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는 이렇게 넓은 공간도 있었다
좁은 입구 낙서가 보인다. 어째 한국말 같으다
통로를 막는 돌 문
넓은 길
좁은 길
2차 순례기 16 데린구유 지하도시
버스를 타고 그 영이 난무한다는 코냐를 빠져 나와 달리기 시작하였다.
벌리 보이던 야산들이 슬금 슬금 자취를 감추더니 평야, 눈 끝이 닿지 않는 평야지대다. 어쩜 땅이 그리도 넓고 반듯할까?
아직 싹이 안나서인지, 아님 경작을 쉬는 해가 되서인지… 몇몇 밭은 새 싹이 파아랗게 있는데 몇몇은 누런 황토색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고달픈 나그네 길이 아니라 시원한 벤즈 버스에 앉아 여유롭게 가는 우리의 길이 끝날 때가 가까워 오는 모양이다.
끝간데 없이 넓기만 하던 평야가 슬금 슬금 없어 지더니 조금씩 야산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시간 또한 점심시간이 되어 왔으니까….
점심은 동굴 식당에서란다.
버스에서 내리니 야트막한 야산 위로 돌을 쌓은 탑이 보인다.
아마도 굴뚝인 모양이지?
지은지가 얼마 안되어서인지 아주 깨끗한 입구로 들어서니 긴 낭하가 나오면서 점점 어두워 진다. 거기에 맞추어 우리들의 눈 또한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기에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에 불편이 없고…….
참 하나님이 우리를 잘 만들어 주시었다. 이렇게 순간 순간 적응하게 하신 것을 보면 말이다.
안으로 들어 갈 수록 넓어지더니 바위를 파서 만든 식당안에는 커다란 홀이 가운데 있고, 그 주변으로 5개의 커다란 방들이 더 깊이 파여 있는게 아닌가!
만져보니 다 돌이다.
곡괭이로 판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하여 대리석 처럼 번쩍이지는 않았지만 그 돌 자체에서 뿜어내는 색감과 조명이 어우러져 벽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홀 가운데에는 터키 악사가 앉아 터키 노래를 터키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고 있는 아주 분위기 만점인 식당이다.
요번 여행에서는 우리를 참으로 분위기 좋은 식당으로 많이 인도해 준다.
이 곳 또한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장소였다.
그 분위기와 케밥이라는 그 음식. 또 한번 가고 싶고, 또 한번 먹고 싶다.
식사사 끝나갈 무렵 조명이 낮아 지더니 어!!!!생일 케익이 나온다.
오늘이 마침 조장인 조장로의 생일이 아닌가!
그 부인이 언제 손을 쓴 모양이지?
환히 웃는 얼굴에 찐한 뽀뽀를 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그림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 아니 남자들의 부러움을 자아 내었으리라…ㅋㅋㅋ
분위기가 좋다고 죽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또 볼 곳으로 가야지.
이제는 식후니까 기다리는 금강산으로….
버스가 선 곳은 뭐 별볼일 없는 교회당이 하나 있는 파킹장이었다.
조그마한 안내 판에는 데린구유라고 쓰여 있고…..
아 ! 여기가 그 유명한 지하도시인가보다.
이번 여행 올 때 이 지하 동굴에 들어가서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한 외다리 삼각대(어째 번역이 좀 이상하다. 하여턴 다리가 하나인 우리가 삼각대
라고 부르는 것이다.)를 입구에서 빼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는 이런 것을 사용하면 전문가 취금을 받아서 미리 허가를 받고 또 돈을 내야 한단다. 이런 변이 있나…. 이 곳을 위해서 그 멀리서 가지고 왔는데….. 할 수없이 입구에 매끼고 따라 들어선 동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모두들 미리 연락을 받아 준비한 마스크를 쓰고 허리굽혀 들어가며 놀라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있을까?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데린구유는 1965년에 발견되었으나 우리가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구역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대형 지하도시이지만 안전 때문에 우리는 지하 8층까지 내려갈 수 있단다.
1층과 2층에는 마굿간과 지상에서 구멍을 통해 던진 포도를 밟아서 짓이개어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주 제조창, 포도주 저장고, 식당, 부엌, 학교 등이 있었다.
더 아래로 내려가 3층에 이르면 거주지, 교회, 체벌실, 병기고, 터널, 등이 있고 그 외 지하감옥, 묘지, 식량 저장고, 우물 등이 있다.
지하 감옥이라….?
믿음을 위해서, 박해를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 중에서도 또 이렇게 감옥에 가야만 할 사람들이 생기는 모양이지?
허기사 각 고등학교에서 일등만 하던 사람들이 모인 대학에 가면 거기서도 또 다시 1등도 생기고 2등도 생기는 게 우리 인간들이 사는 모양이니까……
같은 뜻으로, 같은 믿음으로 함께 와서 산다고 하더라도 살다보면 또 이런 일들이 생기겠지.
어찌 되었던 좀 씁쓸하였지만 약 1만 명 정도 수용 가능한 이 지하도시는 완전히 도시 기능을 갖춘 곳이었다.
이 곳에 지하 동굴은 고대 히타이트민족(헷 족속)으로부터, 로마시대 그리고 비잔틴 시대에까지 사람들이 살았었단다.
초기 기독교가 박해를 받을 때, 이 곳으로 피난와서 살면서 피난민들이 늘어날수록 더 큰 공간의 넓이가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계속 파 들어가 지하 20층까지 지하도시를 확장하게 된 것이란다..
갑바도기야 지역에는 모두 36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있단다.
지하 3층에는 긴급 시 다른 지하 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km나 뚫려져 있었다.
터널은 꾸불꾸불하게 만들어 졌는데, 이것은 만약 적이 병기를 들고 들어 왔을 때 마음대로 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지하도시에 있는 교회들에는 괴뢰메 계곡과는 달리 일체의 성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단다.
그런 도피의 세월이 지나 기독교가 공인 되고 난 후부터 서서히 이용이 줄어들어 서기 8세기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곳 지하도시에는 52개나 되는 환기구멍이 교묘히 위장되게 만들어졌는데,
낮은 층에서도 매우 쾌적한 공기의 순환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졌단다.
또한 사암으로 된 동굴이기 때문에 사암이 공기 정화를 시켜주기도 한단다.
그래서 맨 밑바닥층에도 깨끗한 공기가 들어와, 심지어 지하 7층에서의 담배 연기도 빠르게 빨려 나간다고 한다.
이 환기 구멍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통신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지하 도시의 특징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돌로 만든 출입문이다.
출입구가 있는 굴 중간 중간에는 55~65cm의 두께와 170~175cm 의 높이로 만들어진 돌문이 있다.
이 돌문은 둥근 맷돌 모양으로 적이 침입을 했을 때 지하로 내려와 볼트를 풀어 문을 닫음으로써 적의 공격을 차단하게 설계 되었던 것이다.
외부에서 이 돌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하며, 안쪽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단다.
즉 이 돌 하나가 가장 훌륭한 방패가 되었던 것이다.
때로 나타나는 커다란 공간이 있는가하면 그 방들을 이어주는 허리를 잔뜩 구부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미로들,
우리는 이렇게 잠시 가이드를 따라 들어와 길을 안 잃어버리고, 설명도 들으면서 돌아 나오지만 그 옛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으로 피신 온 믿음의 선배들은 이 지하도시에 살면서 또 새로 영입되어 오는 믿음의 동지들을 위해서 더 넓게, 깊게 파 들어가노라며 보낸 세월이 얼마였을까?
그 고난은 또 오죽 하였을까…? 요즈음 처럼 굴착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몇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을까?
어떻게 만들었을까?
지하에서 나온 엄청나게 많은 흙들은 어떻게 옮겼으며 어떻게 버렸을까?
모두가 다 의문 투성이요, 놀라운 장면이요 장관이다.
어두운 동굴을 빠져 나오니 늦은 오후의 해가 따사롭게, 그리고 밝게 우리들의 눈을 부시게 하여주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고 놀라운 땅 아래의 세상을 보고 땅 위로 나온 것이다. 태양이 있는….
태양이 있는 세상으로 나 왔으니 또 세상 사는 사람처럼 살아야지?
호텔로 가는 길에 터키 석을 전문으로 만드는 보석상과 또 이지방특산으로 유명한 카펫 짜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견물 생심을 이기지 못하는 우리들이 몇 있기도 하였고…ㅋㅋㅋ
기암 괴석들로 장관을 이루는 계곡들을 저~만치로 보며 달려가던 버스가 어는 휴계소에 섰다.
이름하여 비둘기 계곡이란다.
이름 대로 많은 비둘기들이 그 기암 괴석 사이를 자유롭게 날라 다니며 저녁 해를 받고 있는 경관은 정말 장관이었다.
책에서만 읽어 오고, 사진으로만 보아 오던 갑바도기아의 계곡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 보는 것은 거저 맛보기란다.
내일 아침에 풍선 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저 계곡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 경관을 만끽하면서 또 초대 교회 터를 볼 수가 있단다.
석양을 받아 붉게, 그리고 분홍색으로 빛나는 기암괴석들을 보며 내일을 기대하고 있는데, 금상첨화라고 해야 하나?
이 기분을 조금 더 고취하기 위해서 이권사님이 포도주를 쏘아 올리셨다.
그래, 낯에는 조장로님이 생일이라고 동굴 안에서 생일 잔치를 했고,
이제 저녁에는 이 권사님이 포도주를 쏘아 올려 우리 모두의 얼굴 또한 석양빛을 받아 붉어진 기암괴석처럼 붉게 만들어 주셨으니 참으로 좋은 하루들 중에 조금 더 좋은 하루인가보다.ㅎㅎㅎ
붉은 포도주 잔을 들어 올리며 함께 힘차게 외쳤지. “위하여…..!”
호텔로 와 보니 마치 동굴을 연상시키는 기분을 자아내게 지어 진 호텔이다.
마침 저녁 시간이어서 마당에서 굽는 샤스카브 냄새가 또 배를 고프게 만들어 준다.
점심도 잘 먹었지만 그게 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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