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토론토지역/동 유럽 여행기

부다페스트 5 미레니움광장(영웅광장)

천천히 chunchunhi 2010. 8. 18. 06:00

 영웅광장 일명 미레니움(천년) 광장

 

 

 

 

 

 

 

 

 

 

 

 

 

 

 

영웅광장 일명 미레니움(천년) 광장

 

896년 헝가리의 마자르족이 이곳 판나노니아 평원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헝가리 건국 1000, 1896년에 시작해서 1959년에야 완공을 본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36m 높이의 기둥 위에 가브리엘 대천사의 조각상이 오른손에는 헝가리 왕관을, 왼 손에는 로마 교황의 십자가를 들고 서있고, 기둥 아래에는 마자르의 7 부족장들의 기마동상이  세월에 파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무명용사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위병들이 마네킹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었다.

 

광장 주위로 크게 반원을 이루며 서 있는 아치에는 역대 왕들과 영웅들의 동상이 서 있었다.

이를 보려 모여드는 관광객으로 그 넓은 광장이 복작 복작하고….

이 와중에서도 함께 온 뉴욕의 일행중에 한 여인은 광장에 드러 누워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ㅎㅎㅎ

 

이 광장의 좌측에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예술 궁전과 우측에는 순수미술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뒤로는 시민공원이 넓게 펼쳐져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각 국의 대사관들이 모여 있단다. 한국 대사관도 머쟎은 곳에 있다지만 보지는 못하였다.

광장 맞은 편에는 노란색으로 만든 지하철 입구가 있었는데….

헝가리가 영국보다도 먼저 영국기술에 의해서 지하철을 놓은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그 지하철을 지금도 사용한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타 볼 기회가 없었지만아마도 무척 낡았으리라

 

영웅광장에서 영웅들의 체취를 맡으며 과연 어떤 사람들이 영웅일까…? 하는 상념에 젖어 보았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

그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 희생되어져야만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또 무엇일까?

점심을 먹으러 간단다. 그리고 빨리 떠나야 한단다.

오늘은 우리가 이곳에 온 처음으로 국경을 통과해야 한단다.

Kaltenberg라는 식당으로 갔다.

엄청 큰 오래된 건물의 지하실을 개조한 식당인데 그 인테리어가 참 인상적이었고,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부지런히 점심을 먹고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하였다.

 

 

헝가리 공화국(Magyar Köztársaság 머저르쾨즈타르셔샤그

홍아리(洪牙利)(중국에서는 흉아리(匈牙利)))는 유럽에 있는 내륙국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이다.

헝가리의 주민은 대부분 우랄족에 속하는 헝가리인이다.

 

헝가리의 황금기는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고 16세기 말,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의 나머지 땅마저 지배하게 되어 끝이 났다. 17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가 헝가리 땅을 전부 차지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아래에 있던 헝가리는 1867년 오스트리아와의 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자치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1차 세계 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1918 10 31일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했지만 전쟁 전의 영토와 인구의 대부분을 중부 유럽의 신생 독립국들에게 내주었다.

 

1919년에는 공산 혁명이 일어나 헝가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지만 루마니아가 침공해 소비에트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前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군 제독이었던 미클로시 호르티를 집권시켰다.

 

호르티는 1930년대에 나치 독일의 강요로 동맹 관계를 맺었다. 히틀러는 헝가리에 있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헝가리를 침공하여 호르티를 나치 합작자로 대체해야 했다. 그 때문에 나치 독일은 호르티는 물론 아들까지도 감금했고, 2차대전 말기에 소련군이 풀어주게 된다.

 

 공산 정부의 통치 

히틀러의 패배 후 소련군이 진주한 헝가리는 다시 공산 정부 아래에 들어갔다. 1956년 헝가리는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바르샤바 조약 탈퇴를 선언했다(헝가리 반공시위). 그러자 소련군이 개입, 독자 노선 추구를 이끈 임레 너지 총리를 사형시키며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그러나 끈임없는 투쟁은 결국1980년대 말 바르샤바 조약 폐지를 주도하고 다당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소련 해체 이후부터 지금까지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헝가리는 서유럽 국가들과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며 199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2004 5 1일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헝가리는 지금까지도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여 2007년에 반정부 폭동이 일어난 바 있다

 

부다페스트(Budapest)

 

헝가리 평야의 북서부, 도나우강 연안에 걸쳐 있는 도시이다. 부다와 페스트는 원래 별개의 도시로 발달였다.

부다는 2세기부터 파노니안(Panonian) 지방의 로마의 군() 주둔지 아쿠인쿰으로 알려졌다. 14세기경부터 부다는 헝가리의 수도가 되고, 페스트도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872년 부다와 페스트를 합병하여 부다페스트가 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에 인근 소도시를 합병하여 대()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부다는 왕궁의 언덕·겔레르트 언덕 등이 강기슭 근처까지 뻗어 있고,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다. 페스트는 저지에 자리한 상업지역으로, 주변지구에 공장과 집단주택이 들어서 있다.

정치의 중심지로서 중앙관공서, 국회의사당 등이 있고, 문화의 중심지로서 과학아카데미·종합대학(에트뵈스로란드대학)·의과·농과·경제 등 단과대학 외에 많은 도서관·박물관이 있다. 그 밖에 전통을 자랑하는 음악학교·국립극장 등을 포함한 많은 극장이 있다.

관광지로서의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낀 풍경의 아름다움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사적(史蹟)으로는 부다 북부에 로마시대의 유적 아쿠인쿰(Aquincum) 등이 있다.

부다페스트는 도시 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도나우강(Duna)

볼가강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며,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알프스 북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등 각 국의 수도와 영토를 지나 흑해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 강은 헝가리 수도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부다와 페스트로 양분하면서 흐르고, 두 지역을 세체니다리, 엘리자베스다리, 자유의 다리 등을 통해서 오고 갈 수 있다. 부다 지역 강변에는 왕들이 머물렀던 왕궁과 왕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마차시교회, 외부의 적을 어부들이 단합하여 물리쳤다는 어부의 요새가 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여전히 부자들의 전유물 일 것 같은 고급주택들이 숲 속에 박혀 있다. 페스트 지역 강변에는 영국 국회의사당 빅벤을 닮은 고딕 양식의 헝가리 국회의사당이 있다. 상업적이면서 서민적인 느낌을 풍기는 이 지역의 국회의사당은 더이상 왕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