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지천인 바닷가에 물을 가져 오려고 힘드려 만든 수로.
그래, 물이라고 다 마실 수 있는 물이 아니니까....
세월의 흐름 속에 부서졌지만... 정말 잘 만들었다. 2000년을 견뎌 오도록...
외부로 부터 오는 침략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성곽의 견고함...
그 때나 지금이나 결국 망하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적 보다는 내부에 있는 반역이 더 많지 않았을까?
순례기 11 가이사랴
파란 지중해 바닷물이 하얗게 부서지며 포말을 이루고, 그 포말마다에서 빛나는 찬란한 햇빛. 하늘과 바다와 땅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지중해변의 고도 가이사랴에 왔다.
바다 건너 저 편에 앉아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의 권력층에 상납하며 자신의 부귀영화를 보장 받고자 했던 헤롯의 작품이다.
잘 지어지고 정비된 항구 도시.
그래서 많은 교역이 이루어 지고, 많은 여행객들을 더 큰 세상으로 옮겨 주던 항구 도시. 그 옛날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면서 배에 실리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래서 서방으로의 전도의 시발점이 된 곳 가이사랴!
동방의 자그마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서방의 큰 나라에 와서 살면서 이제 그 서방전도의 시발점이 되었던 지중해변의 도시 가이사랴에 서서 저 멀리 큰 바다 넘어 있는 로마를 바라보며 페허를 거니는 감회를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그 모든 영화는 이렇게 폐허가 되어 관광객을 부르고,
그 권력의 정점에 서서 "조금 더…"를 바라던 욕심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후세들의 이야깃꺼리 밖에는 안되는데…
이럴 때 언어의 마술사가 되지 못함이 조금 후회키우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24-25)"
폐허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의 위용은 대단하였다. 그 무대에 올라서서 우리 교회의 교가를 합창하였다.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을 받은자 주께서 이자리에 함께 계심을 믿노라…"
아주 투명하도록 강열한 태양의 조명을 받으며……
발에 채이는 것마다 다 유적이요 유물들이다.
그 돌 하나 하나에 새겨진 장인정신, 예술성!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혼은 살아서 우리를 부르며 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데 오늘의 우린 과연 앞으로 2000년 후의 우리 후손에게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발달된 문명의 이기들? 컴퓨터나 자동차들?
부서지고 녹 쓴 이런 것들의 잔해를 보면서 우리의 후손들은 무어라고 말 할까?
이런 것들은 지금 당장도 우리에게 골치를 아프게 하는 폐품들인데….
크게 지어지는 건물들도 거저 부서진 콩크리트 조각 아님 유리 조각이 되고 말지 이렇게 부서진 조각마다에서 살아 움직이는 혼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옛날의 권력에 동원된 노예들의 삶이 불쌍하다고?
글쎄다.
그네들에겐 이런 장인정신의 발휘가 생업이었을 테고, 오늘의 우리 또한 생업을 위해서 건설을 하는 것인데 그 근본이 무에 다르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십자군 전쟁의 상혼을 보면서 거니는 감회는 두고 두고 나의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종교와 예술과 전쟁과 승리와 패배속에 교차되는 희열과 참담함.
그 모두가 결국은 조금 더 잘 살아 보자는 살아 생전에 펼쳐지는 파노라마일진대 그 유한한 삶의 후에 오는 영원한 삶은 과연 어떠할까?
그 죽음 후에 있을 영원한 삶을 위해서 유한한 삶을 살아 가면서 겪어야 하는 삶의 투쟁!
승리 하기 위한 노력을 위해서 끌어 들이는 수단이 젊어서 공부와 나이 들어 찿는 참 믿음이 아닐까?
해변가를 따라 끝이 안보이도록 지어 진 수로를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면서도 느껴지는 아이러니!
바로 그 수로 옆에 그득히 찰랑대는 바닷물을 보면서도 먹을 수 있는 물을 위해 이렇게 큰 공사를 하여야 하는 우리의 육신의 한계가 새삼스럽다.
물은 물이로되 먹을 수 있는 물과, 먹을 수 없는 물이 있음을 보면서
신은 신이로되 믿을 수 있는 신과 믿을 수 없는 신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신이 믿을 수 있는 신보다는 엄첨 많다는 걸 이야기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믿을 수 있는 신을 믿기 위해서는 이렇게 힘들여 수로를 건설해야 하듯이 쉬임없는 노력 또한 지극하여야 하리라.
그 당시라고 왜 유혹이 없었겠는가!
"그냥 바닷물을 마시고 말지 뭐하러 이렇게 힘드려 수로를 건설하는가?"라고.
마치 요즈음 제 교회들에서 "거저 쉽게 편하게 믿고 말지 왜 그렇게 힘드려 극성을 떨며 믿어야 하느냐? 하나님만이 신이 아닌데…"라고 유혹하듯이 말이다.
물이야 한 목음 마셔보고 뱉으면 기껏 해야 설사 몇번하고 말겠지만 한번 밖에 없는 삶을 놓고도 이런 도박을 할 수가 있을까?
나는 지금 무얼 마시고 있을까?
마실 수 있는 물에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가 있다고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예수님은 지금쯤 어디에 와 계실까?
다시 한번 지중해의 바다와 지금은 말라버린 수로를 바라보며 버스에 올랐다.
다음 행선지 갈멜산으로 가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신과 믿을 수 없는 신과의 결전장 갈멜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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