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릿
아드리안해의 진주라고 일컬어 지는 아름다운 해안성곽도시 드보르브닉을 떠나서 아드리안해의 북쪽에 있는 스프릿으로 떠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성곽도시의 고색창연한 식당에서 먹은 점심을 생각하며 달리는 버스의 차창으로 아드리안해가 비쳐지는가 싶더니 금방 척박하기 그지 없는 야산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지도를 보면서 오늘 오후의 드라이브는 해안을 껴서 참 좋겠다고 생각을 하였었는데…..
해안을 끼고 구불구불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내륙에 새로 만든 큰 길로 가는 모양이다.
드보르브닉으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를 두개로 나누어 놓도록 좁게 해안까지 차지한 슬로베니아 국경을 입국하였다가 잠시 후에 빠져 나가는 절차를 거쳐서 별 볼일 없는 산길을 달려 스프릿에 도착한 것은 오후 늦게였다.
항구 바로 앞에 지어 진 성곽,
이 성곽 바로 아래까지 바닷물이 출렁이었었다는데 지금은 수면이 낯아졌는지 대로가 그리고 광장이 바다와 성벽사이에 있었다.
넓은 광장에 심겨진 가로수들은 다 열대 야자수였다.
그만큼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더운 지방이 된 모양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의 성곽이라는 배너가 달려 있는 밑으로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어둗컴컴한 가운데 높은 천정과 굵은 기둥사이로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이 곳이 성의 지하실이란다.
그 옛날에는 여기까지 물이 들어 왔단다.
조금 지나 계단을 올라가니 광장이 나온다.
그래, 배에서 내리면 여기로 올라 왔겠지….
오른 쪽으로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여름 궁전자리가 있고 그 안에 높은 종각과 성당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로들을 따라서 지어진 많은 집들.
4~5층이 되는 집들에는 엘레베이터도 없을 텐데…. 그래도 모두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창문에 널려 있는 빨래들이 사람내음을 뿜으며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으니까….
골목골목에는 화랑도 많았고, 유명제품을 파는 가게들도 많았고….
좁은 골목을 돌아 돌아 광장으로 나오니 마치 베니스의 성 마르코 광장과 같은 모양의 광장이 나타났다.
지은 양식은 거의 같은데…. 조금 스케일이 작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한쪽은 성당으로 막힌 것이 아니라 넓은 바다로 탁 트이어 전망은 오히려 베니스보다도 더 좋은 것 같았다.
항구에 지어진 목욕탕 건물에 붙어 있는 조각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제 오늘 저녁에 잘 곳으로 가기 위하여 또 서들러야 하는 모양이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플리체비트로 간다니까…
이곳의 설명은 이곳의 역사를 발췌하면서 조금 더 하기로 하자.
스플릿
아드리아 해에 면하는 항구도시이며, 크로아티아에서 수도 자그레브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역사가 깊은 도시로, 기원전 그리스인들의 거주지로 건설되었다. 그 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가 305년 이 곳에 거대한 궁전을 지어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였다. 7세기에 슬라브족이 이 곳으로 들어와 궁전에 정착하였다.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궁전은 비잔틴, 고딕 건축 양식 등의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비롯한 옛 유적이 많아 관광객이 많이 몰려든다. 기후가 온화하고 디나르알프스 산맥과 아드리아 해가 조화를 이룬 경치가 아름다워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반도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에 수심이 깊은 보호항이 있다. 이 항구와 중앙에 자리잡은 지리적 위치 및 북쪽으로 연결되는 훌륭한 철도·도로 교통망이 결합되어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 되었다. 스플리트 항에는 대규모 조선소가 있다. 그밖에 이 도시에서는 플라스틱·화학제품·알루미늄·시멘트 제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시와 섬들을 연결해주는 여러 척의 연락선이 운항되고 있으며, 1962년 이후 국제공항을 확장시켰다. 대학교(1974)와 해양학연구소가 있다. 항도인 리예카(이탈리아어로는 피우메)를 이탈리아에 일시적으로 빼앗긴(1945 반환) 1924년부터 이곳의 항만시설이 개발되었다.
옛 시가지의 중심 부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안에 자리잡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5년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313년 사망하기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거대한 이 궁전(295~305 세움)에는 바다를 향하는 두께 2m, 높이 22m의 벽과 북쪽을 향하는 높이 15m의 벽이 있다. 원래 이 궁전에는 4개의 성문과 16개의 탑이 있었는데, 그중 3개의 탑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옛날에는 아드리아 해의 파도가 남쪽 벽까지 밀려왔으나 이제는 가로수가 줄지어 심겨진 산책로로 인해 성벽까지 이르지 못한다.
615년에 살로나이를 약탈한 아바르족이 이 궁전에도 피해를 입혔다.
당시 주민들은 처음에 섬들로 피했으나 그후 620년경에 다시 돌아와 이 궁전을 피신처로 삼고 주거지를 스팔라툼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성벽과 기둥들까지 포함하여 면적이 4ha인 궁전 안에 자신들의 집을 지었다.
이 궁전은 로마 시대의 궁전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잘 보존된 것이며, 그리스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반씩 섞인 과도기적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 궁전의 평면은 로마 시대의 야영지처럼 직4각형이고 4개의 길이 중앙에서 만나도록 설계되었으며, 길마다 거대한 아케이드가 늘어서 있다. 북쪽 끝에는 다수의 노예·하인·수비대를 위한 숙소가 있었으며 남쪽 끝에는 웅장한 아치형의 황실 거처와 집무실들이 있었다.
653년 이 시 최초의 주교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영묘를 대성당으로 바꾸었는데 이 성당은 훌륭한 프레스코, 대리석으로 만든 설교단,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각물로 유명하다.
주피터 신전은 오래전에 세례당으로 바뀌었으며, 14, 15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종탑이 추가로 건설되었다. 이 궁전이 세워진 이래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거주해왔으며, 로마 시대뿐만 아니라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건축물과 장식물들이 있다. 크로아티아 당국은 로마 시대의 유적들을 더 발굴하고 중세 초기의 유물들을 밝혀내기 위해서, 절충적인 양식의 건축물들과 현대적인 특색들을 보존하기 위해 힘써왔다. 지금도 주민들은 이 궁전을 박물관으로서가 아니라 시의 중심으로 여긴다. 대성당과 세례당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기둥이 늘어선 중정(中庭)에는 카페가 있다. 로마 시대 양식의 아케이드에는 가게들이 즐비하며 궁전의 동문 바로 바깥쪽에는 이 시의 주요시장이 있다. 그러므로 관광객들은 시민들의 빨랫줄 아래를 거닐면서 로마 시대 및 그 이후 모든 시대의 건축유적을 보게 된다. 박물관으로는 크로아티아의 조각가인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들을 전문적으로 소장한 박물관과 무기 박물관이 있다. 베네치아풍의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사는 민속학 박물관으로 쓰인다.
주(主)광장의 서쪽과 남쪽에는 중세에 옛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생긴, 미로처럼 얽힌 좁은 가로망이 있다. 벨프리 교회의 성모 마리아 종각(1100경)은 달마치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812년부터 이 도시는 비잔틴 제국의 주요도시로 발전했다. 베네치아(998)와 크로아티아(1069)에게 잠시 점령당한 후 1105년에 헝가리-크로아티아의 명목상의 종주권을 인정했으며, 경쟁관계에 있는 트로기르와 가끔 싸웠다. 1420~1797년에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고 1797~1918년에는 오스트리아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오스트리아의 통치기간중 1808~13년에는 잠시 프랑스에 넘어가기도 했다. 1918년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 항만시설이 독일군과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옛 도시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80년의 지중해 연안 경기대회를 위해 새 종합경기장이 건설되었다. 인구 175,140(2001).
1.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cletian Palace) :
295~305년에 지은 고대 로마의 궁전.
3만㎡의 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엄있는 로마유적 중 하나.현재는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개조됐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자신이 퇴임한 뒤에 지낼 거처로 지었다(305년 권좌에서 물러나 313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음). 이곳은 전체면적이 4㏊나 되는 거대하고 웅장한 별장 저택일 뿐 아니라 도회식 궁전 겸 해안 요새였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성벽은 총길이가 215m인데, 아드리아 해와 맞닿은 쪽은 높이가 22m, 두께 2.1m에 이르며 북쪽면은 18m 높이이다. 이 성벽에는 16개의 탑과 4개의 성문이 있었다. 북문은 포르타 아우레아(金門), 동문은 포르타 아르겐테아(銀門), 서문은 포르타 페레아(鐵門), 남문은 포르타 아이네아(靑銅門)였다. 평면이 직4각형인 이 궁전은 마치 로마 병영처럼, 폭 11m인 4개의 아케이드 통로가 중앙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황제의 거처는 궁전 남쪽을 차지한 2개의 4분(分) 구획지에 있고, 이 둘레를 따라 폭 7.3m, 길이 159m인 아케이드 회랑이 달마치야 해변과 바다쪽으로 개방되어 있었는데, 산책과 예술품 전시에 이용되었던 것 같다. 주피터 신전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7세기 뒤에 대성당으로 바뀜)는 황제의 거처가 있는 중정 안에 있었다. 손님이나 관리인들은 북쪽 지역에 있는 4분 구역지에 수용되었다.
7세기에 아바르족들이 쳐들어와 궁전을 크게 훼손했지만, 639년 그들의 침략이 그치자 폐허가 된 살로나 신(살로나이:디오클레티아누스의 출생지) 주민들이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는 궁전 안에 대피소를 만들었고 옛 벽과 기둥·장식물들을 모아 그들의 방식대로 새집을 세웠다. 이 지역이 지금의 스플리트의 '구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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