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강물은
2012년 1월 7일 토요새벽
찬송: 어저께나 오늘이나, 550 시온의 영광
창 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2012년 새해 첫 토요 새벽기도 모임입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한해를 되 돌아 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일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일들을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영위하는 믿음의 공동체, 온누리 교회에도 목사님이 안계신 가운데 매주 예배를 드리며 교회로 모이려니 참으로 어려운 시간들이었지요. 도 많은 교우들이 우리들 곁을 떠나 가기도 하시었었읍니다.
2012년 임진년, 용의 해에는 우리 모두가 어서 빨리 새 목사님을 모시고 용처럼 용틀음을 하며, 크게 지지개를 켜서 우리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또 온누리 교회가 부흥 발전하는 새해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 모두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그 오는 시간에 기대를 가져 봅니다.
조금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게 해 달라고,
우리의 육신이 조금 더 건강하여지게 해 달라고,
우리의 자녀들이 조금 더 형통하게 번성하게 하여달라고…
나에게 조금 더 신실한 믿음을 달라고… 등등 여러가지 바램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각오 속에 새해를 마지하지만 그건 어쩜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들의 연속, 순간의 연속에 있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을 우리는 귀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숨쉬는 그 순간 순간이 모여서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이 모여서 날이 되고,
그 날이 모여서 달이 되고, 그 달이 모여서 한 해가 되고,
그 한해, 한해가 모여서 세월이 됩니다.
그 세월을 쌓는 동안 우리의 인생이 태어나기도 하고, 또 죽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똑같은 순간을 보내고, 똑같은 시간을 지내는 데도 우린 그 시간에 대해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괴로울 때의 하루 하루는 무척 길고 지루하게 느끼면서도
그 하루 하루가 변하여 세월이 되었을 때엔
그 길고 지루하기만 하던 시간들이 무척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 하게 됩니다.
이렇게 주관과 객관에 따라서 다르게 지나가는 시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아마도 창 1:5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읍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여기서부터 시간이 시작되었던것 같읍니다.
사람들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변하는 계절을 보면서 그것을 일상 생활에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기록을 하다 보니 그게 우리 말로 달력이 되었읍니다.
달력이라는 말은 결국 달의 움직임을 기록하였다는 이야기이지요.
우리가 음력이라고 하는 계수방법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것을 달 월자를 써서 월력이라고도 불렀지요.
인류의 문화가 발전한 곳에는 다 이렇게 시간을 계수하는 방법이 있었읍니다.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하는 태양력이 있었는가 하면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여 만든 태음력이 있었읍니다.
우리가 요즈음 1주일 7일이라는 단위도 어떤 때에는 10일이 된 적도 있고, 8일이 된 적도 있고 6일이 된 적도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그레고리력을 만들어 오늘까지
세계가 공용하게 되었읍니다마는 이 또한 아직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고하니 놀라울 뿐입니다.
달력의 역사를 드려다 보노라면 그 옛날에 어떻게 그렇게도 정확하게 관측을 하여 계수를 할 수 있었는지 거저 놀라울 뿐입니다.
성경에서는 창세기 때부터 사람의 나이를 계수하는 달력이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출애급기 12장 2절에 와서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하고….”라고 말씀하시면서 새해를 정해 주시었읍니다.
이것이 유대력의 시작이 되었지요.
이 때가 언제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재앙, 즉 장자들을 다 죽이시기 두 주일 전에 모세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새해가 시작되고 두주일이 지난 때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교절이라고도 하고 또 유월절이라고도 하지요. 우리의 달력으로는 3월 에서 4월에 해당하게 되고, 이 즈음에 부활절이 끼이게 됩니다.
오늘 제가 말씀 드리려는 것은 달력을 만든 그 놀라운 지혜가 아니라 그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그 순간을 보내어야 할 것인가?
또 어김없이 찿아 온 새해에는 과연 어떤 각오로 그 순간을 보내면 좋을 것인가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순간 순간을 살아 가면서 세월을 만들어 가지요.
우리 속담에 “한번 흘러간 강물은 되 돌아 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읍니다.
또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 잡을 수 없다”라는 말도 있읍니다.
이런 말도 있지요,
“한번 뱉은 말은 되 담을 수 없다”
이 모든 말들이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 진 일들을 우리는 되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읍니다.
우리가 인식을 하였을 때에 그건 벌써 우리를 지나간 과거의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상과학 소설처럼 우리가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로 날라 가면 혹시 오늘 우리가 후회하는 그 일을 안 하고 넘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또 똑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오늘의 나로 그 때에 간 것이 아니라 그 때의 나로 돌아갔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한번 지나가면 되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인데도 우리에게는 한 순간도 흐르는 시간을 잡아 둘 수있는 능력이 없읍니다.
여호수와는 아모리 사람들과 싸울 때 하나님에게 부탁하여 태양을 기브온 위에 머므르게 한 적이 있었지요.
즉 시간을 서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이 들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어찌 인간 여호수와가 할 수 있는 일이었겠읍니까?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매 순간 마다 맞이하는 그 순간이 한번 밖에 없는 가장 귀중하고, 가장 중요한, 그리고 되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한번 뿐인 시간으로 인해서 우리의 내일이 결정되어지기 때문입니다.
한번 흘러간 강물은 되 돌아 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흘러간 강물로 인해서 강 줄기가 만들어 지고
그 강줄기가 있기에 새로운 물이 그 강줄기를 따라 흘러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그냥 흘러 가는 것만이 아니라 흐르면서 그 강줄기를 변하시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가 한참 후에 뒤 돌아보면 많이 변해 진 강줄기를 보게 되지요.
그래서 그 순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네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집을 떠나는 그 순간이 있었기에 비록 그 여정에서 힘든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복의 근원으로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가 또 한 순간, 하갈과 동침함으로 인해서 오늘까지도 끈임없이 서로가 싸우고 죽이는 전쟁의 근원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나아만은 의심하여 요단강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에는 병에서 나을 수가 없었지만
그 의심을 떨쳐버리고 요단강에 들어가는 순간에 문둥병에서 나음을 입을 수가 있었읍니다.
롯의 아내가 궁금증을 못 이겨 뒤를 돌아다 본 그 순간에 소금기둥으로 변해서 지금도 사해 서편에 서있음을 이젠 벌서 오래 전이 되었지만 1차 성지 순례 대 보고 온 적이 있읍니다.
가야바의 앞 마당까지 따라 들어간 베드로가 “나는 아니라”고 말을 한 그 한 순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슴을 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자책의 시간을 가졌었어야 했읍니까?
델리라의 유혹에”나의 힘은 이 긴 머라털에서 온다”는 한 마다를 한 그 한 순간때문에 삼손은 그의 사사된 인생을 파멸에로 몰아 넣었읍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외치며 돌팔매를 던진 그 순간 때문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위에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우리아를 전쟁에 보내 죽게하라”고 명한 그 한순간 때문에 벌거벗은 채로 아들을 피하여 도망다녀야만 하게 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지혜의 왕으로 숭상받던 솔로몬 또한 그 많은 후궁들이
자기들이 믿어 오던 신들을 후궁 정원 안에만이라도 세워놓게 하여 달라는 간청을 승락한 그 한 순간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멸망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어느 한 순간이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들을 엄청나게 다르게 만드는 순간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그 한 순간의 결정으로 인해서, 그 한 순간에 나오는 말로 인해서 우리의 인생 전체가 송두리채 바뀌어지는 경우를 우린 수도 없이 들어 왔고 또 보아왔읍니다.
그 순간의 연장선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면서도 사실 우리는 그 순간을 그렇게 심각하게, 신중하게 보내고 있지는 않는것 같읍니다. 그 바람에 후회하는 삶을 살면서도 말이예요.
이제 새로 시작되어지는 새 시간이,
새 순간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읍니다.
이 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마지하면 좋을까요?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보면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셨읍니다.
이어 13절에는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라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읍니다.
2011년은 흐르는 강물처럼 벌써 지나가 버렸읍니다.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줄 현재에 충실한
2012년이 되어야 하겠읍니다.
우리 교회로서는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 언제인가는 오시게 되는 목사님과 그 순간을 염원하는 우리,
어떤 목사님 오시게 될지 잘 모르지만 그 믿음이라는 하나의 마음에 함께 힘을 합하는 새로 시작되는 시간이 되기 위하여 우린 서로가 조금 더 성실히, 열심히 노력하면서 성령의 띠로 묶이어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새해가 되도록 기도하면 좋겠읍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읍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셨으니까요.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서로 대접하기를 기쁜 마음으로 하면 좋겠읍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각각 받은 은사대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선한 청지기같이 성실히 일하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읍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들이 앞을 가로 막고, 육신이 병들며, 심신이 나약해 지는 시간들이 다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비록 이런 시간에 당면한다 하더라도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마껴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읍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베드로 전서 5장 8절에 있는 말씀처럼
“근신하는 새해, 깨어 있는 새해” 가 되어
순간 순간 굴러 들어 오는 복을 많이 주워 담을 수 있는 새해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 드리며 말씀을 마치겠읍니다.
함께 기도 드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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