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그가…
하나님이 아담에게 “왜 선악과를 따 막었느냐”고 질책 하실 때 한 아담의 대답 중에 한 구절이다.
여자ㅡ 그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
이 얼마나 피동적이고 주관이 없는 행동인가!
“야, 그건 왜 따왔어?” 하고 호통을 치며 귀싸대기라도 한대 올려 붙였더라면 오늘의 역사는 꽤나 달라 졌을 텐데,
아무 소리 못하고 받아 먹으면서, 그래도 죄책감은 있어 꿀꺽 삼키지도 못한 채, 아직까지 아담의 사과를 목에 달고 다니는 남자의 시조가 되었으니,
엄처시하에 아뭇 소리 못하는 공처가의 기원은 그래서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가보다.
여자, 참으로 묘한 피조물이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어 인간답게 하신 후에,
그 외로움이 가상하여 보필을 만들어 주자시며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든 것이 여자이고 보면,
여자란 분명 남자를 위하여 이차적으로 창조 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남자를 위하여 창조된 여자가 어떻게 남자에게 함부로 “먹어라!”” 마라!” 하며 남지들을 엄처시하로 몰고 갈 수가 있을까?
여자의 어떤 특성이 그런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일까?
사물을 보고 느낀 대로 상형문자를 만들어 낸 우리의 먼 조상들은
여자를 어떻게 보고 표현하였나? 보고 싶어 옥편을 뒤져 보니, 가히 점입가경이다.
여자 셋을 붙여 놓으면 투기가 지나쳐서 간사하게 된다고 하여 간사할 간(姦)자를 만들어 놓고, 크게 활개치는 여자란 다 요물에 가깝다고해서 요망할 요( 妖) 라고 하는 가 하면, 계집 여 (女)자에 입 구(口) 자를 붙여 같을 여(如) 라고 하였으니, 여자의 입으로 나오는 소리란 다 그렇고 그런 동류의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잃을 망(亡)자에 여자가 끼이면 거짖될 망 (妄)자로 변하고,
모 방 (方)자에 여자가 끼이면 방해할 방 (妨)자가 되며,
서녁 서(西)자에 계집 여자를 붙여 필요할 요 (要)자를 만든것을 보면
여자란 역시 해질 녁에 가서야 그 존재가치가 필요해 지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다는 뜻이 아닐까?
서양에서는 왜 여성의 시조에게 Eve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또 왜 저녁을 Eve라고 하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이와도 무슨 연관이 있으리라.
그런가 하면 밭 전 (田)자에 힘 력 (力)자를 붙여 생겨진 사내 남(男)자를 보자.
밭 전(田)자의 생김새는 열 십(十)자를 둘러 싸고 있는 입 구(口)자이니, 열개의 입을 가히 먹이기에 족한 것이요, 이것을 일구는 힘을 써야 하는 것이 남자라고 해서 사내 남(男)자를 만들어 놓았으니, 벌서 그 옛날, 중국의 조상들은 성경에도 도통하였던 모양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르시지 아니하였던가!
“종신토록 수고 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삽으로 땅을 파서 농사 짓고, 그것을 주식으로 삼던 동양에서는
그래도 여자를 조금은 인간적으로 대우하여 주었기에 이렇게 글자에라도 인용하여 주었건만 서양에서는 어떠하였나?
식생활에서 마저 창과 칼로 찌르고 짜르고 하는 서양사회는 철저히 약육강식의 사회였다.
그 와중에 여자의 역할이란 종족 보존과 남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것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인간의 생존사를 기술한 기록인 역사를 서양에선 History, 즉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하지 않는가!
Lady First란 어휘를 들이 대며 항의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 Lady first 란 뜻도 좀 더 깊이 고찰하여 보면 내세울 것이 하나도 못된다.
철저히 약육강식이던 시절, 서로 먹고 먹히우던 시절에 음식에 독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해서 여자에게 먼저 먹였고,외딴 곳에 갈 때 어떤 위험이 없나 해서 여자를 먼저 보내던 습성에서 기인 한 말일 테니까 말이다.
그 옛날, 만약에 인공위성을 달에 쏘아 보낼 수가 있었다면, 개나 원숭이대신에 그래도 조금 더 똑똑한 여자를 먼저 쏘아 올려 보내었을 것이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문예부흥 운동이 시작되면서 부터 여자가 좀 여자다운 대접을 받기 시작해서 문학과 미술, 음악등 예술에 등장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사체로서의 등장이었지 능동체로서의 여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서구의 지성은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니라”느니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고 밖에 더 표현하였는가 말이다.
이렇듯 별것 아닌 것이 여자이지만 그런데도 사가들은
“남자는 세계를 정복 하고 여자는 그 남자를 지배한다.”고 한다.
왜일까?
아마도 남자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위엄은 갖추었지만
그 본성은 지극히 순박하고 선한 반면에, 이차적으로 창조된 여자는 하나님을 제대로 닮지 못한데에서 오는 소외감으로 인하여 생긴 독기 때문인지, 아니면 뿌리가 없어서인지, 소견머리가 좁아져서 지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도 두려움을 모르고 생존하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가?
그것도 아니면 남자들이 남자가 갈아야 할 그 밭을 갈게 해서일까?
하나님마저도 중성화시켜 성경을 다시 써야 한다는 여자들의 억척스러움,
역사를 History 가 아니라 Herstory, 즉 여자들의 이야기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성스러움, 여성 상위시대를 구가 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는 여자들,
고삐 풀린 말 처럼 정신없이 좌충우돌하는 여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어지러워 진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것 까지도 다 미리 내다 볼 수 있는 선견지명이 있었던가보다.
그래서 여자란 모름지기 집안에 거할 때에 평안함이 온다고 편안할 안(安)자를 만들어 놓았고, 모름지기 여자란 남자와 더불어 동고 동락 할 때에야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서 좋을 호(好) 자를 여자와 남자를 합하여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렇게 좋울 호(好)자가 정녕 좋을 호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남자들이 좀 더 열심히 밭을 갈아야 겠다.
여자에 연연하지 않은 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의지로 남자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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