이 두사람은 부녀지간이다
.
아버지 시몬이 감옥에 같혀 굶겨 죽이는 벌을 받게 되자

면회간 딸 페로가 아버지를 살리려고 몰래 모유를 먹이는 장면이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인 막시무스가 쓴 책 <기념할 만한 행위와 격언들>에 나오는

효성이 지극한 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루우벤(Peter Paul Rubens 1577-1640)이 그린 그림이다.

 

 

 

 

 

 

 

앙리 마티스의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

 

 

 

 

 

화려한 복도의 천정을 가득 메운 그림들

 

 

 

 

금으로 만든 공작 시계

 

 

 

수천조각의 공작석(말라카이드)을 모자이크하여 만든 초대형 화병.

이 꽃보다도 이쁘게 만든 큰 화병엔 얼마나 많은 꽃을 꽂아 놓아야 꽃으로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