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덫 그 2 돈
돈을 보고 돌고 돌기에 돈이라고 한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이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 사용한 지혜는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렇게 돌고 도는 돈, 물물교환 시대가 지난 후 누구든지 생존을 위해서는 필요한 그 돈 때문에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일들은 일분 일초도 우리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지만, 정작 죽어서 본향으로 갈 때에는 어느 누구 하나 땡전 한잎 가져 갈 수 없는 것이고 보면, 그 돈이란 결국 영원한 것도 아닌, 우리가 단지 이생에서 생존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물건인데 그것 때문에 인간 만사의 이야기 꺼리의 한 1/3 정도를 차지하니 그 위력 또한 적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돈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람마다 틀리고 그 돈을 만들려는 방법 또한 사람마다 틀리기에 돈에 대한 여러 정의가 현자들로부터 나려진 모양이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돈은 버는 사람 따로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
돈은 쓰는 돈이 내 돈이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삼대 가는 부자 없다.
99냥 가진 부자가 1냥 가진 과부돈을 빼앗아 100냥을 채우려 한다.
돈이 있으면 삶이 편하고 돈이 없으면 삶이 불편할 뿐이지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돈에는 주인이 있다.
돈 돈 하지 마라. 사람이 돈다.
사람이 돈을 쫒아가면 돈은 도망가지만 사람이 돈을 멀리 하면 돈이 사람을 따른다.
외할머니 떡도 커야 사먹는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
장사꾼은 제 부모도 속인다.
등등등……
육선이 그득한 집에서 다투는 것 보다는 초가삼간에서 다정스런 삶이 더 지혜있는 삶이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결국 돈이 없으면 생활이 궁핍해지고, 생활이 궁핍해지면 필요의 욕구가 커지고, 그 욕구가 해소되지 않을 때엔 매사가 불만스러웁다보면 무능한 자신을 탓하던지, 무능한 남편을 탓하던지, 무능한 부인을 탓하던지 하여턴 탓이 시작되고, 탓이 시작된 후 손가락질이 시작될 때 즈음에는 평안이 있을 자리에는 불평과 불만과 원망이 들어차니 그게 지옥이지 어디 삶이겠는가.
그래서 돈을 벌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벌면 벌수록 편해지는 생활 때문이어서인지 그 돈을 위해서 전력 투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다가 보니 어느새 번 돈을 써 가며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쓸 계획 속에 돈만 따라다니며 잡히는 대로 창고에, 침대 밑에, 냉장고 속에, 천정위에 그리고 자기만 아는 은밀한 곳에 숨겨 놓으려 하는 돈의 노예로 전락하는 게 우리 인생의 약점인 모양이다.
성경의 말씀대로 오늘 저녁에 우리의 육신을 거두어 가시면 그 모든 계획은 모두 수포가 되고 말 테인데 그러면 남이 못 찿게 숨겨노은 그 돈이 아까워서 어쩌나?
우리는 어느 누구 하나 내일이 있다고 장담할 수없다
허나 그 없을 지도 모를 내일을 준비 안하고 있다가 겨울을 만난 베짱이 꼴이 될 수야 없지 않을까?
그래도 소위 만물의 영장인데…..
어느만큼이 필요한 만큼일까?
아마도 우리의 욕심 만큼이겠지.
그 욕심에 따라서 체면 불구가 생기기도 하고, 그 욕심에 따라서 인간성을 저버리기도 하고, 그 욕심에 따라서 육신과 영혼의 학대정도가 달라지기도 하겠지.
흔히 우리에게는 일생에 3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데 그 기회를 잘 잡은 사람은 부자가 되고 그 기회를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은 거저 노력한 대로 먹고 살게끔 되는 모양이다.
돈에 관한 한 유태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오랜 유랑과 방랑속에 생존하려니 삶에 필요한 돈을 �아 치부하는 것이 절대절명의 명제일 터이기에 아마도 그 지혜가 꽤나 발달하였고,
그 경지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기에 지독하다는 소리를 듣는지도 모르겠지다.
사이록이 나오는 베니스의 상인은 고전이고 요즈음에 유통되는 유머 하나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죽었다.
장례식에 모인 친구들중에 미국 친구가
”친구여 잘 가게… 저승길에 노자나 하게…”관 위에 $5.00 짜리를 놓았다.
영국친구가 지갑에서 $10.00 짜리를 꺼내더니 그걸 관 위에 놓고 $5.00짜리를 거두어 왔다.
유대인 친구가 마지막에 수표를 꺼내더니 $20.00 을 친구 이름으로 발행한 후 관위에 놓으며 $10.00자리를 거두어 왔다고 한다.
그래, 과연 이렇게 까지 돈을 모아야 하나?
이 정도면 되었지 하는 욕심의 덪을 벗어나면 얼마나 있다고 건방지게…하는 교만의 덪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돌고 도는 돈의 길에 놓여있는 것 같다.
한 발은 욕심의 덪에, 한 발은 교만의 덪에 걸린채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인 것 같다.
욕심에서 초연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풍요로운 삶을 살 만큼 가지지도 못하였으면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돈에 대한 욕심은 버렸노라고 자조 섞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은 노력을 하다, 하다 안된 뒤끝에 뱉어내는 말이겠지만…..
나뭇가지에 매달린 포도가 먹음직스러워 뛰다가 뛰다가 안되니까
”저건 신 포도야. 괜히 먹고 입맛버리는 것 보다는 안 먹는 것이 나아…” 하며 돌아서는 이솦이 만들어낸 여우같이 말이다.
그래도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서 조약돌을 하나 하나 물어다 목이 긴 병 속에 넣는 까마귀의 노력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노력의 대가로 벌었던, 유산을 받았던, 아니면 도둑질을 하였던 하여턴 우리는 매일 우리가 번 돈을 쓰면서 살아간다.
모두가 돈을 쓰기는 쓰느데 그 쓰는 용도와 방법이 천차만별이라 그 쓰는 곳을 보고 어쩜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도록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인 모양이다.
제가 벌어서 제가 쓰는데 뭐 어떠냐 하면 결국 내가 잡은 쥐 내가 가지고 놀다 먹던 한 입에 냉큼 넣던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항변하는 고양이 같을 테이니까.
이렇듯 돈을 쓰는 곳과 그 쓰는 유형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보니 한 집단을 이루는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간에 티격 태격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결혼 초기, 아직 눈에 덮인 거풀이 벗겨지지 않았을 때, 가계는 푼돈을 쪼개고 쪼개서 아껴 써야만 할 때, 부인의 생일에 푼수없이(?) 큰 카드와 조그마한 선물 하나 사왔다가 나무람도 많이 받았던 그 기억이 아직도 있으니까 말이다.
치매 초기가 왔으니 이젠 이런 건 잊어버리기도 해야 할 테인데…..,
또 그것보다는 조금 큰 모임인 교회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국가에서 우리들이 낸 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단체들을 이끌에가는 지도자의, 아니면 정당의 인생관이나 철학 만큼이나 다른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또 그것을 느끼기는 느끼되 다른 구성원보고 나의 생각처럼 쓰라고 할 수 없는데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로 인하여 시험에 들고 하는 것이 아직 우리들이 걷고있는 사회 생활이요 믿음의 정도인 것 같다.
대학을 다니면서 받은 Student Loan에서마저 10%를 떼어내어 십일조를 내어야 마음이 편한 성령받은(?) 자녀들이 있는가 하면 그건 번 돈도 아니고 꾼 돈인데, 또 앞으로 갚아야 하는데 거기서 십일조를 떼면 어떻게 하느냐고, 앞으로 갚을 때도 십일조 떼고 90%만 갚을 거냐고 항변하는 성령의 은혜를 못입은(?) 부모도 있었으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 자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십일조를 내면서부터 또 마음에 갈등이 일어난다.
장사를 할 때에는 1년에 한번 결산을 내기 까지는 정확한 수입을 모르니까 십일조라고 할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개중에는 하루 매상의 십일조를 내시는 돈독한 분들도 보았기에 과연 십일조가 무엇의 십분지 일인가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그러다 보면 그 십일조라는 것은 옛날에 세금이 없을 때 농사짓지 못하고 장사할 수 없는 레위족속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다른 11지파가 자기들 소득의 십분지 일을 내어서 레위지파를 돕도록 한데서 유래 되었기에 지금 세금을 원천징수당하는 현대에 와서는 필요가 없노라고 항변하는 말에도 귀가 귀울여 지고, “나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는 유일한 하나님 시험이 십일조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외람되게 하나님을 시험할 수야 없지만 그렇게까지 강조하는 십일조를 안하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느냐는 믿음의 소리 또한 다른 한 귀로 들리니 조금 혼란스러워 지기도 한다.
그 혼란하여진 머리로 계산이 되는 것은 11부족이 1/10씩 내면 받는 부족은 11부족의 1/10이 11개가 모이니까 11부족은 자신의 소산의 90%로 살고 레위족속은 제사만 드리면서 11/10로 사니 결국 제일 잘 사는 족속이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한 때에는 한국에서 목사님이 좋은 신랑감 후보 서열의 상위를 차지하였었나?
예수님께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돈을 숨기며 헌금하는 과부의 두 렙돈이 많이 넣는 부자보다 더 많은 것이라는 역설적인 가르침도 있고 보면 얼마라는 절대가치로서의 금액이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라는 주관적인 성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일 것이다.
하여턴 모두가 정성스럽게 성의껏 자신의 능력의 한도내에서 자신의 믿음 만큼 헌금을 하는데 마치 그 금액이 믿음의 지수인양 누구 얼마, 누구 얼마 하며 주보에 내어야 하느냐는 항변이 있는가하면 그렇게라도 해서 경각심도 일으키고, 서로의 믿음의 경쟁심도 부추기고, 그리고 또 이런 교우들도 있습니다 하며 다른 교우들에게 모범도 보이고 하려면 최소한 이름이라도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하다 보니 결국 중용을 찾아서 교우들에게 알리는 게 우리 교회의 현재 모습인 것 같다.
하나님께 바치면서 그 바침으로 인하여 더 큰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게 우리 모두의 바람이고 욕심인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헌금 기도시간이 되면 목사님들이 바짝 긴장을 하시는 모양이다.
혹시라도 누가 빠지지 않았는가 해서 말이다.
예배 후 나가면서 줄지어 하는 인사와 악수를 가지고도 왜 누구하고는 오래 이야기를 하고, 누구와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누구와는 힘있게 악수하는 데 왜 나에게는 안그러느냐는 항변이 심심챦게 나오는 게 또 목회자의 위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정치야 정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 접어두고 우리 살에 와 닿는 교회 생활을 한번 보자.
오래 전에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 한토막:
어느 장로님이 교회의 회계 감사를 하면서 들여다 본 헌금 현황을 보고 두번 놀랐었다고 한다.
한번은 어떤 사람의 현재 형편으로는 도저히 낼 수가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헌금을 한 것을 보고 놀랐고, 또 한번은 어떤 사람의 재정적인 여유나 기타 씀씀이로 보면 이것 보다는 훨씬 더 헌금을 할 수 있을 테인데 하는 의구심이 들도록 적은 헌금에 놀라고….
하늘 아래 사람 사는 사회는 어디고 다 같을 터이니 우리 교회 역시 모르기는 하겠지만 한보 반보이겠지.
이렇게 모아지는 교회의 헌금이다 보니 그 돈을 쓸 때 또한 의견이 분분분이다.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꽃닢들 처럼 결국은 다 땅에 떨어지는데도 그 떨어지는 위치와 떨어지는 방법을 가지고 서로 아웅 다웅하는 것이 또한 우리들의 모습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그 아웅의 한 소리였고 그 다웅의 한 소리였기 때문에 말이다.
이런 과정에서 쉽게 걸려 드는 덪, 그게 또 교만의 덪인 것 같다.
“지는 얼마 헌금도 안하면서 입으로만 떠들어….”
“지는 일도 안하면서 말로만 다해…”
“교회 돈이 네 돈이야? 일단 헌금했으면 그만이지 왜 감놔라 배놔라야?”
이쯤 되면 그 덪이 점점 더 옭조여와 감정에 격해 할 말 안할 말들이 튀어나오게 되고…..
교회 살림살이가 풍족해서 여유로우면 마음도 여유로워 하고 싶은 일들을 다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터인데 하늘이 낸 부자가 없는 교회이고 보니 모두들 쌈짓돈을 나누어서 열심히 헌금하며 교회 생활을 하려니 마치 없는 집 제삿날 돌아오듯 할 일은 많고 쓸 돈은 없을 때 모두가 신경이 곤두세워지니 말이다.
허기사 부자가 있다 하더라도 만족을 모르도록 생겨먹은 우리들일 터이니 어느 선에서 만족할까마는 비록 육선은 없더라도 마음만은 한결같아 평안이 깃드는 교회가 되면 좋을 테인데…
내가 걸릴 수 있는 덪은 어디에 놓여있나? 피해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벌써 그 덪에 깊이 걸려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찌 할 바를 모르겠으니 말이다.
지붕은 낡았는데 봄비는 자주 오고…….
“하나님….” 또 매달려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모양이다.
먹지도 못하는 Crab Apple이지만 그래도 열매를 맺혀보겠다는 신념으로 활짝 만개한 연분홍 꽃을 보며..... 200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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